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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환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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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환
2014. 4. 24 - 30
Opening 24일(목) 오후 6시


문자거울속 


이재은 | 미술비평, 미술사 박사



노주환 작가는 본디의 자리가 사라져 흩어지고 있는 활자들을 자신의 장(場)에 펼친다. 독서광인 노주환은 청년시절 우연히 접한 다니엘 J. 부어스틴의 『발견자들』에서 금속활자와 한글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독창성과 창조성의 결정체임을 확인했다.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역사는 구텐베르크를 앞선다. 그리고 어떤 문자도 모방하지 않은 28자모(字母)의 한글은 수천 개의 상이한 문자가 필요한 한자와 달리 인쇄술 발전에 적합한 문자다. 그러나 불행히 당대 지식층은 한자에 취해 금속활자와 한글의 만남이 가져올 무한한 가능성을 읽지 못했다. 그 결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달리 우리 조상의 그것은 가능성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활자의 울음이 노주환 귓가를 울렸다. 이후 그는 발품을 팔아 인쇄소들을 다니며 활자 하나하나를 모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조상의 지혜를 조형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활자와의 노주환의 첫 인연부터 최근 선보이고 있는 문자와 속담에 담긴 그의 조형 의지를 드려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혜의 상자>(2014)는 우리 조상의 금속활자와 한글의 만남의 순간을 재조명한 기념비적인 <책> 연작을 구성한 활자가 단지 인쇄술을 위한 도구가 아닌 문자를 담고 있는 그릇임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활자의 존재는 문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들에서 우리 조상의 지혜의 환유로 작동한 활자에서 그것의 근본을 마주한 것이다. 





금속 속 문자의 울림으로 말미암아 작가 자신도, 문자도 활자로부터 걸어 나와 전시 공간을 자유롭게 부유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어느 옛날부터 ‘지금-여기’에 전승되어 온 속담의 시간성을 재현하듯, 우리네 삶과 지혜를 담은 모시를 수직으로 내리운다. 그에게 속담은 활자의 연속선상에서 우리 조상의 지혜의 환유이며 문자와 우리 조상의 삶이 만나는 장소다. 즉 지금-여기서 우리 조상의 삶과 지혜가 모시 결을 따라 출렁인다. 


다음으로 노주환은 구체시(Concrete poetry)를 쓰듯, 문자로 이미지를 그린다. 활자의 다양한 높낮이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은행나무에서 영원히 피지 않을 <꽃>이 피어나더니, 우리 모두의 삶의 토대인 “가족”, “사랑”, “건강”이 봄을 맞은 들꽃처럼 피어난다. 눈이 부셔 고개를 돌리니 “먼저 할 일부터”, “천천히”, “영혼의 자유”, “관심”, “자비”, “사랑”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의 생활신조다. 소리가 들려온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으로없을것이오.” 갑자기 묻고 싶다. 욕망의 신기루에 쫓겨 사는 우리네는 문자속우리와 만날 수 있을까? 문자속노주환은그를근심하고진찰하는것인가? 문자속의그는 과연 이상의 “거울속의나”와 달리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노주환의 <거울>은 이상의 시와 기묘한 아이러니를 이루며 깊고 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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