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4-09-02 ~ 2014-09-21
무료
02.738.7570
PHILOSOPHY OF 90°
진화랑
이종철 작가는 18년 여정 동안 판화로 시작하여 사진과 영상작업을 아우르고 현재 회화작업으로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작업 초기부터 기하학적 형태를 반복시키는 방법으로 "무한적 상상" 을 끌어내는 일에 몰입해왔습니다.
이번 전시 <90도의 철학>은 90도 직각에서 나올 수 있는 호의 형태를 바탕으로 합니다. 작가에게 360도는 완전한 독립, 180도는 등돌림과 단절입니다. 90도는 옆을 바라봄의 의미입니다.
호는 열린 형태로 유기적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호가 이루는 화면은 각각 하나의 단위(unit)로서 규칙적이면서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구조를 생성시킬 가능성을 지닙니다. 절제된 네 가지의 색, 모르타르(mortar)가 만들어내는 최소한의 두께감과 마티에르의 균형 역시 가능성과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상상을 위한 열린 구조는 소통의 무한 확장을 통한 관계의 유희를 은유 합니다.
서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결합되는가에 따라 매번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이 계속 확장해가는 행보에 함께 하시길 희망합니다.
“180도로 바라봄은 단절, 혹은 새로운 포맷(format)에 관한 의미라면,
90도로 바라봄은 소통 즉 <옆을 보다>라는 의미이다. 인간만이 가지는 즐거운 유희, 고개 돌려 옆을 보다.”
-작가 노트 중
90°의 미학, 열린 결말을 위한 사유
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대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좋은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혼자 모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예법과 올바른 예의범절의 적절한 범주를 이해하는 작가라면,
혼자 모든 것을 생각하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나의 경우, 독자에게 이런 종류의 예의를 끊임없이 실천하고 있으며,
나의 상상력이 그런 것처럼 독자의 상상력이 바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전력하고 있다.
Laurence Sterne, Tristram Shandy, New York: The Modern Library, 출간 연도 미상
(원본 1760-1767), pp. 95-96.
예술가의 작품은 항상 그의 삶과 함께 이루어진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예술에 대한 정의와 가치 부여가 다르다 하더라도 예술이 작가의 반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삶이 작품에 전달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삶을 서술적으로 풀어내거나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예술가는 자신이 경험하는 하루하루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를 실현하며 매일의 흔적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이종철의 작업 역시 삶의 직접적인 반영이다. 작가는 삶에서 체득한 사유의 결과물을 정제(精製)하여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사유의 결과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통하기를 원하며 소통을 바탕으로 각자의 사유와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유기적 관계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는 그의 전(全) 작업을 관통한다. 유기적 관계에 주목하는 작가는 우리의 삶이 퓨전(fusion)이나 하이브리드(hybrid)와 같다고 말한다. 특히 작가를 포함한 우리가 머무르는 오늘날은 복수적 이데올로기(ideology)와 패러다임(paradigm)의 시대이자 불확정적인 시대, 다양성과 다원화의 시대이다. 삶은 언제나 섞임과 혼성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무엇인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기존의 사유 방식과 관념 체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바탕이 되어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능성과 의미까지 생각하게 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날실과 씨실이 엮어지듯이 교차하며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 중에 놓인다. 이에 작가는 개념과 형식, 모두에 있어서 유기적 확장에 몰두한다.
이종철은 주제, 재료와 매체의 확장을 겁내지 않는다. 기독교와 불교에서부터 푸코(Michel Foucault)의 철학,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issue)들, 삶과 죽음 그리고 섹슈얼리티(sexuality)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고민, 판화, 한지를 이용한 캐스팅(casting), 사진, 회화를 넘나드는 형식적 실험, 시각과 청각, 촉각을 넘나드는 시도들, 아날로그(analogue)와 디지털(digital), 단색조와 다채색의 공존은 무모해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이 모두는 결국 하나의 천을 구성하는 씨실과 날실이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천은 유기적 관계의 확장이라는 작가적 사유의 실현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점에 달한 것이 90°의 미학을 보여주는 <MV90> 시리즈이다.
<MV90> 시리즈는 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면의 구획 짓기로 구성되는데, 이 때의 선은 90° 직각에서 나올 수 있는 호(弧)의 형태에 바탕을 둔다. 작가에게 360°는 완전한 독립, 180°는 등돌림과 단절이다. 원은 그 스스로 완전한 형태이지만 폐쇄적이며 소통과 확장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의 흡수이다. 이와 달리 호는 원의 일부이면서 언제든 원으로 이행될 수 있는 가능성의 형태이다. 또한 호는 불완전한 형태가 아니라 열린 형태이기에 유기적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호가 이루는 화면들은 각각 하나의 단위(unit)이자 모듈(module)로서 규칙적이면서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구조를 창조한다. 또한 직각에 근거하면서도 곡선인 호는 인간의 질서에 근거한 기하학적 형태와 자연적이고 유기적 형태의 속성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하이브리드적이다. 사실 열린 형태와 확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되었던 것이다. 그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최근작까지에는 형태가 완결되지 않고 화면 밖으로 확장된 형상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한 이미지들은 잘린 것이 아니라 상상을 위해 열린 구조를 선택한 것이다.
<MV90> 시리즈는 하나의 캔버스(canvas)로 완결되지 않고 여러 개의 단위들이 모여 군집을 이룬다는 특이점을 갖는다. 물론 하나의 단위들은 이미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얼마든지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 단일한 캔버스가 갖는 유한성을 벗어나 여러 개의 단위들이 이루는 상호 작용과 그것이 만드는 동반 상승 효과는 유기적 감정을 전달한다. 결국 호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MV90> 시리즈는 서로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결합되는가에 따라 매번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된다. 심지어 그것은 물리적인 결합을 뛰어넘어 관객의 사유와 상상 속으로까지 확장된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단위들, 단위들과 그것을 둘러싼 공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통이 유기적이고 구조적인 확장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캔버스 단위 하나 속에 존재하는 직각과 호가 동시에 함께 눈길을 끈다는 점이다. 이는 다양한 존재를 모두 받아들이는 이종철의 방식이다. 전술했듯이 이종철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고유한 성격을 상실한 채 하나의 융합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모든 부분들은 각자의 가능성을 가진 채 살아 있어야 한다. 소통과 독립성의 공존인 것이다.
절제된 네 가지의 색, 모르타르(mortar)가 만들어내는 최소한의 두께감과 마티에르(matière)의 균형 역시 가능성과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작가의 선택이다. 모든 표현이 최소화된 화면이 역으로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소화된 한정 짓기는 의미의 최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제 작가는 보다 적극적인 확장을 위해 스틸(steel)과 알루미늄(aluminium)으로 실제 공간을 위한 90°의 미학을 시도한다.
이종철은 작업 중 무엇을 어떻게 완성하는가를 절대 우선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상력과 소통의 잠재력을 어떻게 최고치로 올릴 것인가에 집중한다. 애초부터 예술은 단일하고 명확한 정답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예술 작품은 작가의 사유와 행위가 선택된 매체와 만난 유기체이다. 그것은 작가의 목적과 주어진 상황에 따라 각각의 조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그리고 이종철은 그 유기성을 조금 더 강조한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이종철은 작가로서 최소한을 제시한다. 작가는 의미가 확정되는 안정감 대신에 모호성을 택하여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안정된 구조 속에서 확보된 자리를 통해 의미를 보장받는 작품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이러한 태도는 일정 부분에서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 혹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떠오르게 한다. 이 개념들은 문학에서 산출되었으나 분명 미술에도 유효하다. 전통적으로 작가는 작품을 창조한 주체이자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든 가치와 의미의 소유자였기에 어느 누구도 작품의 물리적이고 논리적인 의미를 변형시킬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의 의미는 작가에 의해 확정되지 않는다. 작품은 매 순간 새로운 의미를 산출하는 과정 중에 놓인다. 따라서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그 스스로 완전한 작가와 작품은 불가능하다. 이제 작가는 의미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여야 한다. 이종철의 작품 역시 완결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산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하나의 작품은 무한대의 의미를 갖는다.
이종철이 사전에 완벽히 해석된 정답이나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여 작가의 권위가 사라지거나 그의 창조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자신의 모습과 흔적을 최소화하는 순간 관람객은 오히려 중층의 구조 속에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숨겨져 있는가를 찾기 위해 더 오랜 시간 작품 앞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오래 머무를수록 작품의 의미는 확장의 여지와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작품은 관람객의 개입으로 인해 무한한 의미의 연쇄를 낳을 수 있는 다차원적 공간에 놓이고 다층적인 의미의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창조자와 수용자가 어느 한 편으로 흡수되거나 통합되지 않는, 상호적이고 창조적 긴장의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이러니(irony)하게도 이러한 소통 속에서 작가는 더 강한 존재감을 얻는다.
이러한 유기적 확산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이종철은 삶 속에서 스스로에게 익숙해진 생각과 시각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의도적으로 긴장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 속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예술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비판적 거리를 두고 접근하는 그의 태도는 모든 관계 설정과 의미 부여에 변화와 가능성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많은 노력과 용기를 수반하는 길이다. 그 길이 아직 모호하고 불확실해 보이지만 작가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그의 삶도, 작품도, 그리고 그와 우리 사이의 예술적 소통도 매번 새롭게 의미를 드러내며 영원히 진행 중이다.
180도로 바라봄은 단절, 혹은 새로운 포맷(format)에 관한 의미라면,
90도로 바라봄은 소통, 즉 <옆을 보다>라는 의미이다,
작업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패턴은 90도에 관한 상상이며 철학이다.
직각을 이루는 선과 직각을 잇는 호를 통해
하나의 화면이 모듈로서 존재한다.
각각의 모듈들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유기적인 패턴을 무한히 생성시킨다.
다층적, 역동적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지움으로써 주목하게 되는 관계함에 관한 새로운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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