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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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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들이 사그라지고, 할머니와 같은 주름살진 세계를 가지기 위해서라면 헐벗었지만 촉촉한 개구리 하나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 인간의 삶은 갓난아이의 피부처럼 매끄럽지 않다. 사랑과 단절은 내밀하게 연관되어있으니, 마치 멀고 가까운 것, 충만과 공허, 천사와 악마처럼 서로 상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한국인 화가 김별은 조화란, 혼돈의 한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 그녀의 육체와 정신세계 속에서 체득한다. 게다가 모든 것이 그러한 혼돈, 뒤척임,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결별, 물질적 정신적 지적 상실과의 싸움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이 상처를 건넨다.

김별은 어린 시절을 불안과 혼돈, 좌절의 아픈 기억 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통은 시간과 더불어 누그러진 듯 보여도 추억은 생생했고, 때로는 집요하게 내부에 자리 잡은 오래된 간지럼 증처럼 외부에서 숨차게 박동하는 삶을 만끽하는 일을 막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개구리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 한 편이 들려왔다. 개구리가 몸을 움츠리면 더 멀리, 더 높게 뛰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초라하게 전락한 천사처럼 몸을 움츠린 개구리는 당신의 욕망 밖에 있다. 그 친절한 양서류가 김별에게 영감을 주어 존재의 악에 치료약을, 긍정적인 알레고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순간부터 오래된 고통의 기억을, 그녀의 영혼을 버겁게 하던 아픈 노래를 지배할 수 있었다. 과거의 상처는 극복되고, 예술적 창작을 통해 치유되고 숭고해졌다. 그래서 김별의 그림은 여러 모습의 개구리들로 채워져 있다. 개구리들이 각양각색의 선인장 세상에 자리한다. 둘의 그럴듯하지 않은 만남이지만 호감을 자아내는 촉촉한 개구리들이 예기치 않은 풍경 속에서 존재의 악과 어두운 추억들을 사라지게 만든다.

일상적 삶 속에서 개구리와 선인장은 이웃하지 않는다. 그들의 동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가 번성하면 다른 하나는 사그라진다. 선인장은 양서류가 싫어하는 장소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림 속 개구리는 자신을 둘러싼 이러한 적대성을 이용할 줄 알고 적응한다. 개구리가 뛰지 않는다고, 뒷다리에 힘이 빠져서 위험을 피할 수 없다고, 생존이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선인장은, 깊은 고통처럼,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날카로운 가시들을 지닌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나쁘다고 심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격적인 가시들 뒤로, 그 따가운 수염 뒤로 선인장의 내부는 부드럽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받아들여야 할 부드러움이 거기에 은연하게 있다.

김별은 내면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척출해가는 과정 속에서 그녀는 상처를 치유하여 더 숭고한 내면을 만든다. 그렇게 탐험의 형태, 존재의 악이 불타고 있는 자신 내부 안에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치유의 방식이 된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는 개구리의 자리,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제대로 된 자리를 잡으려 한다. 개구리는 화가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둘은 혼돈 속에서 지속적으로 위험에 빠져있었던 것일까? 그 둘은 여전히 더 멀리 이르기 위해 더 높이뛰기 위해서, 장벽과 장애와 위협을 가하는 손아귀들 너머로 뛰어오르기 위해, 욕망과 꿈이 결국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 얼마간의 지략과 힘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의 존재가 아닌가?


 - 프랑스 낭트에서 <필립 지켈> 평론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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