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5-09-09 ~ 2015-09-15
문기전
무료
02.733.1045
문기전의 ‘자유와 순수의 시원’
문기전은 수묵채색의 깊은 맛과 신비로운 풍경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세계를 표현한다. 그의 그림은 거대한 폭발이 화염처럼 피어올라 세상을 뒤덮는 듯한 풍경으로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를 담고 있다. 호메로스가 세상 끝에 있다고 말한 엘리시움(Elysium)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화두는 인간의 삶이다. ‘나의 총체적 화두는 죽음, 그리고 삶이다.’ 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인간이 생애주기 동안 끊임없이 반문하며 살아가는 존재적 회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안락함과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희망과 다르다. 행복과 희망의 파괴는 모든 관계의 엇나감에서 비롯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문명과 인간 사이의 균열은 불신, 허식, 분열, 폭력, 황폐화, 파괴 등이 요인이다. 문기전은 엇나간 관계가 일으킨 현상을 디스토피아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자연과 인간의 공존세계를 그려낸다. 이는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 속에 자리했던 유토피아 관념이 무너진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사회를 응시하는 작가적 시선에서 확인된다.
‘나를 지탱하는 삶의 시간은 보편적 이념들로 물들고 정당화 되어간다. 인식의 폭력, 관계의 폭력, 이념의 폭력, 체계의 폭력 등 수많은 폭력은 체계화된 시간 속에서 알게 모르게 넓고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 작가노트 -
문기전은 여러 형태의 폭력이 인간세상을 유지하는 실질적 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시간이라는 경계 사이에서(2008~2010)’와 ‘silent (2011-2012)’라는 주제로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다루던 시기부터 이어왔다. 문명의 폭력으로 파괴된 자연은 생명력을 잃고, 그 고통은 다시 인간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표현한다. 문명의 폐해는 결국 자연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1910~1993)이 “문명은 인간의 타락, 고통, 불평등, 지배라는 대단히 높은 비용을 지급한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인류가 문명의 발전이라는 미명아래에 추구해온 파괴행위라고 주장한 것처럼 세계의 많은 지성인이 인간이 낳은 문명의 폐해를 비판하며 경고했다. 그럼에도 문명발전을 향한 인간의 질주는 멈춤이 없다. 그 결과 인간사회는 온통 물질문명의 결과물을 모아둔 거대한 창고처럼 변해가고 있다. 문기전이 전작에서 그려낸 피폐한 자연환경은 결국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낳은 산물임을 보여준다.
최근 작품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단, 근작에서는 현대사회의 불합리한 구조 속에 인간성 회복과 자연회귀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포함시킨 시선이 새롭다. <산 자들의 영원한 안식처>의 제목처럼 문명사회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에게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하고 싶은 의도가 강하다. 신화 속 무릉도원이 눈앞에 펼쳐진 듯 신비롭고 웅장한 자연풍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자연 속에 머물게 한다. 작품크기가 여전히 제한적 화폭에 머물러 그림이 주는 위압감이나 경외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캔버스의 재료적 한계를 넘어 한지의 장점을 극대화한 효과는 나름의 성과로 보인다. 스며들 듯 퍼진 여백의 확장으로 가상공간이 갖는 무한 공간감과 중첩된 풍경에 더해진 깊이감이 아련하지만 오랜 여운을 갖게 한다. 단색조의 축축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짙던 전작보다 한층 강렬해진 색조 변화도 눈에 띈다. 사회를 응시하는 작가의 긍정적 시각변화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변화는 <swimming1.2>, <scuba diving 1.2>, <go ballooning1.2>, <beach1.2>, <벚꽃1.2.>, <오리 배를 타다> 등 희망과 행복을 찾는 인간의 본성을 담은 그림에도 나타난다. 언급한 작품들은 아직 문명의 껍질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현대인이 원시성에 둘러쌓인 자연에서 망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그림 속 열기구, 스킨스쿠버, 오리배 등 극화한 작은 이미지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을 대변한다. “풍경 속에 빠진 인간의 형상은 현대인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는 나의 모습도 있다.”라고 언급한 대목은 그의 작품세계가 현실을 응시하는 단면이자, 현대인의 자화상을 표현한 것임을 말해준다.
문기전의 근작에서 돋보이는 변화는 역시 형식에 있다. 근작은 어떤 특정한 형상성을 구체화하려했던 전작에 견주어 한층 추상적 형태로 바뀌었다. 이는 현실이 갖는 모호성의 반영이다. 객관적, 합리적 사고 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불합리한 사회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모순된 현실을 모호한 풍경으로 대체했다. 여기에 거대한 폭발화염처럼 보이다가도 꽃이 만개하는 듯한 느낌, 황폐함과 화려함의 공존, 두려움 속의 희망 등 그가 즐겨 쓰는 이중적 표현은 모호함과 더불어 인간사회에 만연한 양면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기전의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자연과 인간’,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원시적으로 표현한 점이다. 문명의 잔해를 뒤덮고 있던 전작과 달리 형상이 약해지고, 문명의 흔적들이 완전히 감춰지거나 사라졌다. 거대폭발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후 태초의 원시모습을 회복한 풍경처럼 문명의 흔적을 지웠다.
원시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에 속하는 형태이다. 예술비평가 존 란다우의 견해처럼 원시란 본능에 따르고, 자유롭게 관류하고, 자신의 삶을 마음껏 그려나가는 것이다. 어디서나 즐겁고, 어떤 것에도 얽매임이 없는 자유존재를 의미한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공간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당혹스러움이 포용되는 것이 원시이다. 결국에 원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낙원세계이다. 문기전의 화폭을 구성하는 여러 이미지들이 인간의 보편적 삶의 양식과 동떨어진 형태라는 점은 그가 지향하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명은 절대 완성되지 않고 항상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1897~1990)의 말처럼 인류가 추구하는 수많은 행위는 결국 인간을 위험과 불안 속에 밀어 넣는다. 문기전의 작품세계는 문명화를 추구하지만 언제나 불완전한 세계에 놓여있는 인간존재의 가치를 특유의 역설과 이중성으로 그려낸다. 여기에 불완전한 사회일수록 유토피아의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풍경에 담는다. 궁극에 문기전이 그리는 원시낙원은 인간이 되찾아야할 ‘자유와 순수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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