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주,도봉산우후,2005,수묵담채,388×45cm
산수보다 아름다운 산수
매정_이창주
1. 기획의도
○ 2015년 원로작가초대전으로 매정 이창주 화백을 초대하여 작가의 회화세계를 이해하고 시민들에게 남종문인화
전시 감상기회 제공.
○ 전통문인화의 맥을 잇는 동시에 사실을 기초로 두고 대상을 남종문인화의 형식으로 풀어내려했던 이창주 작가의 작품을
통해 한국 남종문인화의 화맥을 이어갔던 호남화단의 전통 화맥 연구 기회
○ 현대미술 속에 수묵화, 전통회화의 계승과 발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
2. 기간 : 2015.06.16 - 2015.08.09
※ 개막식 2015. 06. 18 오후 5시
3. 장소 :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제3, 4전시실
4. 출품작가 : 이창주
5. 작품수 : 70점
6. 주최 : 광주시립미술관
이창주,산가청명,1985,수묵담채,70×68cm
이창주,심춘산곡,1989,수묵담채,133.5×69cm
원로작가초대전
산수보다 아름다운 산수_매정 이창주의 회화
홍윤리(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사람들이 좋은 그림에 대하여 ‘진짜 같다’ 하고, 좋은 경치에 대해서는 ‘그림 같다’ 고 칭송한다.” 선인들은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산수를 산수화로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산수화는 산수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만족스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정 이창주 화백은 산수화를 즐겨 그렸다. 그의 산수화는 겹겹이 보이는 산들과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르고 화사한 꽃나무와 소나무 또는 단풍든 나무와 그 옆의 정자 한 채가 산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실제 풍경을 스케치하여 생가풍경, 강진, 화순 동복 등을 그리기도 했지만 주로 그렸던 산수는 어떤 특정 장소를 알 수 없는 평범한 장소이며,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을 주는 마음의 고향 같은 이상적으로 환원된 풍경이다.
이창주,청류,1984,수묵담채,123×69cm
그는 새로운 현대미술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전통 문인화의 맥을 잇는 것에 관심이 깊었다. 매정 이창주는 장흥출신으로 그의 선대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종증조부는 설초 이자원(雪蕉 李子遠, 1855-1923)이었고, 그의 조부는 송파 이청흠(松坡 李淸欽, 1882-1937)이다. 설초는 남종문인화가인 소치 허련의 문인으로 남종문인화가이며, 송파는 해방이전 일본에서 일본 문전, 일본전국서도작진회전 등에 특선했고 2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을 만큼 일본에서 활약했던 화가였다. 매정은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초와 송파 작품을 보며 큰 감회를 얻어 이른 시기부터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또한, 매정 이창주는 의재 허백련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1955년 조선대학교에 입학한 작가는 당시 조선대학교에 서양화 교수였던 오지호 화백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국화를 배우기 위해 의재 허백련 화백을 찾아갔었다. 그는 1959년 조선대학교 최초의 한국화 졸업생이었고 대학을 입학한 해부터 의재 선생이 세상을 떠났던 1977년까지 의재 허백련 화백을 찾아뵈며 그림을 배웠다. 그의 작품에 드러난 남종문인화적인 이상적 산수화 분위기는 허백련 화백의 영향으로 보인다. 또한 작가는 전라남도의 여러 지역에서 교사생활을 했는데 목포지역에서 4년여를 근무했다. 그곳에 있을 당시 남농 허건을 자주 찾아뵈었다고 한다. 매정 이창주의 작품화면 중심에 있는 대담한 농묵의 소나무의 먹선은 남농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는 소치 허련부터 내려오는 남종문인화가의 맥을 잇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처럼 그가 전통 회화를 고수했던 것은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 컸던 것 같다.
남종문인화를 그린다는 것은 기법을 따르는 것이고, 옛 문인화가의 정신세계를 존중하고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세속과 차원을 달리하는 탈속의 경지 혹은 그러한 탈속의 정신을 화면으로 보여주려 했다. 전통회화에는 고전적 은사의 은거지를 제재로 하여 그들의 은거를 상기하고 자신들의 은거지에 그 이상을 부여하고 소원했던 풍경, 또는 자신이 수장한 고동서화가 수장된 서재와 원림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탈속하고자 하는 이들의 한가로운 생활, 이상적 세계를 대변하는 산수화 등이 있었다. 작가 이창주는 전통산수화처럼 자신의 이상적 공간을 작품에 담았다.
양식적 특징을 보면 그의 회화는 탈속의 의미에서 선비의 기운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남종문인화를 따르고 있지만 한적함과 동시에 유쾌한 산수풍경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산수 이미지 중 하나인 매화서옥도는 아직 추운 이른 봄 매화 가득 피어난 밤에 선비가 초롱불을 밝히고 글을 읽는 장면을 그렸다. ‘매화가 활짝 핀 산’의 의미는 깨달음의 선종적 표현이기도 했다. 매정 이창주의 산속에 꽃이 핀 나무는 이런 남종문인화가들이 추구했던 선의 경지를 표현한 매화 산수도를 연상케 한다. 이런 연유로 그가 10대 때부터 매정(梅汀)이라는 호를 지속해서 사용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초기에는 실경을 바탕으로 한 평범한 한국의 시골풍경으로 비닐하우스가 있고, 곡식의 저장고가 있는 1970년대 한국의 시골풍경이 작품의 주를 이루었으며, 자신의 고향풍경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이후 그의 주요한 작품은 깊은 산속에 기와집 몇채로 이루어진 탈속의 장소를 대상으로 하였다. 작가는 “전통 회화를 밑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으로 새로운 한국화를 제작하려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機上에서 본 凍土>(1991), <新綠>(1990) 등에서 소재나 구도의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지만 그의 주요한 작품대상은 이상적 산수풍경이다. 이는 1980년대 교수로서의 생활과 함께 혼란스러웠던 광주의 상황 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의 은거지가 아니었겠나 추측케 한다.
이창주,추산청류,1986,수묵담채,69×66cm
이창주 화백은 특정 부분을 강조하여 멋들어지게 그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 필묵의 멋을 구현하는데 주력했다. 그의 회화에는 속도감 있는 필치와 함께 붓과 먹으로 이루어진 조형세계가 중요했다. 거칠거칠한 필묵의 힘이 두드러진 그의 작품은 몇 개의 선과 점 등으로 만들어진 나무, 산, 집 등의 형상들이 보는 이에게 제작과정 속에 있었을 필묵의 유희와 즐거움을 준다. 또한, 화면 속의 거칠거칠한 필선은 풍파를 해치고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낸 소나무의 상징성을 그의 필묵에서 떠올리게 한다. 이런 필묵과 꽃나무 그리고 흐르는 계곡물의 대조적 표현은 그가 즐겨 그린 소나무처럼 세찬 풍파가 지난 후 한적해진 시간의 간격을 느끼게 한다.
미술관은 2015년 원로작가초대전에 매정 이창주 화백을 초대했다. 매년 개최되는 원로작가초대전은 호남화단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작가 1인을 초대하는 전시회이다. 초대작가 선정과정에서 그동안 초대되었던 작가들의 장르별 분포를 조사해 본 결과 한국화 작가에 대한 관심과 연구, 전시회가 부족했다는 의견이 반영되어 평생 남종문인화를 지고지순하게 고집했던 작가 매정 이창주가 선정되었다.
그는 도전, 시전, 무등대전,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 박물관 문화재위원 등 광주 전남지역의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고, 광주전라남도 지역에서의 교사생활과 조선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내어 그의 영향이 주변에 지속해서 미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시공간은 매정 이창주 화백의 작품을 시대별, 장르별 화제 등을 고려해 네 공간으로 설정했다. 제1부는 매정의 초기 작품인 한국의 농촌문화의 정서를 반영한 전통적 취향에 충실한 남종문인화가풍의 작품을 전시하여 그의 이른 시기 실경산수 작품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제2부는 화백이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새롭게 시도하려 했던 작품과 더불어 작가 특유의 거침없는 필치와 화사한 색채의 산수화로 작가의 개성있는 회화의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제3부는 화조도, 사군자, 서예 등 이창주 화백의 다양한 문인화를 볼 수 있게 전시하며 제4부는 그의 선대인 설초 이자원, 송파 이청흠의 작품과 그의 아들이자 현대미술작가인 이동환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해 일가의 회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이들 작품을 통해 서화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토양 위에 이어진 일가의 서화 세계를 대할 수 있는 동시에 전통 문인화와 함께 전통회화의 계승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를 통해 매정의 예술세계를 조망해 봄과 동시에 남도 한국화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겠다. 속도감으로 다작할 수 있는 수묵화는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남종문인화의 맥을 이어갔던 남도에 가면 음식점이나 이발소 등 흔한 대중적인 장소에도 그림이 걸려있었다는 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수묵화는 급 변화하는 한국 현대미술 속에서 어느 순간 박제, 유물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며, 현실 세계를 직시치 않고 외면한 관념에 빠진 미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대사회의 빠른 변화속도만큼 현대미술 또한 변화가 커서 너무 큰 괴리감으로 수묵화가 공백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는 전통 회화, 많은 세월 속에서 수련되고 연습되면서 이론화되었던 단순 유물로서의 미술작품이 아닌 한국 현대미술 속에서 전통 수묵화의 계승과 발전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