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5-06-24 ~ 2015-06-30
배달래
무료
02.733.1045
미완의 정원
인간의 몸으로 인간을 재해석한다
작품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거나 기존의 작업에서 새로운 작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작가로서 성장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지만 작업의 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강한 집중력과 창작의식이 동반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배달래 작가는 한동안 인간에 대한 재해석을 바디페인팅의 방식을 이용해 표현해왔다. 인간의 몸을 통한 인간의 재해석은 직접적이고 아주 직설적이다. 캔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인체를 통한 4차원적 표현방식을 과감히 이용하고, 시각적 조형언어를 인체 위에 투영하여 보는 이의 원초적인 감성을 유도하면서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바디페인팅 작업에서는 한 사람의 일생을 표현하는 ‘자서화 시리즈’와 자신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에 대한 ‘변장 시리즈’가 주된 주제로 작업되었다. 화려한 소재와 색채감각의 바디페인팅 작업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인 ‘연민’을 표출해 낸다. 그러나 곧 ‘연민’이라는 온화하고 잔잔한 감성은 대자연과 마주한다. 현대사회의 개발로 포장된 4대강의 변질 앞에 작가로서 표현에 대한 착실한 욕망은 자연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졌다. 상처 난 거대한 자연환경을 감싸 안아야 하는 자연스럽고도 숙명 같은 강한 충돌이었다. 이는 그를 자연으로 뛰어들게 하는 일대 전환기적인 현상이었다. 이후, 작업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리는 작업을 넘어 본인의 몸을 같이 담아 표현하는 퍼포먼스 작업으로 이어진다. 내성천의 퍼포먼스 작업은 한반도의 유일한 원초적 자연생태인 DMZ로 이어지는 시작이었다.
현대미술의 장르에서 퍼포먼스 작업의 표현방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 장르다. 다르게 말하자면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장르였다고도 할 수 있고, 퍼포먼스 작가로서의 활동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표현하고자 하는 정확한 의식을 가진 소수의 작가들은 다른 표현과 병합된 방식을 통해 작업을 지속적으로 끌어가고 있다. 배달래 작가의 경우도 상당한 의지로 표현방식을 구사하고,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의 무제한 속에서 자연을 응대하는 표현을 시도해 왔다. 또 독자적 표현보다는 다른 작가와의 파트너십을 통한 콜라보레이션 방식으로 더 강한 이미지와 넓은 공감대를 전달해왔다. 여기에 지속적인 바디페인팅의 기법을 더해 표현의 다양성을 높인다.
이러한 작업과정의 변화에서 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는 맥은 ‘자연’이다. 오염되고 황폐해진 자연환경의 회복과 위기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메시지를 인체를 이용해 표현해왔다. 자연 속에 인간, 인간 속에 자연으로서의 교감을 통한 순수한 집념의 일각을 읽을 수 있는 표현이다. 곧 또 다른 일각을 선택한다. 가장 자연다운 가장 원시적인 환경을 위해 고민하고 선택한 곳이 DMZ이다. 자신에 내재된 표현욕구의 아우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몸이 숲이 되는 순간
그는 틈만 있으면 DMZ로 향한다.
그에게 DMZ는 단순한 숲이 아니다. 작업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찾아낸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정원이다.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곳, 많은 지뢰가 묻혀 있는 위험한 곳, 희귀식물이 얽혀있고 동물이 뛰어다니는 곳 등 많은 의미를 내포한 숲이지만, 그 이전에 그에게 있어서는 숲의 일부가 되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정원같은 공간이다. 이곳저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이나 험한 상황은 그리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표정을 마주하지 못해 불안해하다가 그 속에 들어서면 안도 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보존본능의 모성애와 소유욕을 온 몸에 담아 작품으로 풀어내고 싶은 작가의 아름다운 변명이다.
DMZ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모든 풍경을 몸속에 담는다. 그 속에서 전신으로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각기관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눈으로 기억하지 않고 온몸으로 느끼고 기억하려한다. 시각적인 인식은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른다. 시간 속의 색의 변화, 줄기 흐름의 느낌, 잎과 줄기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의 강도, 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의 움직임, 동물이 지나간 흔적의 기억 등을 조용히 차곡차곡 담는다. 온몸과 가슴에 채운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온몸에 주워 담은 DMZ의 모든 것을 풀어 놓는 곳은 작업실이다. 퍼포먼스나 바디페인팅과는 또 다른 방식이다. 꾸미거나 변형하거나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온몸의 감각기관으로 느낀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캔버스에 담는 직설적이고도 착실한 방식으로 작업의 과정에서 이차원과 사차원을 수없이 넘나든다. DMZ에 대해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한다. 창작의 의지로 역사적 환경과 자연환경을 재구성하여 작업을 돌출해 내는 작가다. DMZ라는 공간 속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식물과 그 속을 뛰어 다니는 동물은 오로지 삶터 그 자체의 공간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역사적 환경으로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인식의 전환은 이미 많은 친화를 통해 안정적인 작업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면에 담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
작업시간에는 문을 걸어 잠글 만큼이나 비장하다. 담아온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중의 의지이기도 하다. 잔잔한 기억까지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를 캔버스에 옮겨 담는 작업이다. 큰 붓을 사용하지 않고 온통 세필만으로 400호, 500호의 대형작업들을 과감하게 완성해 낸다. 작은 붓을 통한 불규칙적이고 자유로운 퍼즐을 맞춰 나가는 것처럼 한 터치 한 터치는 뚜렷하게 살아있다. 온몸으로 담아온 생생함이 흐려지기 전에 여과 없이 작업에 쏟아내는 무서운 집중력의 작업이다. 색채의 베리에이션은 환상적인 균형을 유지한다. 수십 개의 가느다란 작은 세필들은 각양각색의 색으로 각각의 역할들을 다하는 치밀한 계획도 동반된다. 평붓이나 큰 붓으로 배경을 깔아 들어가는 작업은 과감히 생략한다. 색과 색을 겹쳐서 표현하는 방식을 생략하고 완성된 색을 현실적으로 적용방식 역시 매우 직설적이다. 익숙해진 숲에 대한 감각의 표현이다. 그의 감각적인 색의 배합은 붓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물감이 듬뿍 달라붙은 붓은 오히려 자연 고유색과 다른 분위기를 선택한다. 숲다운 색채는 색과 색의 시각적 배합을 계산하여 그리는 2차적 배합방식을 유지한다. 그림을 그리는 그의 위치에서 완성 후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거리까지를 계산해서 가늘고 구불구불한 불규칙적인 붓의 움직임으로 색의 시각적 배합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완성된 숲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테크닉은 두툼한 물감의 마티에르와 더불어 캔버스 전체를 역동적이고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붓 터치, 마티에르, 가시거리에서의 색이 시각적 배합을 통해 비로소 숲의 색이 완성된다. 그의 작품의 완성은 관람자의 거리에서 보는 순간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또 하나의 매력거리는 이면에 있는 읽을거리다. 아주 생생하게 그려진 DMZ의 숲의 작업의 완성은 여기에서 다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작업은 기운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마치 동양화론에서의 기운생동과 같이 마지막 작품의 완성을 위한 정신의 주입은 동양적인 방식을 도입한다.
그의 작품으로의 시각적 접근은 그저 식물이나 숲이나 밀림을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그 숲의 색채 뒤로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DMZ에서 본 군인과 철망과 북녘 땅, 그 속에서 본 빛과 바람과 동물들의 생명, 그 이전의 한반도의 뼈아픈 역사의 기억과 동족간의 갈등 등 많은 사연을 담기 위한 마지막 작업은 공기와 빛의 주입이다. 온몸으로 느낀 모든 것과 시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붓 자국의 뒷면에 가득 담는다. 이것이 마지막 작업이다. 배달래의 DMZ작업은, 가슴으로 접근하면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고, 느끼게 하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거대한 정원이다.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정종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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