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안창홍의 뜰
2014.11.28 - 12.28
전시 장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85 갤러리아포레 B2 더페이지갤러리
전시 일정 2014년 11월 28일 - 12월 28일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 주최 THE PAGE GALLERY
전시 주관 THE PAGE GALLERY
전시 문의 02. 3447. 0049
관람 시간 오전 10:30 - 오후 7:00
신작 시리즈 "안창홍의 뜰" 개인전시
THE PAGE GALLERY 는 오는 11월 28일부터 12월 28일까지 안창홍의 개인전 <안창홍의 뜰> 을 선보인다. 새로운 20여 점으로 이루어진 <안창홍의 뜰>은 안창홍 작가의 삶과 함께한 작업실 뜰 안의 꽃들이 작가의 메시지를 대변한다. 피고 지는 꽃들의 모습과 안창홍의 독창적인 표현방식이 어우러져 우리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고 이와 동시에 이 세상의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 그리고 존재의 영원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안창홍은 1953년 밀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캔버스 앞에서 자신과의 고독한 여정을 지속 하고 있다. '한국 미술계의 이단아'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는 1973년 동아고등학교를 졸업 후, 정형적이고 수직적인 대학의 교육방식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본인만의 회화방식으로 미술계에 당당히 등장했다.
“역사의 주체는 소시민 들이야, 나는 그들을 노래하고 싶어”
안창홍은 20세기 우리나라의 독립 이후 근 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당시 빠른 속도의 사회발전과 함께 시작된 체계적인 모순, 방황 그리고 어두웠던 시기와 억압받는 약자의 삶에 깊은 애환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소시민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자연스레 그의 그림 속엔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성이 묻어 나오게 되었고, 거침없는 표현은 늘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사진 속 인물의 눈과 귀에 구멍을 내어 현실의 모순과 문제에 대한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며 영혼의 소통을 시도하길 바랐고, 때로는 아름다울 수 있는 남녀의 모습에 가식을 벗어 던지며 기괴하고 극단적인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활동은 언제나 진실에 대한 탐구와 고찰이 함께 하였고, 그 참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진실은 언제나 밝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그 만의 회화방식으로 다소 어둡고 칙칙한 색채와 거북스러운 모습을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작품의 가격이 그 작품의 가치를 대변하는 현대 미술계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 안창홍은 예술의 본질과 초심을 잃지 않았다. 이미 그의 천재성은 고등학교 시절 개인전을 통해 나타났다. 일찍이 1989년 프랑스에서 카뉴 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으며, 한국 현대 미술의 주요한 자리매김을 했다. 때론 그의 예술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남이 원하는 그림, 시장이 원하는 그림이 아닌 자신만의 예술의 길을 묵묵하게 걸었다. 그렇게 자신만의 주제와 여러 가지 시리즈를 통해 한국 미술계를 향해 출사표를 남겼고, 결국 그의 업적은 2009년 이인성 미술상과 2013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세간에 관심을 이끌게 되었다.
뜰, 꽃 그리고 맨드라미..
2013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안창홍은 오는 11월 자신의 뜰을 세상에 소개한다. 안창홍은 무심코 바라본 작업실 바깥 뜰에서 자연을 보았다. 먹이사슬의 치밀한 경쟁이 만연한 자연 속에서도 그는 세상사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떠올렸다. 그는 오랜 시간 자연을 보았고 마침내 꽃 속으로 들어가 세상사를 표현하게 되었다.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 그는 줄곧 계획해온 자연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쏟아냈다. 지금껏 살아온 작가인생에서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풍경화를 그려냈다. 다소 접근하기 어려웠던 그의 지난 세월의 작품에 비해 마치 자신의 뜰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 하듯 한걸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풍경화로 또 한번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시리즈 <안창홍의 뜰>에서는 맨드라미의 모습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맨드라미는 언뜻 보기에 육(肉)적인 느낌을 가졌다. 꽃이 아닌 꽃, 유일하게 좌우 대칭이 되지 않고 비정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줄기의 모습마저도 각기 다른 제멋대로 모습의 꽃이다. 무겁고 짙은 기운을 뿜어내는 핑크빛 색채는 아름다우면서도 그림자가 보인다. 그는 사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었고, 자연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했다. 안창홍은 이 맨드라미 안에서 너무도 넓고 깊은 자연을 담아 내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 안창홍은 맨드라미를 그렸다.
그가 그렇게 캔버스에 펼쳐낸 뜰의 모습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의 뜰은 곧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맨드라미는 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이 담겨있다. 인간 내면에 맺혀있는 세상사, 인생의 여정, 시간 그리고 생성의 소멸과정이 녹아 들어있다. 그리고 시간의 영원함 속에서 사라지는 모든 실존적인 것들을 나타낸다.
미술계의 이단아, 안창홍
안창홍은 말한다, '캔버스 안에 인물을 담을 땐 인물 개개인의 표정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되는 반면, 자연을 그릴 땐 긴장감을 멀리한 채, 내면의 느낌을 살려야 하기에 더욱 더 자신과의 집중을 하게 된다' 라고.
그는 이 시대의 모습을 맨드라미라는 매개체 안에 작가 자신의 자아를 가득히 투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림 가득히 마띠에르 기법으로 묻어난 무수한 점들은 생동감을 일으킴과 동시에 평면적인 회화의 영역을 넘어선 공간을 만들어 냈다. 한국 미술계에서 이단아로 불려진 안창홍, 이례적으로 자생적인 발전을 통해 묵묵히 걸어온 그의 새로운 시리즈 <안창홍의 뜰>은 THE PAGE GALLERY 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작품을 보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안창홍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 싶을 것이다.
왜 꽃을 그렸는가?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 이다. "꽃이니까"
LOCATION & CONTACT
Opening day
2014. 11. 28
Opening Ceremony
2014. 11. 28 6 : 00 PM
Location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85 (85, Wangsimni-ro, Seongdong-Gu, Seoul, Korea)
Contact
Direction
> 지하철
- 2호선 뚝섬역 - 8번 출구(도보 약 800m)
- 분당선 서울숲역 - 4번 출구(도보 약 400m)
> 버스
- 성동구민 종합 체육 센터 정류장 (121, 2014, 2224, 2413 : 도보 약 450m)
미술평론가 이용우와 안창홍의 Q&A
이용우(이하 이라고 표기) : 80년 ‘현실과 발언’의 창설에 가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30년 기념전에서는 빠져 있다. 그 시작지점에 비해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철학이나 미학적 전략에 진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만 한다. 전시에 참가하지 않은 배경이 무엇인가?
안창홍(이하 안이라 표기) : 멤버들이 추구한 초심은 매우 훌륭하였다. 그러나 30년 진행과정에서 그 과정이 나와 맞지 않았다. 예술적 실천과 예술권력은 별개의 문제다. 현발은 엘리트그룹이 아닌, 이질적 요소를 가진 내가 필요했지만 나는 누군가와 내 예술을 나눌 동지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구하지 못하였다. 예술은 수식적 언어보다 행동이 필요한 것이고 나는 말로 작업하는 체질과는 어울리기 힘들다고 판단하였다. 몇 번 탈퇴를 결심하였지만 한 비평가 선배가 만류하였다. 굳이 탈퇴할 필요가 없다는 설득이었다.
30년 기념전시 때에도 나 혼자만 출품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현실과 발언이 중요한 미술사적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면 후배들이 기념전을 마련해야지 우리가 뭐 잘났다고 스스로 기념전을 만들어 하는가 하는 것이 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과정을 매우 중시한다. 우리나라는 대개의 경우 과정은 무시되고 목적만 난무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발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본다. 현발이 설립되고 난 이후 작가들의 삶이 현발적이어야 했다.
이 : 그래도 현실과 발언의 미술사적 역할은 그 시대적 접점이 매우 중요하였다고 본다. 아직도 초기멤버들과는 가깝지 않은가?
안 : 우리 모두 다 친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개별적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의하여 집단화 될 경우 그 강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과정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인 것 같다. 대부분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 : 한국미술사에서 70-80년대는 매우 혼성적인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한국현대미술의 실험적 형식인 개념미술, 추상미술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역사성, 사회정치성을 중심으로 한 한국미술 다시 보기로서의 민중미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술사가 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하나는 “서구모더니즘에 대한 연민”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미학의 집중”이라는 식의 혁명적 등식은 좋은 답은 아닌 것 같다. 이 시대를 관통해온 예술가로서, 특히 현실주의미학에 집중하였던 작가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보는가? 가족사진 시리즈가 안창홍의 대표적 미학이자 형식이 아니었던가?
안 : 그렇다. 한 개인의 가족사를 들어 시대사로 해석해보고자 하였다. 인물들이지만 인물들이 살아 온 배경을 통하여 시대를 증언하는 식으로 해석하였다. 처음에는 내 가족의 이야기, 이를테면 징용에 끌려간 이야기 등을 중심으로 하여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친구들의 가족, 그리고 연출한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정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과 그들의 상처, 그리고 독재시대에 억압당하는 민중과 그들의 절규 등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등 대상은 넓다고 볼 수 있다. 골동품에 가서 사진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경매에서 사진을 구입하여 내 작품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아리랑’ 시리즈로 다시 사진작업을 전시한 적이 있다. 나는 가족사진 시리즈를 평생의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진은 이제 가장 본격적인 현대미술의 장르이지만 30년 전은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소재로 보았을 때 사진에 집착한 내 자신은 선험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거의가 대중들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권력자나 집행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의도적인가? 나는 2012년 중국에서 한 발표에서 “미술사에는 관객”이 없다는 발표를 하여 약간의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황제나 교황, 재력가 등 후원자, 그리고 예술가들은 있으나 심지어 그것을 관람하는 관객의 그림자 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하였다.
안 :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나는 권력자들에 대한 미움보다 권력의 뒤안길에서 역사가 만들어 놓은 아픔의 주체들, 그들을 등장시켰다.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았다. 내가 그들과 완전히 동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예술 전체를 통하여 발언한 내용들이 그래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 화가와 꽃은 미술사적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 꽃을 그려보지 않은 미술가는 그만큼 드물다는 이야기다. 아마 사람들이 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고... 안창홍 화백도 결국 꽃을 그렸다. 물론 매우 다른 꽃이긴 하다.
안 : 나는 미술시장에 관심을 두고 그림을 그린 적은 없다. 일생을 그림 팔아 먹고 살았으니 시장과 관련이 없는 작가는 아니다. 나의 작업은 탄탄한 이론도 아니고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붓을 잡는 순간 나의 축제는 캔버스에 있다. 벌써 안 일이지만 꽃은 내 그림과 잘 통한다. 꽃을 그려보니 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예쁘다고 생각한 꽃보다 꽃을 이용하여 내 발언을 유도하고 이끌어간 꽃이 더 많다.
맨드라미는 꽃이 아닌 꽃이다. 맨드라미를 볼 때마다 나는 정육점에서 살점을 잘라다 들에 던져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의 맨드라미는 예쁘고 아름답다기보다 꺾어진 맨드라미, 상한 맨드라미가 많다. 그리고 색깔도 살인적 핑크색이다. 그래서 그리고 나면 원색적으로 피어
나 내게 항변하는 꽃이 나의 꽃이다. 꽃의 향기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그 향기를 발산하기 위하여 꽃이 진력한 에너지는 목숨까지 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맨드라미를 활용한 ‘심상풍경’을 그린다. 이미 예쁜 꽃을 무슨 재주로 더 예쁘게 그리겠는가? 나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연을 그릴 것이라고 해 왔는데, 자연은 깊고 넓기 때문이다. 자연을 그리는 것은 가령 누드회화가 그냥 벗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내가 꽃 그림을 그릴 때는 내 스스로 꽃 속에 120% 들어가 있다.
이 : 이론가들은 이론적 병기로 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위하여 간혹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들의 병기로 썰고 베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병기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찬란하게 생존해 있는 예술작품들이 시장에서 환영받는 듯 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비평의 죽음이나 오늘날 시장의 끝없는 욕망 등 무질서한 광기 같은 것이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안 : 나는 내 신념으로 작업한다. 간혹 나는 화랑이나 비평가와 싸움도 하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보루이다. 내가 ‘마음대로’ 그리는데 내 작업을 그들 ‘마음대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찬성할 만 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