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전시명 : 고재권 개인전: 에상스;essence
전시장 :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
주 소 : 대구시 북구 영송로 15(태전동)
오프닝 : 2015. 10. 15(목) 오후 5시
행사기간 : 2015. 10. 15(목) ~ 11.15(일)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5시 (월요일 휴관)
전시문의 : 053-320-1857
에상스; essence
기억; 그리고 마음 속의 노래
고재권 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옹기와 백자를 그리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다양한 백자그릇들과 옹기들이 우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반기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요즘 흔히 보는 현대미술작품처럼 관객에게 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뇌하도록 강요하듯 으르렁대는 것이 아닌 우리를 기분 좋게 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마치 어머니의 집에 온 것 같은 같은 안락함과 위안을 주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은 처음엔 흡사 극사실주의(hyper-realism) 작품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단순히 사물을 잘 묘사한 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우리에게 포근함과 친숙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은 그의 삶의 이야기에서 찾아질 수 있다.
I.
고재권의 백자는 그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따뜻한 기억을 형상화 한 존재이며
고재권의 옹기는 고국과 어머니에 대한 그의 의식 속 향수가 응집된 대상이다.
그의 사물 속에는 작가의 기억이 숨쉬고 있다, 이러한 물체들을 그리며 추억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베어있다. 그리고 우리는 캔버스 안에 존재하는 이 사물들을 통해 그의 마음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8남매중 가운데였는데 학교에 다녀와 밥을 준비하는 역할은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 시절 아버지의 밥은 솥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골라 주발에 담은 후 보온을 위해 이불 속 아랫목에 정성스럽게 보관하고,다른 식구들의 밥도 각자의 밥그릇에 나눠 담았었던 비록 넉넉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항상 행복하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의 백자그릇은 이러한 그 때의 따뜻한 마음과 활기찬 시절의 시간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억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그 기억들을 다시 되새기며 자신의 근본을 찾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또 그 시절 항상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뒤뜰의 옹기에서 물을 떠먹었고 아침 저녁으로 옹기 위 그릇에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자식들 잘되기만을 기원하셨던 옹기 앞에서 절을 하시는 어머니의 기억이야말로 그가 타지생활을 하며 떠올리고 간직했었던 한국의 실체, 고향의 존재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옹기야말로 작가에게는 단순한 무언가를 담는 용기나 사물이 아닌 그의 고국과 부모에 대한 사랑의 마음, 그 애틋한 기억의 본질적 대상인 것이다.
작가는 설명한다. 그가 옹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은 옹기들이 다양한 용도뿐 아니라 우리나라 각 지방의 환경과 기후적 특성에 따라 그에 맞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면서 각기 다른 재질과 모양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옹기가 한국사회의 역사적 자취와 문화적 특색을 그 어떤 유물보다도 더 잘 보여주고 있는 귀중한 사물이라고 한다. 작가에게 옹기는 삶과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체와 같은 근원적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특히 그가 옹기의 겉면에 구름, 산, 새 등의 모양들을 그려 새겨 넣는 ‘환’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 ‘환’의 이미지와 문양들은 도공의 노래이자 숨결이며 그가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숨을 쉬는 우리 옹기의 섬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옹기야말로 작가에게는 우리의 근원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 사물로서 그의 정체성 탐구를 위한 작업의 대상으로서 택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백자그릇과 옹기; 그의 사물들을 통해 더 근본적인 자아와 삶의 본질을 찾고 그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에게도 자신을 들여다보고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명상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II.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고재권 작가가 호주, 미국, 영국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작품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겪으며 다른 공간과 시간들을 경험한 작가에게 한국에서의 기억은 평면화 되고 또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외부적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서로 다름(difference)의 수많은 관계들을 통해 그의 자아와 정체성 또한 다시 변모되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영향은 그의 작업 속에 충분히 반영되었고 그 특징들이 작품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작가의 사물들은 과거의 기억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결코 추억 속에 머무르는 존재만은 아니다. 그것들은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존재로서의 대상이고, 작가가, 또 우리모두가 살아온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 속에 다시 새롭게 해석되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작가의 화면 속에서 이 사물들은 점점 단순화되고 때로는 다양한 형태의 캔버스의 프레임 안에 배치되며 각기 다른 시공간의 배경과 색채 속에 존재한다. 또 어떤 화면에서 물체들은 그림자가 없이 마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때론 오지 않은 미래의 공간을 부유하며, 그것에 관한 기억들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서 다시 조합되고 재배치되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자유롭게 시공간을 탐색하며 화면 속에서 그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옹기와 백자를 창조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사물들은 영원히 존재하며 항상 새로운 의미와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작가자신의 내면의 소리이자 그 자신의 본질이기도 한 것이다.
고재권 작가는 늘 강조한다: “사람이 변화 하려면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대를 경험해야만 한다.” 라고…
그는 그 동안 겪은 수많은 변화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하며 오히려 근원적인 것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다름 속의 같음을 같음 속에서 다름을 찾게 되었고, 그의 작품 속에서 대립과 갈등은 포용과 조화로 전환되어 친근한 사물들을 통해 우리를 감싸고 때로는 달래며 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그의 작품들을 보며 무한한 시공간을 누비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를 느끼며 삶의 본질(essence)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 가을 거실의 포근한 안락의자와도 같은 고재권 작가의 작업이 우리에게 따뜻한 삶의 기억과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Born(本)_15SSP42A, 2015, oil on canvas, 490x105cm
Essence_B15P9V01, 2015, oil on canvas, 181.8x227.3cm
Essence_O14P101, 2014, oil on canvas, 45.5x53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