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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 Sedimentaion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15-01-05 ~ 2015-01-29

  • 전시 장소

    이랜드스페이스

  • 문의처

    02-2029-9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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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대화하는 방식-이주연의 스티치(stitch) 드로잉



드로잉(drawing)이다. 가느다란 검은 선이 반복적인 이동하며 형상을 만든다. 이때 검은색 선은 천 위에 재봉틀과 실이 지나간 흔적의 기록이다. 실이라는 재료가 기계적인 드로잉과 만나고 작가의 섬세한 손의 움직임이 더해져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납작한 평면 위에 물감이 덧입혀진 회화가 아니라, 스티치(stitch)를 통한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이런 스티치 드로잉은 평면 위에 실이 얹혀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실이 화면 밖으로 남겨져 촉각적인 평면작업의 성향을 띠기도 한다.


원래 고전적인 의미에서 드로잉이라는 것은 채색을 쓰지 않고 주로 선을 그리는 회화적인 표현을 말한다. 드로잉이 과거에는 주로 그림을 위한 예비적인 단계로 스케치나 작품 구상에 사용되었다면, 현대미술에서는 넓은 개념으로서 드로잉 자체가 작품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드로잉은 순간적인 느낌을 손의 감각으로 기억해 내는 작업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완성된 작품도 중요하겠지만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제작 과정과 작가의 의도, 내적인 구상을 한층 더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연의 작품은 드로잉 개념을 현대적인 의미로 확장시킨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주연의 스티치 드로잉은 검은색 실과 재봉틀을 이용해 완성된다. 이때 캔버스천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작가가 스스로 고안해 선택한 우레탄이나 폴리에틸렌수지와 같은 합성섬유를 사용한다. 광택이 있는 합성섬유 위에 스티치 드로잉을 하고, 이를 다시 평면에 이어 박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작품의 바탕으로 사용되는 합성섬유는 비닐느낌과 동시에 광택이 있는 소재이다. 이주연의 작품은 실과 바늘이라는 매체를 통해 박히고 풀어지는 과정을 작업에 그대로 보여주면서 살아있는 드로잉 감각을 시각화한다.


반복되는 스티치를 통해 이주연은 책과 같은 사물을 재현했다. 일상의 주변 사물들 가운데서 자신을 대변해 주는 소재로 책을 선택한 것이다. 산더미같이 혹은, 켜켜이 쌓인 책의 모습에서 조형성을 발견하고 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이러한 이주연의 드로잉은 한국 전통 민화의 한 형식인‘책가도(冊架圖)’와도 닮아있다. 그렇다면 책이라는 사물과의 만남은 작가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지식의 보고이자,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책은 예술가에게 매력적인 소재로 사용되었다. 유쾌한 고독을 즐긴다는 것, 그리고 상상의 공간을 만들고 이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독서와 예술가의 창작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이처럼 예술가와 책은 고전 회화에서부터 자주 등장된 테마였다. 이주연은 이러한 책을 이용해 자신만의 조형세계로 구축하며, 사물과 은밀한 대화를 시도한다. 이때 책이란 작가에게 애착의 대상이며, 위안을 주는 동시에 창작의 모티브이다.


재봉틀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이주연의 스티치 드로잉은 많은 시간과 반복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이 고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손끝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감각을 화면 안에 안착시키며, 동시에 드로잉 위에 드로잉이라는 이중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또한 작가는 박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며,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주연은 예술창작에 집중하며 몰입의 즐거움을 한껏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주연의 작품은 인격수양의 도구로 삼는 전통적인 동양문화권의 예술창작 태도와도 닮아있다. 현대적인 매체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수신(修身)으로서의 작업이라는 점은 이주연의 스티치 드로잉을 한층 다채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지점이다.


고경옥(이랜드문화재단 수석큐레이터)


작가노트


나에게 책은 잘 버리지 못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내가 움직일 방향과 해야 할 과제를 보여주는 사물이다. 집과 작업실에는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읽으려고 산 책과 읽고 버리지 못한 책들이 책꽂이를 넘어서 구석에 쌓여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현재 쌓여있는 그곳까지의 그 책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고 현재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책들을 드로잉 해 나가기 시작 했다. 내 작업에 등장하는 책들은 한 권이 아닌 여러 권이 겹치거나 쌓여있는 이유도 지금까지 쌓아온, 앞으로도 쌓아갈 진행형인 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계속되는 드로잉과정은 드로잉을 좀더 나에게 친숙한 소재를 이용해 표현 해 보게 되었다. 항상 가까이에 있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실을 이용해 좀더 자유로운 드로잉을 만들고 싶었다. 실은 나에게 익숙한 소재이다. 학교 및 회사에서도 섬유와 실과 함께 있었다. 실의 유동성과 자연적으로 생기는 라인은 내 손끝에서 나오는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선을 만든다. 특히 일상의 사물과 나와의 관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특히 시각적으로, 박히고 풀어지고 하는 과정이 그대로 작업에 보여지는 것 은 작업을 진행시키는 과정의 시간과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실을 박아 나아가는 행위는 반복되는 삶과 인생의 과정을 곱씹는 나만의 시간의 축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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