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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momsal/:성곡미술관 22기 인턴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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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은 인턴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턴기획전 <몸·살/momsal/>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몸을 하나의 수단 또는 도구로 여기는 태도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성곡미술관 인턴십 과정 수료 후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곽현우, 김지희, 성정연, 이현아, 이해미 등 5명의 신진기획자들이 기획했으며, 한국 작가 신제헌, 이선행, 이승훈, 흑표범과 중국의 추이쉬엔지(崔宪基, CUI Xianji), 이스라엘의 시갈릿 란다우(Sigalit LANDAU)가 참여하는 주제기획전입니다. 전시에 참여하는 6명의 다국적 작가들은 평면, 설치, 영상,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몸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몸·살/momsal/


몸살은 단순히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정신적 상태가 동반되는 특수한 질병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쑤시는 등 신체에 물리적·병리적 징후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몸에 이상이 생기면 정신에 영향을 미쳐 두통이 유발되고 나른해지기도 한다. 지금 시대와 세상은 말 그대로 몸살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네 인간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극도의 자본주의로 인한 사상적 빈곤과 공허, 무한 이기주의는 가난, 환경오염, 전쟁, 폭력, 인신매매, 기아, 정치적 억압 등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켜왔다. 도처에 긴장과 불안이 가득하다.


<몸·살/momsal/>전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몸과 살에 대한 재인식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했다. 몸의 생성부터 살펴보자.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순간 남녀의 성별로 나뉜 몸은 완전히 서로 다른 정체성과 삶을 획득한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사는 삶과 남성으로 태어나 사는 삶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또한 몸은 우리의 일상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먹어야 살고 소화되고 남은 찌꺼기를 배설하는 몸. 적당한 체온 유지가 필요하고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하며 언젠가는 죽어버리는 몸. 그것은 생명이자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으로 결코 열등하거나 대상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감각이 필요하고 감각은 몸에서 비롯된다. 사랑, 고통, 열망, 질투, 만족, 행복 등의 감정은 보고 듣고 먹고 만지고 냄새 맡는 오감의 작용을 통해 불확정적이고 우발적으로 발생한다. 이렇듯 몸은 살의 육체와 정신이 함께 작용하고 만나는 소통의 장소이자 경계변이다. 정신과 몸이 뒤얽히고 섞이며 가장 진실된 존재의 모습이 비로소 드러난다. 육체와 정신, 세계가 만나는 지대로서의 몸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물질적 증거이다.


고대에 몸은 풍요와 생명의 상징으로서 미(美)의 근원이고 예술작품의 모티프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이성 또는 정신의 대립항으로 개념화된 몸은 인간이성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은 대량생산되어 쇼윈도에 놓인 하나의 상품처럼 소비대상으로 간주된다. 외출하기 전 거울을 보며 화장하고 자신을 꾸미는 행동은 과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인가? 거울 속의 눈은 타인의 시선이 되어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평가한다. 심지어 눈에 칼을 대어 쌍꺼풀을 만들고, 플라스틱 보형물을 넣어 코를 높이며, 드릴로 턱의 뼈를 깎아내기도 한다. 도심 도처에 즐비한 성형외과들은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 현대사회에서 몸은 유행에 따라 바뀌고 버려지는 옷이나 신발마냥 취급된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 몸의 위상은 더욱 격하된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나 핸드폰을 켜면 펼쳐지는 무한한 소우주는 인간으로 하여금 화면 앞에 고정된 몸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도록 한다. 거래처와 이메일로 일을 진행하고 SNS로 타인과 소통하는 현대인에게 디지털이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그런데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은 이 세계에서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이는 물리적 한계가 우리를 허구적 환상에서 깨워낸다. 그곳에서는 보고 들을 수 있지만 먹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나누는 사랑의 대화는 한번의 물리적 만짐만 못하다. 세계의 진귀한 음식을 아무리 눈으로 맛본들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잔만 못할 것이다. 후각은 어떠한가? 익숙한 향기를 통해 과거의 어느 순간을 불러일으키는 환기의 경험은 발을 내딛고 서있는 물리적 세계에서만 일어난다. 삶에 대한 진정한 향유는 시공간 속에 현존하는 몸을 통해 오감이 동시에 작용할 때만 가능하다.



이번 전시는 총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1전시실은 역사와 기억, 사회와 개인, 그리고 아이콘의 문제를 다루는 신제헌과 추이쉬엔지의 작품을 선보인다. 제일 먼저 마주치는 신제헌의 작품들은 자칫 뻔한 주제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보는 이에게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예술의 전복성을 환기하는 듯하다. 그들은 흙이나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듯 무겁고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종이박스와 껌 포장지인 얇은 은박지로 덮여 있음이 드러난다. 그 순간 기억과 미디어에 의해 고착된 아이콘과 의미의 관계가 무너진다. 추이쉬엔지, 한국명으로 최헌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중국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의문을 작품에 투영한다. 작품에 나타난 숫자들은 의심 없이 배우고 가르쳐 온 규칙과 이념이 과연 정답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추이쉬엔지는 내국인도, 이방인도 아닌 주변인이다. 작가 자신이 경계 위에 머무르며 살아온 삶과 시간은 그의 작품 세계를 특징짓는다. 역사 속 특정 인물들의 도상과 기호, 그리고 한자인듯 하지만 뜻을 알 수 없이 흘러내린 글자들은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과 사상의 혼란이 혼재된 상태를 보여준다.


2전시실은 이선행과 흑표범(Black Jaguar)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표범은 익히 알려진 ‘정오의 목욕’ 퍼포먼스에서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위한 일종의 치유의식을 치른다. 자신의 몸을 과녁으로 만든 그녀는 한낮 뜨거운 태양 아래 천천히 몸을 닦아내는 과정을 통해 그 날의 기억을 불러낸다.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지역 중 하나로 여겨지는 광주에서 작가에게 가해진 제한과 지원 철회, 그리고 외설논란은 흑표범의 작품을 제도와 개인, 기억과 망각, 예술과 외설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선행은 이불 속에서도 항상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심리 상태를 소재로 삼았다.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불은 더 이상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와 의무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 가장 일상적인 사물을 가장 불편한 것으로 만들며 개인을 짓누른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조차 편안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숙면이란 없다. 선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3전시실에서는 이승훈과 시갈릿 란다우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승훈의 불편한 사진들은 인간의 몸이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되는 현대사회의 치부를 드러낸다. 최근 만연하는 성형외과 광고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갸름한 턱 선에 오뚝한 코, 볼록 튀어나온 이마와 쌍꺼풀을 가진 서구형 미인들이다. 그러나 수술대에 오르기 전 재단을 위해 얼굴에 그려지는 선들은 아름답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다. 수술실에서 찍은 사진과 소리가 중첩되는 영상은 마치 상품을 디자인하듯 몸을 대상화하는 태도에 보내진 작가의 섬뜩한 경고다. 이스라엘 작가인 시갈릿 란다우는 몸과 경계, 그리고 장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과 땅이 만나는 자연발생적 경계인 해변에서 행해지는 란다우의 퍼포먼스는 이스라엘과 주변국들, 특히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발생해온 국경 문제,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과 전쟁을 ‘몸’이라는 또 다른 장소를 통해 드러낸다. 가시철조망으로 만들어진 훌라후프를 돌리는 ‘Barbed Hula’(2000)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Mermaids[Erasing the Border of Azkelon]’(2011)는 경계와 몸에 대한 란다우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가자지구와 아즈켈론 사이의 국경은 바다에서 파도처럼 밀려와 모래사장에 자국을 남기고 밀려가 버리는 벌거벗은 세 여성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지워진다. 경계는 둘 다이면서 어느 한 쪽도 아닌 모호하고 이상한 곳이다. 그녀의 행위는 몸이라는 경계를 세계로 확장하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전시에 참여한 6명의 작가들은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인간의 근원인 몸과 살로부터 출발해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 사회, 경제, 예술, 개인의 문제들, 즉 몸살의 징후들을 짚어본다는 특징을 교집합으로 갖는다. ‘몸살’이라는 단어는 순 한글로, ‘몹시 피곤해서 나는 병’이라는 뜻이지만, 글자 ‘살’을 ‘殺’로 읽으면 몸을 죽인다는 뜻으로 바뀐다. 지금 우리는 말 그대로 ‘몸을 살(殺)’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조건인 ‘몸’과 ‘살’에 대해 갖는 잘못된 태도에서부터 비롯된다. <몸·살/momsal/>전이 몸을 하나의 기호나 대상으로 정의하는 잘못된 사유에 의문을 던지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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