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 YOUNG CREATIVES 5주년 기념 기획전
‘육감 (六感, Sixth Sense)’
김지예 큐레이터
여기 서른여섯 명의 작가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작업 세계를 거침없이 쏟아내고자 모였다. 각자의 지난 데뷔전시에서 뚜렷한 개성을 드러낸 작가들은 저마다의 주제와 방법론에 대한 성장과 변화를 거듭하여 깊이 있고 감각적인 작업 활동을 이어왔다. 이들이 작품을 통해 탐구하고 이끌어내려는 주제는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일상, 풍경, 욕망, 성(性), 도시, 사회성, 기억, 꿈, 지질학, 동물 등 인간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동시대의 여러 가지 이슈들을 회화, 입체 및 설치, 사진, 영상의 다층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갖가지의 주제와 성찰의 방식 가운데에서도 이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 안에서의 삶의 모습과 그 이면에 담긴 사회·심리적인 의미들을 포착해내는 예민하고 직관적인 감각이라고 생각된다.
직관력 또는 영감이라 부를 수 있는 ‘여섯 번째 감각(六感, Sixth Sense)’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육감은 단순히 비이성적이고 찰나적인 ‘느낌’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사실 육감은 세계에 대한 통렬한 시각, 끈질긴 관찰, 다층적인 경험 등 오감의 다양한 과정과 깊은 무의식의 세계가 결합하여 비로소 나타나는 감각의 열매라고도 볼 수 있다. 만져지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분명히 그러한 것 같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다분히 초감각적인 능력과 끈질기고도 깊은 성찰을 통해 36명의 작가들은 우리 사는 삶의 여러 얼굴들을 간파하고 드러낸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들의 다양한 색깔의 작품들을 여섯 가지의 주제 아래에서 살펴보게 되는데, 전시의 타이틀인 ‘육감’은 ‘여섯 번째 감각’의 의미와 더불어 삶에 대한 ‘여섯 가지의 느낌’, ‘여섯 가지 이야기’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1부 전시에서는 먼저 친숙한 삶의 모습과 우리 내면에 관한 세 가지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것은 익숙한 장소나 매일 반복하는 행위들에 관한 작가들의 독특한 생각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구성된 ‘일상, 비(飛)일상’ 이다. 여기서는 평범한 일상에 내재한 삶의 크고 작은 의미들을 가늠해보게 된다. 우리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는 ‘기묘한 세계’에서 만나보게 되는데, 작가들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잠재해 있는 꿈과 희망, 억눌린 생각들을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빛과 색채의 작품들로 표상한다. ‘욕망의 순간들’에서는 성이나 소비 등에 얽혀있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의 방을 엿볼 수 있다. 과욕을 탐하는 순간들과 더불어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욕망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존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2부 전시에서는 보다 더 외부 세계에 관한 관심을 아우르는 세 가지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변이된 풍경들’에서는 심리적 요소, 다층적인 차용의 방식, 독특한 자연관 등을 통해 우리 주변의 자연 풍경을 새롭게 변형하는 작가들의 동시대적인 풍경화를 선보인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집, 공간 그리고 그림자’ 섹션에서는 육체와 정신의 안식처로 기능해야 할 집의 근본적인 의미를 짚어보고, 특히 현대 사회 안에서의 집과 도시 공간을 독특한 조형 언어로 탐구하거나 그 속에서의 인간 소외, 불안 등의 문제들을 다룬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본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작품들로 펼쳐진다. 작가들은 그들이 놓인 사회적, 정치적인 상황을 예리한 감각으로 인지하고 작품을 통해 발언하기도 하며 사회 속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깊이 있게 환기하여 보는 이들과 공감하도록 한다.
‘일상, 비(飛)일상’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이지만 익숙한 장소를 다니며 매일 만나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소소한 삶을 꾸려야하는 일들은 어느새 반복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한다. <일상, 비(飛)일상> 에서는 일상이라 불리는 이 삶의 과정들을 권태로움으로 치부하지 않고 숨겨진 의미들을 찾아내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이 무료해질 때면 우리는 가끔 하늘을 날며 삶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비(飛)일상’은 반복적인 삶을 열심히 살아가지만 동시에 조금 멀리서 그 위를 훨훨 날며 일상의 현장을 새로움으로 통찰하는 것 같은 작가들의 사유 방식을 의미한다. 지극히 가까워서 보이지 않았던, 다시 생각하지 않았던 일상적 장소와 사물과 우리의 행위에 관하여 되돌아보고자 한다.
날마다 보고 걷는 땅은 우리에게 주목받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강동주는 땅을 수많은 발걸음이 거쳐 가는 일상의 지표이자 기록으로 받아들인다. 발걸음에 그슬린 작은 자국들이나 한때는 우리에게 작은 기분전환을 주었던 껌 자국들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한 연필 드로잉 연작을 통해 반복과 변화, 만남과 지나침 등에 대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일상의 의미는 기쁨과 아픔,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인 다소 추상적인 일기 형태로도 나타난다. 김혜나는 일상적 경험과 기억들을 절제된 회화로 표현하는데, 함축적인 선과 형태의 변화를 통해 경험에 대한 보편적이면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감각을 드러낸다.
사소함과 익숙함으로 여겨지는 주변의 사물은 신정필과 오유경의 입체 작품을 통해 색다른 시각으로 다가온다. 신정필은 주변에서 문득 시선을 끄는 사물을 관찰하여 아주 작은 단위로 분할하고 이를 새로운 재료로 만든 후 재조립하는 작업을 한다. 본래와는 완전히 다르게 바뀐 사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주변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 즉 익숙한 시각을 전복하고 일상성의 본질을 성찰한다. 오유경은 A4용지, 종이컵과 같은 오브제를 활용하여 일상의 사물이나 새로운 형상들을 입체로 만들어낸다. 얇은 트레싱지로 고안해낸 사다리는 본래의 기능을 잃은 투명한 오브제로서 자리한다. 사소함과 중요함, 익숙함과 새로움, 무거움과 가벼움 등 일상에 대한 양가적 가치를 탐구한다.
매일 아침 옷을 입고 어디론가 가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생활은 이제, 임주연, 정경심 작가의 회화 작품에 담겨있다. 찬바람이 부는 새벽 출근길, 삼삼오오 모여 삶을 내려놓는 저녁의 포장마차 등 고독한 또는 행복한 삶의 순간은 이제의 회화에서 볼 수 있다. 무심한 듯 찰나의 붓질들로 그려진 잔잔한 일상들을 통해 우리의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때론 감추기도 해주는 옷을 입고 벗는 단순한 행위는 임주연의 작품 속에서 ‘순간성’이라는 중요한 화두로 드러난다. 얼굴은 나타나지 않은 채 옷을 입고 벗는 신체적 행위들을 사진으로 연속 촬영하여 다시 빠른 붓질의 회화로 표현함으로써 찰나의 시간을 담아낸다. 우리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고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정경심은 밥상 회화 연작으로 먹는 행위와 일상적 욕망, 인간의 정에 관하여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작품 <seasoned bean sprouts>에서는 만원 버스에 탄 사람들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제각각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일상의 고단한 밥벌이로 얽히고설킨 우리 삶의 소박한 모습들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기묘한 세계’
일상의 담담한 고리들 안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환상과 초현실의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대부분 자유로운 상상을 허락지 않는 현실적인 원칙에 의해 살아간다. 그러나 시각예술은 사회적 규율이나 권력관계 등 ‘현실원칙’을 지배하는 명료한 언어적 법칙에서 외면되거나 재현되지 못하는 심리적 트라우마나 어두운 상상, 황홀감, 환상 등을 ‘표상’할 수 있다. 현실의 억압에 반대하고 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은 초현실적인 표현들로 나타난다. 작가들은 조형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기이하고 비현실적으로 연출하지만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상황과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현실을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답답한 현실의 공간은 김채원, 애나한, 정혜련 작가의 작품에서 상상의 세계로 변모한다. 김채원은 일상의 오브제와 디지털 이미지를 접합하여 상상 속 우주의 풍경을 복잡다단한 설치와 영상 작품으로 표현한다. 변이를 거듭한 작은 단위의 형태들은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 어떤 작은 공간에서도 그곳만의 에너지와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내는 애나한은 빛과 색채의 섬세한 변화, 착시효과 등을 활용하는 설치 작품을 통해 드라마틱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의 꿈에서 빠질 수 없는 ‘놀이공원에 대한 환상’은 정혜련의 설치 작품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사회의 억압으로 인해 망각하게 된 유년기의 환상과 꿈을 독특한 비정형의 입체, 설치작품으로 표현하여 자유로운 감성을 증폭시킨다.
꿈의 이미지는 김은형, 이주리의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매우 세밀하고 기묘한 형상들로 드러난다. 음악, 철학, 종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자동기술의 방법처럼 화면 안에 풀어내는 김은형은 드로잉과 종이 입체, 애니메이션을 통해 상상의 형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이주리는 작품속에서 기괴한 인물, 파편적 신체가 흩어져있는 기묘하고도 음습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현실의 공사장을 모티프로 한 초현실적 공간인 작가만의 ‘땅’을 구축하여 내밀한 꿈과 무의식, 권력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초적 세계에 대한 갈망은 나광호와 박미례의 회화에서 드러난다. 나광호는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수집한 순수한 조형 요소들을 디지털 프로세스를 거쳐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하는 회화에 집중하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선과 형태, 색채를 탐구한다. 박미례는 동물들의 다양한 형상을 속도감을 지닌 강렬한 회화로 표현하며 다양한 초현실적 형상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꿈의 세계를 나타내면서도 동물들의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계와 순환의 생존 구조를 통해 우리 인간의 모습을 비추어 통찰한다.
‘욕망의 순간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본성 즉, 욕망을 지니고 있다. 본래 식욕이나 성욕 등의 욕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삶에서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때로 이런 자연스러운 욕구가 과도한 욕망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의 눈을 자극하며 넘쳐나는 광고들, 팽배해지는 물질 만능주의적인 사고, 피상적인 자극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각 등은 맹목적인 과소비를 부추겼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성욕과 성 상품화를 불러일으켰으며, 폭식과 거식이라는 병리적인 식욕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욕망의 순간들>에서는 이러한 욕망의 과잉과 병리적인 형태를 꼬집어 드러내는 동시에 욕망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성찰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우리의 내면 깊이 자리하여 삶의 패턴에 적지 않게 영향을 주지만 인식하지 못하거나 부정하고 살아가는 욕망의 얼굴들을 드러내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비 과열과 중독은 우리의 마음의 창으로 대변되는 ‘눈’을 변화시킨다. 김지민은 반짝이는 도자기 표면을 지닌 얼굴에 명품, 고급 승용차 등의 패턴으로 가득 찬 눈동자의 인물상들을 주로 환조로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상품가치와 소비욕구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다. 인간에게 지나칠 정도로 반짝이는 이러한 욕망의 얼굴이 있다면, 김진기의 작품에 나타나는 그 모습은 사뭇 다르다. 김진기는 인간의 뒷모습을 회화 본연의 특징인 물감의 덧칠, 흘러내리는 기법 등을 통해 극도로 비참한 아브젝트(abject), 욕망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회식 이후의 테이블, 쓰레기 하치장 연작을 통해 김진기는 휘몰아치는 감정, 갈등 그리고 욕망의 너저분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인간의 욕망은 신체와 성(性)에 대한 이야기로도 집중된다. 장 파는 인간 존재와 세계에 내재한 상실, 무력, 좌절 등의 이야기를 적나라한 욕망의 신체, 낮선 풍경 등을 담은 회화로 표현한다. 특히 인간의 삶과 욕망을 벌거벗은 신체와 해골 등으로 표현한 <낮의 유령들>시리즈는 인간의 실존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성찰한다. 최영빈은 회화를 통해 인간의 신체를 추상화하거나 파편적으로 변형하는 회화 작업에 집중한다. 작가만의 방식으로 왜곡시킨 신체를 표현함으로써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자아의 정체성과 숨겨진 욕망을 드러낸다. 유현경은 억눌린 욕망에 대한 이야기에 관한 회화에 집중한다. 수치심, 역겨움, 연민, 조심스러움 등의 감정은 얼굴 없는 사람, 발가벗은 사람의 초상, 성적인 행위와 관련한 형상들로 나타난다. 이미정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성을 유희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기준, 금기에 대한 모범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주체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로써 억압된 개인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변이된 풍경들’
주변의 일상, 우리의 상상 그리고 내밀한 욕망의 모습들을 지나면 한 발짝 너머 우리를 둘러싼 풍경들이 보인다. 다소 익숙한 정취를 기대한다면 조금 낯선 풍경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변이된 풍경들>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풍경화를 넘어 작가들의 독특한 사유로써 변형된 풍경을 담은 동시대적인 풍경화이다. ‘변이(變異)’의 본래 의미는 ‘생물의 형태나 성질이 변하는 것’인데, 이 섹션에서는 작가들이 자연의 존재를 관망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다양한 요소들로써 주변 풍경을 새롭게 제시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작가들은 현대사회에서의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치밀하게 파헤치거나 인간의 소외와 상처를 메마른 풍경으로 환유하기도 하며, 개념적이고 상상적인 자연을 만들어 새로운 세계를 펼치기도 한다.
풍경화의 주 소재인 숲은 삶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아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빈우혁은 아픈 상처의 기억을 숲으로 환유함으로써 미묘한 심리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주로 거주지 주변을 거닐며 포착한 숲, 호수, 하늘을 목탄과 채색을 활용하여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관람자가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무심코 지나칠만한 평범한 숲과 그 안의 작은 인공물에 주목하는 이현호는 집요하고도 성실한 관찰과 사유로 풍경에 내재한 언어와 운율을 읽어낸다. 이로써 주변 풍경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하고 권태로운 시각을 경계하며, 일상성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현대사회 안에서의 인간과 자연의 영역에 대한 작가들의 다층적인 탐구는 다양한 주변 이미지들을 결합시킨 새로운 풍경과 독특한 자연관을 만들어낸다. 정윤경은 회화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경(景)'이라는 동양적 자연관으로 표현한다. 자연과 인간의 이미지가 하나 되어 얽힌 풍경인 정원술(topiary)로 현존하는 건축물처럼 자연을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흡수시키고 기호화함으로써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공물과 유기체로 불리는 상극의 에너지가 공생하는 이미지를 구현한다. 조태광은 자연과 인공, 원초적 시각과 인간이 만든 시각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연구해왔는데 주로 따듯한 색감과 함께 특유의 패턴화된 나무로 이색적인 숲과 자연을 구성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 고요하지만 생명력이 있는 원초적 자연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시각을 경계하면서도 유토피아적 풍경에 다다르고자 소망한다. 황지윤은 상상력과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수화, 민화, 바로크 양식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기법들을 변용하여 환상적인 풍경을 구현한다. 나무나 산, 강 등 주변의 친숙한 풍경들을 소재로 하지만 동물의 무리를 바위덩어리나 나무로 표현하는 등 색다른 요소를 첨가하고 특유의 몽환적인 구성과 색감을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상징과 암시로 가득한 수수께끼 같은 풍경을 펼친다.
'집, 공간 그리고 그림자‘
익숙한 듯 낯선 주변 풍경들을 지나 들어온다면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생각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 개념의 해체, 무분별한 개발, 불황으로 인한 잦은 이동 등으로 인해 육체와 정신이 휴식하는 삶의 터전과 공간이 위협받는다. 특히 집은 단순한 장소와 공간의 개념을 넘어 개인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가치관이 형성되고, 가족관계를 이루는 곳이자 쉴 곳이라는 의미가 깃든 터전이지만 때론 불안과 상처로 얼룩진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집, 공간 그리고 그림자>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 공간인 집의 다층적인 의미들을 짚어내고 특히 도시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그에 드리워진 심리적인 그림자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공간은 독특한 공간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지형도를 탐구하게 만들었으며, 그 안의 인간의 삶이 어떠한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김효숙은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도시의 불안정한 건축 공간을 디테일한 회화로 표현한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건축적 파편들에 파묻혀 공황상태로 부유하는 인물들을 통해 현대 도시 공간에서의 인간의 소외와 어두운 삶의 단면을 표상한다. 도시의 재건축과 삶의 터전에 대해 꾸준히 탐구하는 조혜진은 도시 개발로 인해 들어서던 고층아파트를 간유리와 철제로 다시 만들어낸다. 이 재료들은 개발로 인해 자리를 잃고 허물어진 낡은 집들, 폐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아련한 빛이 첨가된 투명한 건축물을 통해 껍데기만 남은 도시의 어두운 모습 속 인간의 소외와 부재를 상기시킨다. 정소영은 자연의 생성원리를 통하여 도시의 생성과 건축의 의미를 탐구한다. 작가는 지구과학과 지질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도시에서 채집한 지형, 질서, 표정을 지질학자의 지도, 대지 변형사 모형, 암석 표본, 지형도의 형식으로 제작한 설치와 사진작품에 담아낸다.
특정 공간에 대한 기억과 같은 심리적인 요소들은 은유적으로 작품에 나타나기도 하며, 반대로 내면의 아픔, 기쁨, 다양한 상상들이 공간으로 시각화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집에 관한 아픈 기억에서 작품을 시작하는 민진영은 빛을 활용한 입체작품들로 집과 공간에 대한 기억을 시각화한다. 개인적 기억 뿐 아니라 무의식적 기억이 축적되는 은신처라는 보편적 집의 의미를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사는 집과 공간, 가족에 얽힌 다층적인 의미를 담아낸다. 내면의 감정들을 무대 세트 공간으로 연출하는 이지영은 힘든 수공으로 만든 세트에 상징적 색채와 형상, 인물들을 배치하여 ‘마음의 방’을 연출한다. 작품 <Love Seek>은 사랑의 기쁨과 기다림, 불안에 관한 감정을 단풍나무 씨앗으로 형상화하여 감정의 빛과 어두움, 기쁨과 슬픔이라는 양면적 감정을 섬세하고도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나타낸다.
‘우리가 사는 세상’
개인이 머무는 공간까지도 위협받는 현대사회에서는 세상 살기가 참 어렵다.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상황과 인간관계 등의 외부적 요소들은 본래의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는 다르게 나를 이끌거나 압박한다. 누구나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사회의 체계 안에서 살아가게 되기에 사회, 정치적인 상황, 권력, 타인의 욕망 등에 의해 자아는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며 왜곡되기도 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모습을 돌아보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때로는 본래 모습과 가치를 잊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어두운 정치적 상황들로 개인성이 무시되기도 한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울타리로 인해 오히려 인재를 겪게 되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 섹션에서는 개인적 가치와 자유로운 개인적 욕망을 억누르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사유하고 진정한 자아의 가치를 모색하는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라캉의 이론대로 어린아이가 거울을 보고 처음으로 자아와 타자를 인식하듯이 개인의 주체성은 사회 속 다양한 타자와의 관계성을 통해 변형되기도 하고 더 뚜렷이 드러나기도 한다. 때로는 기억 속 깊이 새겨진 사회적 상황이 현재 개인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강상우는 오래전 기억속의 정치적 상황과 관심을 현재의 맥락에서 다시 상기시킨다. 특히 유년 시절의 정치적인 만화로 인해 군부독재 상황 등의 어두운 기억들이 자리 잡았음을 인식하고, 만화의 캐릭터와 내용을 평면과 입체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여 개인의 ‘작은 기억’을 통해 공동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닥친 사회, 정치적 상황을 되돌아보도록 한다. 남혜연은 사회적 체계 안에서의 인간의 모습과 그 감정을 영상 작품으로 표현한다. 개인의 욕망이 아닌 사회적 요구나 권력관계에 의해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는 억압적인 상황에서 개인이 겪는 부자연스러움과 어려움을 밑 빠진 물통에 물 붓기, 불안정한 의자에 앉아 식사하기 등으로 나타낸다. 유사한 맥락으로 한승구는 자아를 은폐하고 타인의 욕망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가면으로서의 얼굴’로 나타낸다. 단단한 가면으로 제작된 얼굴 입체와 영상을 통해 자아의 문제, 허상과 실체의 문제를 탐구하며 개인의 존재와 사회와의 관계성, 진정한 자아 찾기를 모색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접하는 뉴스의 사건사고들을 통해 우리는 좌절하고 분노하거나 불안에 휩싸이기도 하며 일부러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사회적 사건들은 개인의 생각과 삶의 지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박경진은 회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경험하는 인재(人災)의 상황과 그 공포에 주목한다. 그는 원전 폭발, 구제역, 세월호 등의 실재사건과 우리 생활 반경에 맞춰 상상한 허구가 혼재된 다양한 인재 사건들을 표상한다. 이를 통해 삶의 터전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근본적인 두려움을 상기시키며 경각심을 망각한 우리 사회의 무기력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한다. 양유연은 인간 내면의 상처와 상실감에 관한 회화에 집중하는데 공황상태의 얼굴, 피가 맺힌 상처, 총을 겨누는 사람들 등으로 시각화한다. 작품은 개인적인 상처를 인식하면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사회적인 사건과 심리적 트라우마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현대사회에서 한 인간이 겪는 고독과 회의를 생각하도록 한다. 이우성은 회화를 통해 젊은 세대가 마주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공허함, 불안, 희망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발언해왔다. 특히 <세상은 내가 꿈꾸게 하지 않는다>와 같은 작품은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젊은 작가로서의 애통함을 표현한 것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안의 우리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일상’, ‘초현실’, ‘욕망’, ‘풍경’, ‘공간’, ‘사회’라는 이 여섯 가지 평범한 이야기들은 마치 주술사의 그것과 같은 작가들의 감각을 통해 독특한 색깔로 덧입혀졌다. ‘육감’ 전은 서른여섯 명의 작가들이 각자 작업에 대한 독특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듯 여섯 가지의 이야기들로 삶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 특히 주목하였다. 동시에 작가들이 비슷한 범위의 이야기들을 각양각색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작품들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들의 작품은 여섯 가지의 이야기만으로는 끝낼 수 없는 수많은 기호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삶을 향한 이들의 민감한 ‘육감’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더욱 깊어질 것이기에 이것으로 한계를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젊은 작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조망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육감’전에서 제시하는 세계에 관한 작가들의 무한한 ‘영감’과 예민한 ‘육감’으로 빚어진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보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