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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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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전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15-06-17 ~ 2015-06-23

  • 참여작가

    권인경, 김남수, 박경민, 박성식, 박순철, 양정무, 왕열, 이성현, 이여운, 임진성, 임태규, 장태영, 최순녕, 하태진

  • 전시 장소

    갤러리그림손

  • 문의처

    02.733.1045~6

  • 홈페이지

    http://www.grimson.co.kr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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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
권인경, 김남수, 박경민, 박성식, 박순철, 양정무, 왕 열
이성현, 이여운, 임진성, 임태규, 장태영, 최순녕, 하태진


2015. 6. 17 (수) - 6. 23 (화)
갤러리그림손





법고(法古)와 창신(倉新)이 되기 위해서


류 철하(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묵은 동북아시아 미술담론의 내용과 정체를 이루는 불가결한 요소이자 핵심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수묵은 전통양식과 미학을 계승하고 이를 동시대적 맥락에서 변용, 재해석하는 시대적 형식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수묵은 시대적 변천에 따라 동시대 예술의 관념 중 하나를 총결하는 양식으로서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성이라는 통합된 관념의 표상이 되었다. 수묵이 옛 전통을 따르는(師古) 문제는 그러한 미적 양식이 지향하는 이상과 관념을 정신적으로 공명하면서 시공(時空)에 시차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회화로서 수묵이 지향하는 것은 전통으로서의 그 정신의 계승과 역사경험이 현실에 근거한 정신적 공간구성으로서의 수묵이었는 점이다. 보편적 감수성과 세계관, 현실의 가치들이 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예술에서 수묵은 삶과 감각의 구체성에 밀착한 보다 생생한 것을 요구 받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 것이고 무엇이 그것을 의미 있게 구성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보다 절실하다는 의미이다. 바로 전통에 대한 반성과 부정, 방법적 탐구속에 얻어지는 결론 등을 수용하려는 여린 사고가 필요하다. 오늘날 수묵은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실험적인 형식화를 경험하고 있고 이 해체는 주체의 재구성을 전제로 하는 형식화 시도이다. 결국 세계에 대한 나의 인식과 표현이 정체성을 가진 실존인가에 대한 자기확인인 셈이다. 


수묵을 구사하는 작가들은 지각현상 속에 탐구되는 감각적 호소력을 재현하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굳어진 형식을 비틀고 깨워서 감각적 세계를 화면 안에 제시하여야 한다. 이는 수묵이라는 연속된 전통의 관념이 우리 세계의 보편적 감수성에 합류하는 예술적 표현의 한 장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수묵은 자아를 바라보는 특수화된 내면이지만 서양과 현대라는 그림자에 맛서 내재된 근대성을 발견하는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수묵은 근대성의 전개 속에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보편문화에 합류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전개되어 왔다. 동북아시아에서 보편문화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에서 근대의 개화를 거쳐 서구의 강력한 문화적 영향 아래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서구적 보편의 거울을 바탕으로 그 보편의 상대로서 특수화된 자아를 바라보는 내면, 곧 수묵이라는 특별한 양식이 자리하고 있다.


 수묵은 정신과 형식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담론의 대상이다. 전통이 규범이 아니라 창조력이고 자기의 창조력을 위해 변형시켜 이어야 한다면 수묵과 정체성에 대한 반성은 수묵이라는 질료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의 추구에서도 본질적인 가능성을 개방하여야 한다. 수묵의 상징성만큼 이나 동시대 현대미술로 변환하고자 하는 시도에서부터 고통스런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통양식의 자기화와 현대적 지평에 대한 개방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한다. 이러한 개방이 현실세계를 더욱 풍부히 이해하고 나를 둘러싼 역사적 연속과 공간적 배경에 새로운 상상과 감각의 힘을 줄 것이다. 수묵의 새로운 구성을 위한 해체는 유효한 어떤 것을 찾기 위한 제거와 초월의 형식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것’은 ‘없는’것에서 어떤 것을 창조(創造)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것을 바꾸고 해체하며 자기화 하고자 하는 노력 곧 창신(創新)이다. 새로운 것,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은 기존의 것을 한편으로는 보존하고 한 편으로는 파괴하여 새로운 형식적 충돌을 만들고 그것의 가치가 온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될 때 가능하다. 새로운 어떤 것은 전통과 현대의 해석에 대한 보다 공적인 의미와 시각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가치의 어떤 지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고고한 예인의 사탑에서는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고법(古法)을 나의 법(我法)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석도(石濤)이래 수 없이 이어왔다. 문제는 고법(古法)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신의 정수와 정체가 흔들릴 때 옛 것을 생각한다. 나그네의 물 한 모금에도 근원이 있는 것이다.


 옛 것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공적이고 사회적 가치의 어떤 것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고법을 상기하는 것은 불우한 세계를 음미하고 그 가치의 전도에 대해 예술가로서 감내함으로서 그것이 시대의 정신이 되는 거울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누가 그 거울을 들여다보고 누가 불우한 마음이 되었나를 생각해 보면 적어도 수묵에서는 황량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법고(法古)의 의미는 그러한 것이다.


 새로운 묵, 새로운 표현을 표방했던 신묵(新墨)도 현대화의 새로운 조형적 미의식을 찾기 위해 전통이라는 조형에 기본을 두면서 실험을 다했던 그룹이다. 화가로서 신묵(新墨)에 모인 동지들은 새로운 감각적 힘과 상상을 위해 고법을 나의 법으로 바꾸는 길이 무엇인지 음미하여야 한다. 화가의 마음이 공명하는 세계는 모든 형식적 난제(難題)들 속에 자신의 정신을 오로지하여 불우한 시대 가운데에서 빛나는 정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선을 향한 열망이고 시대를 함께 하는 열정이며 자신을 지키는 순수이다. 이것이 없다면 물질과 욕망이 유리처럼 반사하는 현대라는 현기증을 통과할 수 없고 법고도 창신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새로운 묵, 새로운 표현은 결국 자기쇄신에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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