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신진작가공모 <지저귀는 안식처>展
작가명 : 이윤희
전시일자 : 2013. 3.14 – 4.29
내면의 세계를 흙으로 표현하다!
-이윤희 도자작품에 부쳐-
임창섭(미술평론가 ․ 문학박사)
이윤희 작품은 도자기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만든 독특한 조각처럼 보인다. 도자를 전공했다고 해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도자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꿈 혹은 내면고백을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모습을 간단히 설명하면, 간단히 설명하기에는 생긴 모습은 복잡해서 다소 난감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좌대 혹은 제단이라고 해도 될만한 사각형 위에 두상 혹은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 올렸다. 이런 형식이 반복되기도 하고 제단이나 사람형상에는 여러 다른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다. 예를 들면 ‘Garden of earthly delights’는 가장 밑에는 두개골과 뼈가 담긴 접시가 놓여있고, 그 위에는 석굴암 감실에 안치한 불상들처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앉아있는 사람을 빙 둘러서 조각해 놓았다. 그 위에는 다시 소녀의 얼굴과 꽃 그리고 두개골이 함께 있는 접시를 놓고 그 접시에서 꽃이 핀 형상을 가운데에 만들어 붙였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보면 인체를 꽃처럼 보이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색도 다양하게 사용해서 마치 종이에 칠하듯 정교하게 채색되어 있다. 여기서 만들었다고 말했으나 사실은 도자제작기법에서 흔히 사용하는 캐스팅 즉 주입성형 방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방법은 흔히 말하는 근대적인 공예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은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세기가 바뀐 지 불과 10여년이 흐른 지금, 20세기와 21세기의 다름을 우리는 몸으로 느낄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휴대폰도 그렇고 컴퓨터도 그렇다. 서울에서 부산사이의 물리적 이동시간도 2시간 반 남짓이 된 세상인 것이다. 이렇게 곰곰이 생각하면 더욱 놀라게 되는 것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방식 혹은 공유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간단히 말해서, 산업화시대 이전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던 최대의 저장매체는 우리의 기억과 그것을 문자로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문자로 다 적을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성의 저장매체는 예술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화시대 그리고 소위 후기자본시대라고도 불리는 21세기인 지금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이라는 전자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고형 혹은 고정 형태로 저장되었던 우리 인간의 지식과 감성은 형태가 없이 허공에 소위 신호로 돌아다니는 시대가 된 것이다. 21세기는 여전히 종이책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허공에 돌아다니는 신호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정보로 변환하여 소유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 주 원인에 하나는 바로 정보를 소유하는 방식이고 습득하는 방법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지식과 감성의 공유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에 예술 제작형식도 당연히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예술의 의미와 존재방식이 변화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우리의 감정이나 지식을 어떻게 전달하느냐 혹은 소유하느냐 그 방법에 따라 세상은 변화한 것은 아닐까. 예술은 이제 자신의 감정이나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목적이 약화되고 대신에 자신만의 그리고 자신을 위한 생각과 사상과 생각을 작품으로 만들고 자는 의도가 가장 큰 존재의 이유로 변화한 것이다.
이윤희의 'Allegory'라는 작품 역시 자신의 치유 혹은 자신이 말하듯이 ‘지저귀는 안식처’라는 표현을 도입하면, 내면의 자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현대인은 불안하다고 한다. 불안이란 대상이 없는 무서움이고 공포이다. 막연한 불안, 많은 철학자들이 이것에 대한 수많은 해석과 분석을 내놓았지만 어쨌든 그 불안은 해소하지 못했다. 그만큼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해야할 요소인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것을 자신의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행위의 결과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네 개의 발이 달린 금박으로 장식한 작은 탁자 위에 작은 기둥을 세우고 다시 탁자를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두 소녀가 이야기하듯 손짓을 하는 상반신 모습을 감실처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화려하게 채색한 커다란 소녀 얼굴을 올려놓는다. 이것이 ‘알레고리’ 작품형상이다. 이미지와 의미의 빗나감, 서로 어긋남은 바로 불안의 근원이며 시작이다.
현대예술, 아니 현대도자라 해도 그것의 의미는 오로지 자신의 내면속에 있는 마음일 뿐, 그것을 알아내려고 하는 마음조차 부질없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옛날 순진하고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인간의 굴레인 불안도 사라지지 않을까?
_작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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