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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락 : 1초 수묵-찰나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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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분도는 5월 29일 부터 6월 27일 까지 한국화가 임현락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현락 작가는 지금 경북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일하면서 동시에 작업 활동을 충실히 벌이고 있는 화가입니다. 그는 수묵을 이용하여 평면회화만을 완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설치 작업에도 일가견 있는 현대미술가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되어 5월 한 달 동안 해외 작업을 벌이며, 분도에서는 그 작업을 동시에 모니터한 형식의 실험을 벌일 계획입니다.



임현락_1 초 수묵 / A stroke(duration : 1 sec.)_per 72x72cm_Ink on Korean paper_2015


장소 : 갤러리 분도

제목 : ‘1초 수묵’ - 찰나에 머물다

기간 : 2015년 6월 8일 - 7월 18일




윤규홍, Art Director/예술사회학


 사람이 1초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1초에 한글 몇 타를 컴퓨터에 넣을 수 있고, 피아노나 기타를 대여섯 음절쯤 짚어낸 것 같다. 단위 시간이 일치하는 게 있는데, 술 한 잔은 1초에 한 잔을 삼킨다. 화가 임현락은 1초에 하나의 획을 그어 형상을 만든다. 짧은 시간인 1초를 다른 말로 바꾸면 ‘단숨’이 적당할까. 들숨과 날숨의 한 과정이 아닌, 숨을 들이키거나 내뱉는 어느 한 쪽 말이다. 순식간에 도상 하나가 완성된다는 이야기인데, 글을 쓰다보니까 이 작가가 가진 기예적인 측면만 칭송하는 문맥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오해가 없으려면 이해가 완벽해야 되는데, 임현락의 작품을 설명하는 많은 글들을 보면 그에 대한 또 다른 식의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다. 내 학창시절에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 책이 있었으니,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쓴 것들이었다. 이런 나를 보다 못한 내 지도 교수는 입문용으로 나온 2차 해설서를 읽지 말고 처음부터 원저를 파고들어가라고 제안했다. 그 말이 맞았다. 들에 자란 잡풀이든, 사람들이 모인 군중이든 간에 대상을 해석한 임현락의 그림은 그것을 가리키는 설명이나 견해를 받아들이기 전에 일단 느긋이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절제와 지나침, 찰나와 기다림이 한 폭의 그림 안에서 서로 충돌하는 그의 작업은 인간 정신의 정수를 뽑아서 얻은 순수문화의 표본을 보여준다. 직유적으로 표현하면, 수묵의 획으로 드리운 수목원 같다. 이 형이상학적 재현은 고도로 정제된 형식을 지닌 채 특별한 호위(guard)를 받고 있다. 왜 특별한가 하니까, 그의 미술이 앞서 막 나가는 경향을 지키는 전위가 아니고, 그렇다고 뒤에 서서 예술의 원형을 지키는 후위도 아닌 또 다른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건 작가에게 유리한 면이다. 그는 예술적 전위가 보여주는 형식 파괴 혹은 변환을 한국화라는 전통의 후위에서 각 요소를 선별해서 재조합한다.

 이와 같이 임현락이 행하는 미적 질서의 재조합 내지 재배열은 ‘꿈보다 해몽’ 식의 설명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난 여기서 그 매혹적인 작품에 다가서기도 전에 사람들이 겁에 질리는 역기능을 찾는다. 작가가 가진 의도와는 크게 상관없이, 이런 형태의 창작 방식은 비평가들로 하여금 공통된 관점으로 글을 유도한다. 한 숨에 하나의 필획으로 완성되는 그림과, 또 그 무수한 필획을 삼차원 공간에 모아놓은 경이의 순간은 작가 임현락의 명성으로 수렴되고 있다(여기, 갤러리 분도의 전관을 휘감은 수묵의 힘을 확인해 볼 것.). 그가 이곳에 펼쳐놓은 시도는 형식의 신중함과 세련됨이 그 앞뒤를 감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모순적인 깊이 또한 존재한다. 임현락은 자신이 벌이는 모든 기획의 전체를 보여주고자 하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투명함으로 나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늘거리는 천에 머금은 수묵의 아름다움은 이 단계로서 자족성을 획득한다.


 대뇌에서 이루어지는 구상이 가닥을 잡으면 간뇌가 주관하는 숙련된 손으로 완성되는 그림은 작가 임현락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여기서 비밀스러운 몇 가지 개념, 예컨대 생명, 호흡, 찰나 등을 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작가 본인의 발언으로 확정된 그 개념들은 작품의 필법과 구도와 격(格), 재료라는 물적 토대 위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이다.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서 비켜나 있는 형이상학은 원칙적으로는 검증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경험적 비유를 통해 묘한 설득력을 얻는다. 이를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1초라는 시간 개념 같은 것 말이다. 1초는 서양의 시간단위다.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하고 그 제도 속에 있지만, 이 또한 서구식 아카데미 개념이 부여한 교육 제도 아닌가. 동양의 찰나와 서양의 1초 사이에는 변증법적 논리에서 아주 큰 물리적 시차가 존재한다.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차이는 데리다가 생각한 ‘차이(difference)와 차연(differance)’의 인식적 간극과 같다. 글이나 말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뭔가는 미술 그 자체로 직시해야 한다.


 임현락의 ‘1초’는 이탈리아 베니스의 여정을 돌며 다시 한 번 온전한 사실로 구체화되었다. 비디오 아카이브 작업은 불완전한 문자 텍스트 이전의 분명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작가는 그리기 행위에 집중하는 모습을 하나의 의례(ritual)처럼 연출한다. 팔레스트리나의 제방 위에서 담아낸 영상은 사실의 기록이란 의미 이외의 면을 강조한다. 이것은 그가 이전에 남긴 강정보, 대구미술관, 아소, 스페이스K에서의 텍스트 다음에 완성된 후속편이란 성격도 있다. 그렇지만 이보다 각각 지구 반대편에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 장소와 한국의 갤러리, 단숨에 긋는 획과 그 무한 연장이라는 시공간의 겹침을 영상 이미지로 담아냈다는 측면이 도드라진다.


 1초에 스물 네 장의 플레임을 필요로 하는 영상은 수평으로 분할된 프레임 속에서 미장센을 짜 맞추고 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정사 L'Avventura>(1959) 마지막 씬을 연상하게 하는 그 이미지는 순수 예술(이라고 쓰고, 쓸모없는 현대예술이라고 부르자)의 구원자 역을 자처하는 임현락 작가가 영겁에 다가서는 그리기를 한다. 특히 작가 본인의 시선으로 처리되는 핸드 헬드 카메라는 원근감을 지워버리고, 오직 다가오는 흰 면을 응시한다. 우리는 이 비어있음의 공간, 즉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가지는 예술지상주의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사건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공간으로 인도된다. 디지털 플레임으로 담은 퍼포먼스는 그가 한지나 천에 그린 수묵화와 같은 의도를 가진다. 그의 그림은 영상 속에서만 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지 않나.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임현락의 회화는 자기 확인의 원칙 속에서 경탄할 만한 움직임으로 진화했다. 그렇다고 이를 키네틱 아트로 접근한 한국화라고 부르긴 싫다. 그것들은 겹쳐지고 스치며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하고 심지어 대화하듯 소리까지 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순간 제 자리를 찾아가며 멈춘다. 미학이나 문학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나 자연·사회과학에서는 간단하다. 이 또한 평형에서 벗어난 물리적 계가 규칙적인 진동을 벌이며 시간에 따라 여러 패턴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화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유사(quasi) 생명력을 얻어서 온갖 감각의 층위를 건드리는 작품 앞에서 그는 어떤 확신을 가질까? 텅 빈 한 가운데에 존재하는 압도감은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같은 경험일까? 순백의 면과 황량한 자연이라는 평형을 깨트리는 한 줄기 먹선으로, 그의 붓이 닿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르는 움직임이 여기에 있다.


임현락_ 호흡-‘1 초’ / Breath-‘1 second’_Video & Installation_Dimension variable, 

Palazzo Loredan dell‘Ambasciatore_Venice, Italy_2015


(’Jump into the Unknown’ by Nine Dragon Heads,

Collateral Event of the 56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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