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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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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런 밤, 즉 모든 것을 단순한 상태로 포함하고 있는 이 텅 빈 무이다. 무수히 많은 표상들, 이미지들이 풍부하게 있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곧장 인간에게 속해 있지 않다. 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 순수 자기(self)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 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흰 유령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또 그렇게 사라진다. 무시무시해지는 한밤이 깊어가도록 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밤을 목격한다.'
-헤겔

슬라보예 지젝이 <까다로운 주체>에서 재인용한 ‘세계의 밤’에 관한 구절이다. 예술의 위기를 넘어 예술의 종말이 선언된 지도 오래된 오늘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시대착오적 활보이든 퇴행이건 간에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이 여전히 상상력에 의존한다면 헤겔이 묘사하는 바대로 “상상한다는 것은 몸체 없는 부분 대상을, 모양 없는 색깔을, 몸체 없는 모양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이 산출하는 ‘세계의 밤’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지점에서의 초월적 상상력이다.”

이런 ‘분해적 상상력’에 의해서 현실이 소거될 때, 그리하여 세계가 ‘절대적 부정성’으로 경험될 때 상징적 우주, 문화적 세계가 생성된다. 그리고 자연도 아니고 문화도 아닌 중간상태를 창조할 때 전면적인 ‘자기로의 철회(withdrawal-into-self)’라는 제스처가 나타난다. 투과된 광기로서의 이런 제스처는 극단적 상실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 상실의 자리, 텅 빈 공간이 바로 주체의 자리다.

예술의 상실과 공백의 상태에 직면한 우리는 오히려 상상력으로서의 예술 본연의 ‘부정성’과 직면하게 된다. 종합적 상상력이 아닌 분해적 상상력으로서의 예술은 ‘세계의 밤’에 대한 새롭게 활성화된 주체의 태도를 요구한다. 두렵고 견디기 어려운 ‘세계의 밤’에 어떻게 선험적 상상력을 불러내서 텅 빈 주체의 스크린을 채울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그림은 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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