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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 생명의 그릇,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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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LOTTE GALLERY 본점


■ 전시개요
1. 전 시 명 : 생명의 그릇, 유기鍮器 – 중요무형문화재 77호 김수영 초대전
2. 전시기간 : 2014년 10월 1일(수)~ 10월 19일(일)
3. 전시작품 :
 ● 전통유기 유물전시 – 김수영(1949~) 유기장인의 아버지이자 중요무형문화재셨던 故김근수(1916~2009) 유기장인이 모은 유기유물(전통제기 외) 전시.
 ● 현대유기 – 현대화된 반상기, 커트러리, 수저세트, 화병 등 단품, 제작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 등 .
5. 전시문의 : 롯데갤러리 본점 (담당 성윤진큐레이터 02-726-4430)


■ 안성맞춤 안성유기를 대표하는 유기집안으로 대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으로 활동 중인 김수영 장인의 유기전시. 
■ 개인의 유기 작품 뿐 아니라 집안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조선시대 유기유물(제기 등)를 비롯, 약 100여 점의 유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제기 복원사업, 건청궁, 종묘제기 복원사업 등에 참여, 제작하였으며, 2014년 재단법인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되어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의 유기그릇을 제작, 이번 전시에 선보임. 
■ 담아놓는 것 만으로도 각종 유해세균을 살균하고 예방하여 예부터 귀한 음식을 담았던 유기. 그 생명의 그릇을 소개하는 뜻 깊은 자리.

롯데갤러리 본점에서는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지키고 되살리며, 유통시키기 위해 꾸준히 전통 공예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3대째 안성유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유기장 김수영선생님을 모시고 안성유기의 전통과 현재작품, 제작과정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안성맞춤 안성유기의 역사
유기는 청동기시대를 시작으로 제작기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전문기구를 두고 기술자와 생산을 관장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경공장, 외공장에 속한 유장을 두고 관수유기를 제작하여 공급하였다. 사용이 확대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며 주로 종교와 관련된 기물을 제작하는데 사용되다가 고려시대에 들어서며 제기, 수저, 밥그릇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기가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안성은 조선시대 때부터 교통의 요지로 이름이 높았다. 삼남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각종 물산들이 모여 장이 서던 곳이 바로 안성이었다. 이러한 안성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안성맞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안성 유기 때문이다. 안성유기는 예전에 제법 괜찮게 산다는 집안에서는 반드시 몇 벌씩 갖추고 있어야 하던 그릇의 대명사였다. 요즘으로 치면 로얄 코펜하겐 등 유명 북유럽 식기쯤 되지 않을까. 돌맞이 어린애의 돌잡이상에는 유기 밥그릇이, 시집 가는 처녀의 혼숫감에는 유기 대야와 요강이, 집안 어르신의 환갑날에 유기 잔칫상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품이었다. 안성유기는 이렇게 한 집안의 명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각장치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3대를 잇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차츰 스테인레스나 화학제품에 밀리고, 연탄가스를 주로 사용하던 7-80년대 생활환경에 밀려 유기는 사람들의 관심에 멀어져 갔다. 유기의 전성기였던 해방 직후 1946년 안성유기공업사(현 안성맞춤 유기공방)를 설립한 1대 故김근수( ~2009.3) 유기장이 활동했을 당시만 해도 유기는 만들기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대 故김근수 장인은 전통적인 유기뿐 아니라 새로운 기법을 연마하는데 노력 하였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제작하고 재현한 종묘제기, 반상기, 각종 유기작품을 모아 안성맞춤유기박물관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인정받아 김근수 유기장은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기능보유자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1990년 그의 아들 김수영(1949~) 선생이 전수조교로, 2008년에는 아버지와 같은 제77호 유기장으로 선정되었으며 지금은 3대 김범진까지 그 대를 이어가고 있다.

유기가 사양길에 들어선 뒤에는 해외 판로를 통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안성유기. 반세기 전 안성에 20곳이 넘었던 유기공방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방이 바로 김수영 장인이 이끄는 안성맞춤 유기공방이다. 이 공방에서 운영하는 공장에는 김수영 유기장의 지휘 아래 20여 명이 압연, 성형, 가질 등 단계별 작업을 맡아 진행한다. 70대 두 명을 포함해 모두 수십 년 경력의 숙련공들이있다.

유기란 놋쇠를 말하는데, 놋쇠는 자연적으로 출토된 광물질이 아니라 구리를 주성분으로 하여 주석이나 아연, 니켈 등을 혼합한 합금물질이다. 전통적인 유기제작방법은 동과 석을 정확한 비율로 합금하여 두드려 만든 방자유기와 구리, 아연을 넣어 녹인 쇳물을 주형에 부어 찍어내는 주물유기로 나뉘는데 안성은 주물유기가 유명하다. 

유기가 10여 년 전 유기의 항균 기능이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금 부활의 날갯짓을 보이고 있다. 유기에 음식을 담으면 대장균 등 세균 번식이 억제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명 한식당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유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놋그릇에 담긴 느림의 미학, 유기
주물로 틀을 뜬다고 해도 그릇으로 탄생하기까지 9가지가 넘는 수작업 공정을 거쳐 탄생하기 때문에 방짜유기는 물론이고 주물유기 역시 수공품만의 자연스럽고 은은한 멋을 자아낸다. 특히 주물로 제작되는 안성유기는 비교적 형태가 작은 식기류가 많이 제작된다. 그래서 그 모양이 아담하고 정교하며 기구의 종류가 다양하고 견고해 품질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것이다. 특히 원석의 우수성과 동과 주석의 정확한 혼합 비율로 광채가 뛰어나며 외관이 수려하고 여기에 견고한 내구성과 문자나 문양 등을 장식하거나 조각하는 기술도 뛰어나 섬세한 문양까지 곁들어지니 최고 중에 최고라 할 수 있다.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거푸집에 붓거나 불에 달궈 두들겨 만드는 유기는 단순히 그릇이라기보다 예술품에 가깝다.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대를 물려가며 쓰던 유기그릇은 은은한 광택이 품위있고 고급스러우며 견고하고 탁월한 보온보냉 효과를 내는데다 음식에 조금이라도 독성이 있으면 검게 변하는 특성으로 ‘생명의 그릇’으로 불렸다. 유기란 놋쇠를 말하는데, 놋쇠는 자연적으로 출 토된 광물질이 아니라 구리를 주성분으로 하여 주석이나 아연, 니켈 등을 혼합한 합금물질이다. 우리나라 전통 유기 제작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구리, 아연을 넣어 녹인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만드는 주물유기, 동과 석을 정확한 비율로 합금하여 불에 달궈 망치질을 되풀이해 형태를 잡아가는 방짜유기, 주물기법과 방짜 기법을 결합한 반방짜유기가 있다. 이 세가지 기법 중 에서도 안성은 주물유기가 유명하다. 방짜유기는 주로 녹인 쇳물로 바둑알 같이 둥근 놋쇠 덩어리를 만든 후 여러 명이 망치로 쳐서 그릇의 형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징이나 꽹과리, 식기, 놋대야 등 커다란 기물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한 기술이라면, 주물유기는 섬세하고 디테일이 강한 종묘제기나 작은 식기류를 주로 제작하는 기술이었다. 따라서 사대부나 왕가에 제기, 식기를 납품하던 안성은 주물유기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안성맞춤’이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유명해진 것이다. 

O-157균도 죽이는 유기, 안성만의 특징은 무겁고 변색이 잘 되는 특성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1960년대 이후 외면받아 오다가 유기가 농약성분을 감지하고 식중독균을 없애며, 소화를 돕고 혈압을 안정시키는 등 다양한 질병 예방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또한 채소를 유기에 담으면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는 등 기능 면에서도 뀌어나지만 최근 유기의 고급스러운 색깔과 새로운 디자인이 재조명되면서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전통제기

종묘제기는 변(邊)이나 두(豆)와 같이 중국 고대 국가에서 사용하던 제기들과 형태는 닮았고, 재료는 대나무, 나무, 자기, 놋쇠 등으로 만들었다. 종묘는 정전 19실과 영녕전 16실이 있다. 제례를 지낼 때에는 한 신실(神室)마다 제상(祭床) 12개, 놋쇠 제기 66개, 대나무 제가 13개, 나무 제기 14개, 자기 제기 2개, 관세기4개, 음복기와 망료기 3개 등 24종 114개가 배치되었다. 종묘제기의 형태와 무늬에는 음양오행을 비롯한 동양사상과 각종 상징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한국적 미의식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현대 유기

전통성과 현대성의 경계선상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유기 그릇은 사람들의 현재 생활습관에 맞춰 밥공기는 더 작아지고 재료가 주는 무거움을 보완하기 위해 더 얇아졌다. 옛 것으로만 여겨져 시간과 함께 조금씩 잊혀져 가는 유기공예가 조금은 어깨에 힘을 뺀 듯한 모습이다. 그릇 안쪽은 매끄러운 유광으로 작업되었고, 바깥은 무광, 매끄러움, 거침, 옻칠의 4가지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이 유기그릇은 디자이너 조기상씨가 디자인하고 김수영 장인의 도움을 받아 2013년 ‘예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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