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4-02-28 ~ 2014-04-20
유료
02.737.7650
성곡미술관은 2014중견중진작가집중조명전으로 <김성연: 섬 Painted World>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허리세대 작가를 미술관 전시를 통해 지원하고 응원하는 성곡미술관의 대표전시프로그램 중 하나로, 지난 2013년에 개최한 바 있는 <로컬리뷰2013: 부산發>展 참여작가 중에서 관객반응이 좋았던 작가에게 주어지는 초대개인전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김성연: 섬 Painted World
김성연은 지난 30여 년 동안 회화, 사진, 영상, 오브제, 설치작업 등을 넘나들며 회화술(繪畵術)의 다양한 변용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특히 1990년대 초 미국유학시절에 익힌 첨단 비디오, 영상기법과 문화, 기기에 대한 이해는 자신은 물론, 귀국이후 부산미술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부산작가들의 비디오작업은 당시 김성연의 작가적 실천과 전위적 전시기획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역내 젊은 큐레이터들과 연계하여 이러한 흐름을 적극 소개하고 이론적으로 보급했던 대안적 커뮤니티 활동은 오늘의 부산미술지형 형성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김성연의 작가적 관심은 미디어, 특히 매스미디어에 의한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 거대담론의 형성과정과 피동적 수용자로서 개개인이 경험하는 현실간극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유학생으로서 경험한 자기 정체성의 불확실성 및 가변성을 비디오 설치작업으로 풀어낸 뉴욕에서의 첫 개인전(1992)을 시작으로 귀국 후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서울과 부산 등지를 오가며 선보인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잘 나타난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김성연의 형식실험은 비디오 작업에 대한 몰입과 함께 사진술과 회화술을 결합한 대형 캔버스 작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국내에서는 흔치 않았던 제작술, 지금은 전사 혹은 디지털 출력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photo on canvas’라는 방식에 주목했다. 캔버스의 한쪽 길이가 2-3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화면 위에 사진을 인화하고 다양한 화학용제와 물감을 적절히 조율하면서 브러시 스트로크를 강조하는 독특한 작업이었다. 자신의 사회에 대한 생각과 호흡을 거칠게 더하거나 과감히 덜어내며 사진 속 이미지를 지우거나 강조해내었다. 세피아, 흑백 등의 모노톤으로 주조된 이미지가 천연색 물감에 의해 부분 왜곡되거나 원상이 훼손, 은폐되었던 작업들로 미국의 산업시설이라든가 부산의 전래 도시이미지들을 대상으로 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작품이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3층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영상파일로 당시 김성연의 거칠고 세심한 젊은 감성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제작충동과 고민은 귀국 후 자연스레 본인이 몸담고 있는 부산의 도시정체성과 지역거주민의 삶의 풍경에 대한 반성적 작업으로 이어졌다. 네 번째 개인전 ‘도시의 굴뚝’(2001)이라든가, ‘Single Channel Video’(2003), ‘Trans-’(2005)展 등은 당시 그의 작가적 관심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전시였다. 이렇듯 2000년대에 들어 김성연은 당시 첨단 디지털 매체와 새로운 영상기기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사회현상과 세태를 단호하게 지적하고 반영하는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도시의 공룡’(2005)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 전시로 부산이라는 거대 도시의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작업들이 다수 소개되었다.
이 전시는 부산의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한 인구밀집지역의 일방적 재개발문제라든가 기형적인 물리적/심리적 지형변화를 사진으로 담아내고 그것을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다시 번안한 작업들을 다수 선보였다. 사진술에 단순 의존하는 작업들이 국내에 유행처럼 넘치던 시절의 작업으로 자칫 진부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으나,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디지털 기법으로 도시의 생태문제를 효과적으로 지적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한 김성연은 이후 특유의 회화적 감성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개인적/사회적 이슈를 사진과 영상작업을 통해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강조해나갔다.
이후 김성연은 2000년대 후반까지 ‘포장’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캔버스를 포장하다’(2006)를 시작으로 ‘포장의 이면’(2008)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캔버스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회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가로세로의 줄긋기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의 포장작업은 세상을 똑바로 살려는 자신의 의지를 다시한번 다잡는 자기다짐이자, 작가로서의 책무를 분명하게 천명하고 걷잡는 자기언표(言表)였다. 크고 작은 캔버스에 패턴화된 상업문양처럼 반복되는 그의 포장은 지난 30여 년 동안의 대부분의 김성연 작업이 그러하듯 뚜렷하거나 분명하지 않았다. 마치 카메라의 아웃 포커싱을 보는 듯한 그의 화면은 지독한 노동과 시간성이 투여된 것으로 평소의 영상어법을 회화적 버전으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수많은 선들이 중첩되며 서로를 가리고 드러내고 원상을 은폐하고 포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쩌면 절대 사라지지 않는 어떤 불멸의 기운이 발현되고 있는, 혹은 부정할 수 없는, 가릴 수 없는 진실된 기운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포장에는 분명하게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한줄기 빛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 누군가의 존재와 말씀, 흔들리지 않는 중심과 강령을 떠올리고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나아가 진실과 본질을 은폐, 위장하려는 어떠한 그릇된 폭압적 시도에도 굴하지 않고 존재를 발하는 지치거나 밟히지 않는,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반추하게 한다. 일견 프티(petit)해보이지만 결코 퇴색할 수 없는 강한 집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세상과도 같은 캔버스 영토를 일정한 반복적 패턴으로 ‘포장’하거나 ‘포장지화’하는 이러한 ‘흐린 포장’, ‘흐려진 풍경’ 등과 같은 일련의 작업은 캔버스를 벗어나 크고 작은 박스 위에 가로세로의 선을 중층적으로 더하는 입체작업으로 이어진다. 비교적 삶의 풍경 바깥에 위치하려한 작가의 관찰자적 시선으로부터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인간 군상들과 부딪고 소통하려는 김성연의 변화된 강한 의욕을 만날 수 있다. 일상의 오브제를 적극 활용하나 기존 영상작업이나 캔버스 작업에서 볼 수 있었던 감성을 입체적으로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비디오설치작업을 떠올리는 설치작업으로 허접한 박스를 해체하거나 다른 용도의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박스들과 서로서로를 결합시켜나가며 부담스럽지 않은 개인초상, 집단초상, 삶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부산의 킴스아트필드미술관에서 가진 ‘포장의 세기’(2009)展은 이러한 박스작업의 임팩트가 가장 강하게 드러났던 전시였다. 작가는 수 백 개의 포장용 박스와 상품화된 기성박스, 혹은 그것들로 만든 인물상만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오랫동안 이런저런 화제와 뒷담화를 낳았던 전시로, 바닥은 물론, 벽면, 천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출연시킨, 김성연의 연출력이 돋보인 한편의 연극과도 같았던 전시로 기억된다. 이후 김성연은 이들 인물상들을 독립된 상태로 드러내지 않고 불투명한 아크릴박스 안에 가두어 넣기 시작했다. 무언가 분명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은 세상의 기운들, 소통을 하고 있으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불통에 가까운 답답한 기운을 강조하거나 울타리에 가두듯 포획하려 한 ‘이중의 박스’, ‘이중의 초상’작업으로 이해된다. 또한 전개도처럼 완전히 펼쳐지고 해체된 포장박스 위에 다시 일정한 패턴 모양을 덧칠한 상태의 인간상은 마치 인간 속을 후련하게 까발려서 보여주는 듯하다. 답답함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작업이다.
2010년대에 들어 김성연은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을 사진과 영상으로 더욱 강조하고 있다. 2014년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사진술과 영상술을 최대한 활용한 불투명하고 불명확한 상황연출을 이어오고 있다. 작품의 명제와 개인전 타이틀도 ‘Out of Focus’(2010)라고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기존의 ‘포장된 캔버스’나 ‘포장의 이면’ 형태로 덧칠한 캔버스를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후 컴퓨터 보정작업으로 매만지는, 혹독한 아웃 포커싱을 부여하여 변형을 가한 사진출력작업이다. ‘그려진 사진’, 혹은 ‘사진화된 회화술’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2012년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가진 개인전, ‘An Island’는 말 그대로 ‘섬’을 모티프로 제작한 영상 작업만을 선보였다. ‘로컬리뷰2013: 부산發’(2013) 전시에 선보인 영상 속 바로 그섬이다. 세상의 모호함에 방황하던 김성연의 몸과 마음은 최근 무언 가에 꽂혔다. 다름 아닌 섬이다. 어렵게 마련한 바닷가 김성연의 작업실에는 섬이 하나 있다. 김성연이라는 작은 섬이다. 그리고 유리창 밖으로 작은 바위섬 하나가 내려다보인다. 기가 막히게 조우하는, 마주하는 소박한 섬이다. 갯바위로 부를 수도 있겠다. 김성연에게 그것은 자신의 자아가 오롯이 투영된 자기초상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섬하나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섬은 모두에게 크고 작은 자화상인 셈이다. 작업실에서 매일처럼 마주하는 그것은 지난 젊은 시절 김성연의 초상이기도 하며 작금의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후반생을 시작하며 잠시 멈추어서 가쁜 호흡을 가다듬는 ‘섬’(pause). 친구들과 ‘섬’(대안공간)에서 시작했던 미술가로서의 힘찬 출발. 결코 잊을 수 없는, 잊히지 않는 맹서(盟誓)와 추억 그 자체로서의 ‘섬’이다.’
여전히 애매하고 모호하다. 아련하다. 드러나는 듯 가려지고 가려질 듯 드러난다. 지워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지난 30여 년 동안 김성연이 반복적으로 선보여온 작업의 화두는 모두 그러할지도 모른다. 그의 모든 작업은 지워지고 잊혀진 사실과 기억, 왜곡되고 뒤틀려 본질이 흐려진 세상풍경의 본상을 부디 돌아보자는 역설적 권면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익히 알고 있고 모두가 동의했다라고 여기는 미더운, 때론 볼썽사나운 현상의 진실과 원상을 미학적으로 규명하고 상황의 일방성과 불명확함을 함께 시나브로 걷어내어 보자는 지성적 노력과 제안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성연의 작업은 이러한 질문과 제안을 누차에 걸쳐 ‘덧칠하고’ ‘닦아내며’, ‘포장’과 ‘아웃 포커싱’이라는 화법으로 강조하며 세상에 대해, 스스로를 향해 말을 건네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카메라의 대안렌즈와 대물렌즈가 그러하듯 말이다. 섬을 마주하는 그의 모습이 부드러운 듯 단호하다. 불명확함과 모호함에 맞서는 결기가 진동한다. 극한까지 밀고가려는 태세다. 뜻이 확고하니 그 길 또한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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