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화, 비상(飛上)을 꿈꾸다
황 유 정(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김진화의 작품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신비스런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LED조명으로 수놓은 별빛과 여신, 천사, 그리고 기호처럼 나열되는 사물들... . 수수께끼처럼 알 수 없는 조합이지만 호기심으로 빠져들면서 왠지 모를 행복함이 차오르게 된다. 깊은 사색과 자로 잰 듯한 엄격함이 느껴져 매우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푸른 하늘 한 조각에도 꿈을 매달 수 있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진화는 많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심리,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비판, 인간의 잠재 욕구 등을 화두로 삼았다. 그러나 항상 작품의 내면에 흐르는 것은 ‘인간의 순수 영혼을 일깨우기’였고, 평면과 입체, 설치작업의 상호조응과 공간 탐구를 바탕으로 작품 형식의 변이를 추구해 왔다.
밤의 시간, mixed media,119x164x6.5cm,2015
밤의 풍경1, mixed media, 123x223x6.5cm, 2015
시간나무 숲에서.._아크릴, 포맥스, LED_124.3 x 204 x 11cm_2014
전시 중인 작품 <한여름 밤의 꿈>(1994)을 보면, 종이를 바탕으로 물감을 칠하고 긁어내고, 덧칠하기를 반복함으로써 결과 된 형상이 중첩된 레이어의 느낌을 일게 한다. ‘평면작업을 어떻게 공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욕구의 전조가 읽혀진다. 또한 표리부동하고 물질과 권력이 팽배한 세상사가 불편한 김진화는 자신의 밖에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보다 더 무궁한 내면의 세계로 몰입을 추구했다. 당시 작품의 모티브로 등장하는 나무와 인간, 창공을 향한 통로, 그리고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등은 순수 영혼을 향한 자기 내면의 대입체이자 고양된 정신세계를 바라는 표현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현재의 입체 레이어 작업으로 이끈 방향키가 되었다.
자연의 유기적 변화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최고의 대상이었다. 김진화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다양한 설치작업들에 적극적이었다. “Into Drawing'(2002) 전에서는 책에서 오려낸 글귀들을 실에 매달아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뒤 드로잉 작품을 함께 설치함으로써 평면과 입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었다. 드로잉의 경우 시적 언어가 오브제와 결합되기도 하는데, 김진화에게 드로잉은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언어였다. 주의 깊게 보면, 드로잉 작품은 많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삶의 흔적을 추상화 시킨 드로잉 작품 <흔적>(2007)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다.
흔적_Mixed Media on canvas_130.3 x 388cm_2007
상처_캔버스, 실, 원석(Opal Stone)_240 x 80cm_2004
작품 <Coming out>(2004)은 생명력으로 변화해가는 자연현상을 시각화시킨 설치작품이다. 부드러운 부피감의 오브제를 만들고 길이가 다른 실을 매달아 각기 다른 개인의 ‘자아(自我)’를 표현했는데, 기대처럼 오브제는 전시 공간과 결합함으로써 다양한 공간을 연출했다. 이처럼 설치작업이 다채롭게 이어진 2000년대 중반까지는 평면(2차원)과 입체(3차원)의 상호작용과 공간에 대한 탐구기간이었으며 평면작품에서도 박스 안에 드로잉이 꼴라쥬나 오브제와 결합한 작품으로 나타나는 등, 새로운 작품 전개를 기대하게 했다.
2006년의 개인전에 설치된 작품 <Invisible Cities>는 도시 이미지를 8개의 영역으로 형상화한 연작으로, 김진화 작업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비가시적 공간의 가시화를 위해 평면상에 시각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로 드로잉 함으로써 관객을 내면세계로 유도했던 것과는 달리 규칙적 간격으로 평면을 여러 장(6~8장) 겹쳐 설치함으로써 중첩된 이미지가 실지 입체 공간을 만들도록 하였다. 평면과 입체의 상호작용을 위한 또 한 번의 실험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8개 연작 중 4개의 시리즈를 구성해서 전시하고 있다. 작품 <Cities and Desires>에서 보여 지는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나 <Cities and Eyes>의 거미줄처럼 엮인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세상에 포획된 고전 글귀의 모습은 현대사회를 향한 비판을 가하는데, 서정적으로 치환시키는 은유가 뛰어나다.
The dream of cities_Mixed Media on Paper, 콜라주(이미지)_74 x 59cm-8pieces_2006
Cities and desire_mixed Media, 트레싱지, 실, 콜라주(이미지)_74 x 59cm-8pieces_2006
Cities and eyes_색실, 텍스트(책에서 오려냄), 트레싱지_74 x 59cm-8pieces_2006
2007년 이후, 김진화는 레이어 작품의 편리한 보관과 작업의 용이함을 위해 종이 대신 포맥스라는 견고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체의 단단한 물성이 주는 완고함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일면을 함축하기도 한다. 그리고, 레이어 층은 뒤쪽으로 갈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조도를 보안하기 위해 LED 조명의 매입을 착안했다. 한편 포맥스로 만든 겹겹의 층은 LED 조명의 밝기 조절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의 연출이 가능해서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여기서 소재로 선택한 신화의 주인공이나 별자리, 신전과 같은 건축물 등은 계속해서 다른 작품에도 반복되고 있다. 김진화가 사람들의 세상사를 이야기할 때, 이처럼 신화적 요소를 차용하는 것은 알레고리적 요소가 많아 훨씬 풍부하게 내면 심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 일상에 갇혀버린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정방향의 패턴이나 규칙적인 계단 또한 심연의 공간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꿈속에 살고 싶어라_아크릴릭, 포맥스, Feelux LED D bar 2_76.8 x 121.6 x 8cm_2013
찬란한 시간_포맥스에 아크릴릭, LED_62 X 62 X 22cm_2011
부드러워진 LED 조명이 만든 환영의 공간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담긴 부정적 자아보다는 긍정적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상승본능을 자극한다. 김진화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내면의 힘을 일깨우고 충만함을 주기 위해 더욱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천사>(2013), <천사가 되어...>(2013) 등 날개 달린 천사를 이미지화 한 작품이 자주 등장하고, “나무의 미학”(2014) 개인전에는 창공으로 뻗어 나가는 나무를 중심으로 ‘천국의 새’ ‘날개 꽃’ ‘별 나무’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체를 주인공으로 그렸다. 김진화가 바라는 천상의 꿈은 인간 내면의 치유와 살아 숨 쉬는 영혼의 회복을 위한 기도이다.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고.._아크릴, 포맥스, LED_61.4 x 101.4 x 10cm_2013
올해의 신작 <밤으로의 여행>은 어두운 밤 공간의 유리창을 통해 보여 지는 실루엣에서 착안한 설치작품으로, 공간 속에서 명멸하는 풍경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사각의 한지 프레임 뒷면에 포맥스로 만든 형상들과 LED 조명이 감춰져 있고, 시간차를 두고 불빛이 깜박이는 11개의 패널은 밤하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빛의 효과를 절묘하게 살린 작품이다. 밤은 우리가 잠든 사이 많은 신기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시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심연을 향한 사색이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김진화는 사람들이 매혹적인 밤의 창을 통해 순수한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를 꿈꿔 본다. 작가가 펼쳐 놓은 밤 풍경을 응시하다 보면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뻗어 나가는 자신의 비상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사색의 밤,mixed media led,130x130x2.5cm,2015
밤으로의 여행, Mixed Media, LED, 110x110x2.5cm, 2015
꿈속으로,Mixed Media, LED, 100x100x2.5cm.2015
건조해진 타인들에게 행복한 쉼을 주고자 쉬지 않고 달려온 창작의 길이지만 김진화에게 작업은 자신과의 대화의 길이기도 했다. 평면과 입체, 설치를 넘나들며 공간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시키고 빛을 끌어들이며, 어떻게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더 유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예술의 길로 들어선 이후, 산고를 겪고 탄생한 작품은 김진화의 청년기의 고민과 철학, 감성과 취향, 깨달음과 도전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항상 생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내면의 나를 귀한 존재로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때 무지(無知)가 끝나고,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행복은 진실한 자아(自我)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어려운 철학보다도 관객이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감과 소통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