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조영남전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TV 갤러리 방송 보기
아래주소를 클릭하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전시소개>

 
69년에 제작된 작품과 72년, 73년에 제작된 몇 작품들을 보고 있으며, 조영남은 가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화가 조영남으로 남아 났을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가 작성한 연보를 참작해보면, <69년은 김웅, 최욱경, 박대인 등과 어울려 미술의 기쁨을 나눔, 우연히 발겨한 니콜라 드 스탈의 서정추상에 극도로 매료됨>으로 나와 있다. 그가 한창 가수로서 인기를 획득해 나가고 있을 무렵, 다른 한편에선 그림에 몰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의 가수로서의 생애와 화가로서의 생애는 어쩌면 비슷한 시기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음악은 밖으로 드러나는 수단으로 진행시킨 반면, 그림은 혼자만의 작업으로 추수려 온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가 조영남을 보면 참 재능이 특출한 藝人이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되는데 물론 이점은 가수로서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의 영역에도 고스란히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경력난을 보면,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한 적이 없다. 고1때 교지 제작에 삽화 전문으로 발탁되었다는 사실과, 고3때 미술부장을 역임했다는 것이 미술과 관계되는 기록일 뿐 이후는 별다른 미술 수업을 받은 흔적이 없다. 음악은 정식 음악대학을 다녔으니까 본격적인 수업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미술은 순전히 독학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어느 한 쪽의 기량이 승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쪽은 위축되는 것이 통상인데, 그의 경우는 두 개의 영역에서 다같이 뛰어난 역량을 나타내 보이고 있어 타고난 예인이라는 감탄을 절로 하게 된다. 여기서 예인이란 후천적인 경험에 타고난 재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음악과 미술에 다같이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것이다. 조영남이 본격적인 그림제작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체류 시기인 1970년대 중반이 된다. 이 시기에 그의 연보에는 <향수달래기 겸, 취미 겸, 유화에 손을 댐. “고상한 취미를 극대화시킴이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다.”라는 구호아래 본업이어야 할 음악이나 신학보다 훨씬 강도 높은 열정으로 미술작업에 고군분투.>(1976)로 나와 있다. 이 때 그리고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서는 일련의 태극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나오다가 곧이어 바둑판 시리즈와 화면에 소쿠리, 노끈과 같은 입체적인 오브제를 꼴라쥬하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입체적인 꼴라쥬 작업은 최근 일련의 설치물로 자연스레 발전되어져 그의 작업의 진폭은 평면에서 공간 설치물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조영남의 화면은 강한 구성적 패턴을 지니고 있다. 평면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구성을 시도해 나가는 발전의 추이에서도 이 같은 유전적인 일면을 떠올리게 한다. 화톳장을 꼴라쥬하거나 태극기를 그리거나 바둑알을 꼴라쥬하거나 그가 지금까지 작업해 온 평면회화에서 공통되는 것은 일류전(Illusion)의 탈피다. 언제나 직접적 현실로 되돌아와 있다. 화톳장, 태극기, 바둑알은 그 자체로 이미 현실적 물체이다. 그려지는 것이라기 보다 직접의 현실을 화면에 끌여들인 것이다. 이점에서 조영남의 그림은 처음부터 오브제성이 강한 회화로 특징된다. 어떤 평자는 이와 같은 일상적 물질의 원용을 팝(Pop)적인 문맥으로 추구하고 있는데, 그가 미국적인 팝에 어느 정도 빠진지는 알 길 없으나, 그런 영향관계보다는 일류전을 제거하고 보다 직접의 현실로 되돌아오는 그의 강한 현실감각(문화적 측면에서)에 더 깊은 요인이 있지 않나 보인다. 이런 현실감각은 그의 일상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꾸미지 않은 소박한 태도로 작품에 반영 되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치기만만하다고나 할까.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자신의 작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개의치 않는 태도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중속에, 현실속에서 숨쉬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것이 예술을 더욱 강하게 하는 인자로 작용하고 있다.

오광수(국립현대미술관관장 미술평론가)
 
 
<작가 프로필>

조영남(Cho Youngnam 趙英男
1945 황해도 출생
1964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입학
개인전
1973 제1회 개인전(한국화랑, 서울)
1990 개인전 (Simonson 화랑, L.A.) ,초대전 (Bauweres Museum, L.A.)
1994 초대전 (HAENAH-KENT갤러리, N.Y.), 1995 조영남전 (한국미술관, 용인)
1997 한국 미술제 이목화랑 초대전 (예술의 전당, 서울),부산일보 기획초대전 (미술관명, 부산)
1998 기획초대전 (갤러리 상, 부산), 개인전 (시모노세키 시립미술관, 일본),초대전(N/C갤러리, 부산)
1999 초대전 (엑스갤러리, 부산), LA RADIO KOREA (미술관명, L.A.)
2000 미국 San Diego 초대전 (미술관명, San Diego) ※제14회 초대개인전
2004 태극기는 바람에 펄럭인다 (예술의 전당, 의정부)
2006 초대전 (오스갤러리, 전주, 완주, 임실),화수 조영남展 (명지미술관, 담양)
2008 The 3rd White Sale-조영남과 함께하는 자선경매(미술관명, 장소)
2009 펀아트 조영남 (아시아 아트 뮤지엄, 부산), Joseph Beuys &Youngnamoots Voice (CT갤러리, 서울)
2009 Global art tour (Beijing SZ Art center, 중국),인사미술제 팝아트 (윤갤러리, 서울)
2010 조영남 딴짓예찬 (에비뉴엘 롯데갤러리, 서울)
2011 畵手 조영남, 회화 45년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광주)
2011 9/21~26 KIF 한국 국제아트페어 특별초대전작가로 참여(special boots)
2011 11/7~12 극동갤러리 개관전
2012 다정다감 (장은선 갤러리초대전, 서울)
2012 초대전 (김재선 갤러리, 부산)
단체전
1999 한국의 Pop Art展 (성곡미술관, 서울)
2008 화이트 세일展 (옥션스페이스, 서울)
2004 광주비엔날레 특별전-한국특급전 (광주비엔날레관, 광주)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