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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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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제 14회) 전시 개최
나현, 노순택, 정은영


전시명: 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장소: 아뜰리에 에르메스(02-544-7722)
전시오프닝: 2013년 7월 25일(목), 오후 6시
전시기간: 2013년 7월 26일(금) – 2013년 9월 29일(일)
시상식: 2013년 9월 10일(화)

오프닝 공연 <정동의 막> 오후 6:30, 출연/남은진, 연출/정은영

에르메스 재단이 후원하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7월 26일부터 9월 29일까지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3층에 위치한 현대미술공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 나현, 노순택, 정은영 전시’를 진행한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은 국내 미술계를 지원하기 위한 에르메스 재단의 문화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매년 후보 작가 3명을 선정해 작품 제작 및 전시를 지원하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상패와 상금을 제공하고 있다.

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심사위원단 5인은 김애령 예술의 전당 전시프로그램 디렉터, 문영민 메사추세츠 주립대 애머스트(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교수, 박찬경 작가, 3인의 국내 미술계 인사와 영국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 학장인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와 벨기에 라 베리에(La Verriere)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기욤 데상쥐(Guillaume Desanges), 2인의 외국 미술계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나현

<바벨탑 The Tower of Babel>

나현은 시공간의 차이를 가로지르고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고 현재에서 역사 이전의 흔적을 발굴한다. 이러한 실천이 가치를 얻는 것은 역사에 관한 상당히 촘촘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기록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민족지적 미술, 한국성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궤적을 추적하는 정체성 미술로 정의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나현의 작업을 축소시키는 면이 있다. 그의 작업은 인류학적 상상력을 매개로 한 풍경화이자, 영토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재구성한 새로운 형식의 랜드아트이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가상의 팩션(faction)이고, 박제화된 역사 속에 끼어들어 종료된 사건의 미심쩍은 부분을 파헤쳐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정도의 적극적인 르포르타주이기도 하다. 
정현 | 미술비평가, 추천위원

나현은 베를린 ‘악마의 산(Teufelsberg)’과 서울의 난지도를 바벨탑의 유적으로 추정하고 그 역사를 되짚어보며 바벨탑임을 입증해가는 프로젝트를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서울과 베를린에서 이루어지는 두 발굴 작업에서 작가는 각각의 장소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목조우물을 설치하고 근•현대의 다양한 기억과 시간의 층위들을 발굴해가며 두 모뉴멘트의 역사 속에 내재된 폭력의 속성을 드러낸 바벨탑은 환상 속의 그 무엇이 아닌 우리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반복되는 역사의 실재임을 말하고자 한다. 프로젝트에서 바벨탑의 근거는 창세기와 유태인의 역사를 담은 ‘The Antiquities of the Jews’에 기술된 바벨탑의 기록을 바탕으로 삼는다.

악마의 산(Teufelsberg)

2차 세계대전 후 전범국으로서 독일을 압축해서 보여주었던 곳은 동, 서로 양분된 베를린 이였다. 그리고 이 도시의 우선 과제 중 하나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잿더미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전쟁의 흔적들을 치우는 것이었다.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을 돋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서베를린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도시의 잔해와 쓰레기들을 서쪽 숲 속에 모아두기 시작하여 도시에서 끄집어낸 전쟁의 기억들은 해발 120미터 가량의 산을 만들어냈다. 이때부터 평지였던 베를린의 풍경에 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베를린 시민들은 그 산을 토이펠스베르그(Teufelsberg/ Devil’s mountain)라 불렀다. 말 그대로 악마의 산인 것이다. 이곳은 전쟁을 기억하는 모뉴멘트이자 과거를 딛고 미래를 계획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며 하나의 바벨탑이 되었다. 이후 냉전이 시작되자 산 정상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미국과 영국의 전기송신회사가 세워지며 바벨탑의 풍경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났다. 사실 그 회사는 미군과 영국이 동독지역을 감시하고 감청하던 비밀기관이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알리는 1989년 독일 통일 이후 이곳 역시 지금은 폐허가 되어 악마의 산 위에 만들어진 새로운 모뉴멘트가 되었다. 

난지도

난지도는 대한민국 서울의 근대화 과정을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모뉴멘트이다.
한국전후의 폐허와 60년대의 혼란 속에 가난에 허덕이던 국가를 재건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의지는 70년대 고속성장의 산업화 시대를 열어놓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수도, 서울에서 쏟아져 나오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배설물들은 난지도에 모여 지기 시작하였다. 섬은 점점 도시의 쓰레기더미가 만들어내는 황량한 산으로 변해져 갔다.
1993년, 어느 정도 주위를 살펴볼 수 있게 된 서울 시민들은 그들의 배설물을 묵묵히 받아내던 난지도의 임무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2002년에는 월드컵 게임의 한국 개최에 맞춰 여러 가지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가 활성화된 인공 공원으로 바뀌었다. 물론 지표에서 조금만 파 내려가도 과거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드러내는 지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노순택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In search of Lost Thermos Bottles>
 
확실히 노순택의 대부분의 사진들이 드러내는 주제는 진부할 수도 있는 논평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디테일과 긴 호흡은 ‘얄읏한 공’(2004-2007) 시리즈에서 미군이 고출력 레이더로 사용했던 커다란 흰 공을 사진마다 은밀히 드러낸 것처럼 노순택만의 결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사진이 때때로 상당히 단호한 어조로 ‘생명보조장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호흡할 때 빛을 발하는 순간을 무심코 내보인다. 
조앤 기 | 미시간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추천위원

노순택은 지나간 한국전쟁이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를 탐색해 왔다. 전쟁과 분단을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 가둔 채 시시때때로 아전인수식 해석잔치를 벌이는 ‘분단권력’의 빈틈을 엿보거나 째려보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발걸음이 매향리와 대추리로, 강정마을과 용산참사와 현장으로, 연평도와 백령도로, 혹은 좌우 시위대가 충돌하는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심지어 저 먼 평양으로 향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분단이 직접 낳았거나 혹은 분단으로 인해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온갖 사건과 사고의 장면들을 채집하면서 노순택이 내린 생각은 간명하다. “분단은, 오작동으로써 작동한다.”
그는 첨예하게 작동하는 분단뉴스의 현장 속으로 ‘곧바로’ 뛰어들었지만, 채집해온 장면을 드러내는 형식에선 약간의 ‘에둘러 가기’를 시도해 왔다. 초대형 미군기지확장사업으로 인해 폭력적인 이주를 겪어야 했던 평택 대추리에서 사건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얄읏한 공’으로 에둘러 간 것이 한 예다.
이번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에서 노순택은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라는 신작을 선보인다. 이 작업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벌어진 포격사건과 그것을 둘러싼 ‘오작동들’을 다루고 있다. 
사건 당일,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잔해더미 속에서 ‘흔적 찾기’ 작업 중이던 그는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포격사건을 전해 듣는다. 그는 연평도로 향한다. 포격이 남긴 처참한 풍경들을 카메라와 수첩에 담는다. 연평도에서 빠져나온 뒤 예정됐던 외국의 워크샵에 참여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연평도 소식을 계속 찾는다. 그러던 중에 이른바 ‘보온병 포탄발언’ 해프닝을 접한다. 웃어넘긴다. 하지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안상수가 손에 들었던 보온병은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에는 세 개의 레이어가 중첩되어 있다. 첫째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포탄”이라 외쳤던 보온병의 행방을 찾아 연평도를 헤집고 다니는 이야기다. 그는 마을주민과 인터뷰를 통해 그곳에 왜 ‘포탄’이 널려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전해 듣는다. (그곳은 다방이었다. 다방커피 배달의 필수품이 보온병 아니던가.) 둘째는, 안상수라는 ‘분단정치인’의 탄생과 정치역정, 행보를 꼼꼼히 관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상수는 분단정치가 어떻게 ‘오작동을 통해 작동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정치인이었다. ‘보온병 발언’은 우연히 포착된 것이 아니라, 안상수와 같은 분단정치인에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상시적 해프닝이었으며, 그는 특이모델이라기보다는 전형모델이라는 것이 노순택의 생각이다. “분단정치는 분단정치인을 배설한다.” 셋째는, 작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노순택에게 분단은 무엇일까. 왜 분단풍경 혹은 분단장면에 집착해 온 것일까. 그것을 기생이라 말한다면 지나친 자학일까. 노순택은 어쩌면 안상수야말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아닌지 의심한다.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2년여의 시간 동안 노순택이 써 내려간 일기에 기반하고 있다. 사진과 글로 써 내려간 그 일기는 이번 전시를 통해 두툼한 책으로 묶여 나왔다. 아울러 이러한 ‘분단의 나날’이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의 나날’에 개입하고 있는지 노순택은 <분단인 달력>이라는 괴물의 달력으로 거울을 내민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남한인이거나 북한인이 아닌 ‘분단인’이다.


정은영

<정동의 막 Act of Affect>

정은영에게 미디어란 제도화 된 미술의 영토에서 탈출을 꾀할 수 있는 매체처럼 보인다. 그에게 영상매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과 표현의 도구가 아닌 자신이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시 전달할 수 있는 재현과 해석이 공존하는 ‘구전적 매체’이자, 미술이란 형식을 의도적으로 교란하려는 정치적 태도를 반영한다.
정현 | 미술비평가, 추천위원

정은영은 지난 4년여에 걸쳐 여성국극 배우들의 ‘남성되기’에 관한 일련의 작업을 진행해 왔다. 여성국극은 1940년대 말에 시작되어 1950-6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가 쇠퇴한 창무극의 한 종류로, 노래(唱)와 춤(舞)이 어우러진 일종의 오페라나 뮤지컬과 흡사한 형식에 주로 전통 판소리 사설이나 상고시대의 야화, 혹은 유명 대중 소설 등의 스토리를 각색한 내용을 입혀 공연하는 무대예술이다. 여성국극은 전통적 성별역할을 극대화해 수행하는 배역들과 그 배역들 간의 사랑과 갈등을 스토리로 적극 전유하지만, 모든 배역을 오로지 여성배우가 연기하는 매우 독자적이고 전복적인 특징을 가진다.
정은영은 특히 여성국극 남역배우들의 무대연습과 젠더 표현을 쫓으며, 두 개의 성별로 구성되어 경합하는 전통적인 성별체계와 담론들에 도전해 왔다. 더불어 이 배우들이 사회적인 관습과 제약들을 넘어서서 스스로를 ‘남성’인 ‘배우’로 동일시 함으로써, 규범에 포섭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주체를 수행하도록 이끈, 어떠한 표상 불가능한 힘에 대해 질문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들이 어떻게 새로운 저항언어이자 정치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 왔다. 작품의 형식은 주로 단채널 비디오로 보여졌으나 근래에는 여성국극 1, 2세대인 노인배우들이 직접 출연하는 공연제작에 집중한 바 있다.
이번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신작 <정동의 막>은 사라져 가고 있는 여성국극 전통의 끝자락에 남겨진, 거의 마지막 세대로서의 갈등과 내적 투쟁을 경험한 젊은 여성국극 남역배우를 조명한다. 이 작품은 약 15여분의 단채널 비디오로 제작되며, 1회의 퍼포먼스를 동반한다. 배우는 무대에 서기까지 관계하는 모든 시공간에서 지루함에 가까운 반복적인 훈련의 행위를 통해 남성성을 수행하며, 서서히 남성이 되어간다. 이 ‘되어감’의 과정을 밀착적으로 추적, 포착하는 이 작품은 또한, 한 남역배우의 고민과 갈등을 끌어안은 채로 분출하는 비언어화된 어떤 뜨거운 이끌림과 열망/정동에 감응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한편,  <가사들> 연작은 1, 2세대 여성국극 배우였던, 이소자, 조영숙, 이등우 선생의 무대 안/밖의 이미지들을 분석하고 재조립한다. 각각 가다끼(악역 조연), 삼마이(재간꾼 조연), 니마이(주연)로 이름을 날렸던 이 당대의 걸출한 남역배우들은 무대 밖의 삶조차 무대에 서기 위한 시간들로 조밀하게 채워둔다. <가사들>은 그들의 (무대 밖) 일상적 장소에서 드러나는, 무대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과 애착을 풍경으로, 사물로, 기억으로, 행위로, 노래로 이끈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은 첫 회인 2000년에 장영혜가 수상한데 이어 2001년 김범, 2002년 박이소, 2003년 서도호, 2004년 박찬경, 2005년 구정아, 2006년 임민욱, 2007년 김성환, 2008년 송상희, 2009년 박윤영, 2010년 양아치, 2011년 김상돈 그리고 2012년에는 구동희 작가가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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