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근은 일본의 정치, 문화, 사상의 큰 전환기였던 1960년대 후반 미술계에 입문하여 실험성 강한 작업으로 인정을 받은 후, 예술의 꽃을 피워가던 1980년대, 34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생을 마친 재일작가이다. 그는 한일미술사에서, 이우환, 곽인식, 곽덕준, 전화황 등과 함께 디아스포라의 삶을 독창성 뛰어난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로 알려져 있다. 

2014년 3월,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재일교포 2세 작가 문승근 32주기 추모전으로 <문승근-무한의 시>를 개최하였다. 광주시립미술관이 하정웅 기증을 통해 소장한 문승근 작품은 전국 최대 규모인 112점으로, 그 중 주요작품 80여점을 선별하여 대규모로 4개월간 전시를 진행하였으며, 전국의 미술전문가들로부터 문승근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귀한 전시로 호평을 받았다. 갤러리GMA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문승근-무한의 시>는 광주 전시를 축소하여 개최하는 전시지만, 가능한 한 문승근 작업의 시기별로 중요한 판화, 수채화, 유화, 조각 작품들을 옮겨와 전시함으로써 서울시민들에게 다양한 ‘문승근의 작품세계’를 알리고자 한다. 선별된 작품 28점에는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인물수채화도 포함되어 문승근의 또 다른 개성을 엿볼 수 있다.

1960년대 중후반, 문승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구타이미술협회는 기존 예술개념 타파를 통해 사회변혁과 의식개혁을 추구한 일본 현대미술의 막강한 선도그룹이었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한 문승근의 실험적이고 비평적인 작업은 시대를 앞서가는 추상 회화를 만들어냈다. 판화, 유화, 수채화 등 문승근의 작업은 행위의 반복을 통한 자기 확인, 그리고 단순한 반복의 집적을 통한 깊은 울림과 무한성의 추구를 본질로 하고 있다. 그 저변에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서의 자기존재에 대한 고뇌와 예술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 질문이 들어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문승근의 작품세계가 매우 견고해진 시기로써 단순 반복‧무한 증식을 통한 동일성과 차이성, 개념과 현상, 규칙적 반복과 상반된 일회적 긴장감, 공간적 지속성과 시간적 단절의 개념들이 작품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치열한 작업으로 국제무대에서 성과가 두드러지는 도중, 1982년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나 문승근 예술에 대한 아쉬움을 크게 남겼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작업을 통해 극복해 간 문승근의 예술혼은 갈수록 빛을 발하며,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