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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모색 2013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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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모색 2013》전을 개최하며



박수진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젊은 모색》전은 올해 제 17회를 맞이하였다. 한국미술계에서 보면,《젊은 모색》전은 1980년대 보수적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제도적 관성을 깨고 젊은 작가들의 실험정신에 초점을 맞춰 젊은 의식을 대변한 전시였다. 미술관 자체적으로는 한국 미술의 미래를 바라보는, 동시대 미술의 시각을 견지하겠다는 미술관의 전시 정책과 기획력이 반영되어 온 가장 오래된 격년제 정례전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미술계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젊은 모색 2004』도록에는 “대안공간, 전국의 공사립미술관들이 청년작가들의 전시를 집중적으로 열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미술관의 유망작가 발굴전시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가?”라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대안공간이 활성화되고 창작스튜디오가 늘고, 각 공사립미술관에서 젊은 작가들을 경쟁적으로 소개하면서 미술관 전시의 차별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젊은 모색전은 상업성을 배제하고 대안공간과 갤러리 등을 통해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여 한 단계 발돋움시키는 발판의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미술이 그 외연을 확장하고 지면이나 전시장 외의 공간으로 이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작가들의 실험성을 어떻게 배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요구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술관은 전시 정책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논의해 왔다. 내용적으로는 ‘젊은 정신’을 모색한다는 ‘태도’, ‘내용’에 초점을 두고 일정한 틀로 제한하지 말고 새로운 큐레이팅 방식을 실험하거나 연령의 제한 없이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 등도 수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즉 각 내용을 충실히 담을 수 있는 형식을 전시 시점에 적절히 선택하는 방식으로 형식을 수용하자는 것도 제안되었다. 형식에 관해서는 참여 작가의 범위, 연령, 작가 수, 규모, 선정방식, 전시 횟수, 타이틀 등에 대해서 주로 논의하였다. 거듭된 논의 속에서 작가선정에 있어 유연하게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조형담론과 다양한 작가군을 적절히 조명할 수 있도록 개최 횟수를 늘려 1년에 1회로 하고, 대상자는 국내 거주하는 내․외국인 작가, 국외 한국 작가로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작가 추천 ․ 선정방식에 있어서도《올해의 작가상》과의 차별성, 미술관의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학예직선정위원회를 통해 기존과 동일하게 진행하기로 하였다.


정책을 결정할 때 내용과 형식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내용과 형식은 서로를 제약하는데 주로 형식이 내용에 의존하지만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채워갈 수도 있다. 1981년 《청년 작가》전을 시작할 때 이 전시는 육성되고 보호되어야 할 전시로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측면에서 고려되었다면, 이제는 전시 공간이 서울관, 청주관 등으로 확장되고 있는 시점에서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동시대 미술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젊은 모색 2013》전은 바로 이러한 고민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 역시 미술관 학예직들의 조사 연구를 통한 작가 추천과 관장을 비롯한 학예직 전체회의를 통해 작가들을 선정하였다. 지난 2010년에《젊은 모색 30년》전을 회고전으로 개최하면서 그 전 전시인 2008년에 17명을 소개한 이후 5년 만에 개최되는 작가 발굴전으로 7차 회의를 거쳐 심도깊은 토론이 이어졌다. 총 97명의 작가들이 추천되어 논의되었으며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거쳐 회화, 한국화, 사진, 설치, 애니메이션 등 작가 9명이 최종 선정되었다. 작가 선정 기준은 발상이 신선하고 실험적이며 향후의 가능성 등이 고려되었다. 그리고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시각적 설득력이 있으며 사회적 산물로 공통된 인지를 할 수 있는 경우에서이다.


오늘날 미술의 흐름은 어떠한가? 사회가 다원화되고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는 요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거나, 단지 새롭다는 것 자체가 미술에 있어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존의 매체를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 보다 경험 지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요즘 작가들은 홀로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경험하며 그 과정 속에서 작업을 완성해 나간다. 물론 기본적으로 예술가는 작품이라는 미학적 대상을 만듦으로써 사회와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이 때 작품은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도구로써의 역할을 한다. 이것에서 더 나아가 작품 제작에 참여자 또는 관객이 개입되면서 작품은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다. 관객 참여 요소가 부각되는 것은 바로 열린 공간에서 예술작품의 의미가 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작가가 그 관계를 직접적으로 이루어 나가고 조정하며 다층적인 의미를 제시해 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의미는 하나의 권위적인 진실,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우연이 발생하며 상황에 따른 가변적인 의미가 생성된다. 현실은 단순하지 않으며 매우 복잡하고 불안전하다. 작가는 이를 좋고 나쁨의 잣대로 판단하기보다는 ‘복잡한 무엇’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작품을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인 구도로 엮어나간다.


이러한 특징은 1998년에 니꼴라 부리요의『관계의 미학』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의 미술은 모던 아트의 자율적이고 사적인 상징체에서 벗어나 인간의 상호관계를 이론적 논거로 삼는 관계미학적인 유형을 전개했다고 논하고 있다. 즉 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사람들의 이동성으로 인해 예술가들은 근대미술에서 제기되었던 미학적, 문화적, 정치적 목표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의 예술작품 자체의 위치를 문화적인 맥락에서 재고했다는 것이다. 니꼴라 부리요가 “관계의 예술은 다른 예술 운동의 ‘부활’도 아니며 어떠한 스타일의 회귀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적 활동의 목적지에 관한 숙고와 현재에 대한 관찰에서 태어났다”고 한 것처럼 관계의 미학은 전적으로 동시대, 현재의 예술에 대한 분석과 비평, 통찰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960년대 초부터 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를 떠올리게 한다. 탈 장르적인 예술운동으로 발전했던 플럭서스에서는 관객을 참여시켜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을 이루려 하였고 삶 속에서 예술을 찾고자 하면서 예술이 갖는 사회적인 면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과 닮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험, 관계, 과정과 연관된 작업들이다. 신체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박제성, 도시적 만남을 보여주는 유현경, 김태동, 작품제작 과정에 참여자나 관객을 상정하는 구민자, 박재영, 실험과정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백정기, 세계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김민애, 심래정, 하대준의 작업이 있다. 전시장 구성은 작가들 개별 섹션을 위주로 하되 작품들이 서로 관계하고 개입되는 것을 염두 해 두고 공간 연출을 하였다. 주로 신작들이 제작되었으며 적절히 구작을 섞어 관객들이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하였다. 


우선, 박제성은 작가의 몸, 행위의 반복을 통해 세계와의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돈, 시간, 몬드리안 작업의 의미를 해체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유현경은 계약관계를 통해 동기를 부여 받는다. 1년 이상 지속적으로 모델들을 만나면서 작가가 느낀 지점이 표현될 때까지 덧칠을 지속해 나간다. 이러한 과정은 경험을 통해 상대를 인식하고 판단, 표현하는 작가 내면의 또 다른 투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도시적 만남을 보여주는 김태동은 도시의 새벽에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찍고 있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도시를 탐험하는 과정과도 같다. 복잡하고 익명화된 도시의 새벽에 마주친 사람들은, 마치 도시의 이면을 드러내 듯 개별화되고 소외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적인 틀, 고정관념을 재 사고하게 하는 구민자는 개념을 가지고 일반인들을 참여자로 만들면서 작업을 완성해 나간다. 결과는 열려있다. 작가는 비판적 시각으로 날카로운 각을 세우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덤덤하게 사진, 영상, 출판 등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DownLeit(새빨간 거짓말의 축약)사의 프로듀서인 박재영은 마인드 콘트롤러 제품을 시연하는 공간설치작업을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권위가 얼마나 인간의 심리를 압도해 왔는지를 이야기로 구성하고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프로젝트이다. 실험에 의한 과학적 접근을 하는 백정기는 시각적인 이미지와 그 재료(물질)의 본질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청동상을 전파수신기로 사용하거나 강과 도시의 관계를 강물을 이용한 프린트로 가시화하고, 전기의 성질을 이용해 상징적 물건으로 일상 사물을 도금하게 함으로써 그 과정을 시각화하고 있다. 김민애는 건축물의 간과된 공간에 쓸데없는 구조물을 만듦으로써 그 공간을 환기시키고 그 의미를 상기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것은 세상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그에 타협하는, 즉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자기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심래정은 실제 경험이나 사건기사(글)를 접하고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으로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작가가 그리는 인체이미지는 주로 먹고 마시고 분비하고 배설하는 행위를 하며 주변 사물들과 관계를 맺어나가는데, 작가는 이 이미지를 학대하고 변형시키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치유해 나간다. 하대준은 우연히 지하방 창문을 통해 마주친 닭에 대한 경험을 작품화하고 있다. 보면서 보여지고 있었던, 사유를 통해 지각되는 강렬한 경험이다. 작가는 자아를 두려움의 상징적인 두 요소인, 두려운 것으로서의 닭, 두려움과 불안함을 가진 존재로써 인체를, 세필과 담묵으로 각각 표현하고 있다. 


작가들은 각각 그만의 개념과 감성, 표현방법을 가지고 있어서 작업의 주제를 하나로 묶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현실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여 나온 결과물들이다. 작가들은 일상을 살아가며 합의되고 지각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풍부한 상상력으로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미술에 나타난 젊은 정신과 향후 미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또한 이 시대의 조형담론을 예견해 보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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