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5-12-09 ~ 2015-12-15
이유진
무료
+82.2.737.4678
갤러리 도스 기획
이유진 ‘탈아 (脫我 TAL-AH)’展
2015. 12. 9 (수) ~ 2015. 12. 15 (화)
철 가스 광대 (Iron Gas Clown) 디렉트 그라비어 에칭 (Direct gravure etching)30.5 x 45.7 cm 2014
1. 전시개요
■ 전 시 명: 갤러리 도스 기획-이유진 ‘탈아 (脫我 TAL-AH)’ 展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Gallery DOS (갤러리 도스)
■ 전시기간: 2015. 12. 9 (수) ~ 2015. 12. 15 (화)
2. 전시내용
이채은
가면(masks)의 의미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위장도구로서의 기능을 생각한다면, 가면의 본질은 착용한 이의 본 모습을 가리는 데 있을 것이다. 자유자재로 쓰고, 벗고, 교체하고, 변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면의 의미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가면은 특정 시대의 문화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유물이기도 하다. 한편, 예술품 또는 공예품으로서의 가면은 창작자의 노동과 재능이 집약된 하나의 작품이다.
갤러리 도스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이유진의 이번 개인전 <탈아脫喔>는 가면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해석을 바탕으로 제작된 두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하나는 비디오 작품 <태몽>(2014)으로, 작가가 디렉트 그라비어(direct gravure) 판화를 위한 동판을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동판을 완성하기까지의 길고 고된 노동의 과정을 담은 영상 위에는 작가의 어머니의 내레이션이 덧씌워졌다. 작가를 포함한 세 명의 자녀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꾸었던 태몽에 대한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태몽의 내용, 그리고 그 꿈이 암시하는 자녀의 미래 모습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말로 전달되고, 화면에는 그 말을 영어로 번역한 글이 동시에 타이핑된다. 작품의 탄생, 그리고 아이의 탄생, 이 두 가지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작가의 노동(labor)의 과정 또한 어머니의 출산(labor)의 과정에 비유된다. 형태적으로 추상화되었으면서도 강렬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화면 구성은 파편적이면서도 생생한 감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태몽의 속성을 닮아 있다.
<27개의 동판>(2014)은 이러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27개의 결과물들을 한데 모아 격자 구조로 배열한 것이다. 27개의 동판이 열을 맞춰 나란히 놓여진 모습에서 관객은 <태몽>에서 경험한 지루한 시간성과 노동의 반복성이 단숨에 극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격자 배열은 한편으로 고고학적 유물의 진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이 27개의 가면들은 작가의 27년간의 지난 삶 동안 작가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여러 사회, 문화적 경험들을 거슬러 ‘발굴’해낸 역사적 산물이다. 이는 작가의 개인사의 집약체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살고 있는 현 시대를 대변하는 집합물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 각시탈에서부터 알래스카의 제의용 탈, 가이 포크스(Guy Fawkes) 가면, 그리고 아이언맨 가면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다양성은 극대화된 이동성, 연결성, 혼합성으로 대표되는 현 시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태몽>이 그라비어 동판을 만드는 과정의 지속적 시간성을 담고 있다면, <27개의 동판>은 그 지속된 노동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화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두 갈래의 시간성은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종종 표현되어 왔다. 종이에 드로잉으로 폭발 순간의 연기 구름을 세밀하게 묘사한 <구름 시리즈(Smoke Series)>(2010-13)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 일련의 드로잉들에서 작가는 뭉게뭉게 피어나는 연기 구름의 한 순간을 스냅샷으로 포착한 듯한 효과를 표현해 내면서도, 드로잉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통해 긴 시간 반복된 정밀한 노동의 존재 또한 부각시켰다.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시간의 형태는 바로 앞날에 대한 암시와 기대로 이루어진 ‘미래지향’의 시간이다. 태몽은 그 자체로서 미래에 대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앞날에 대한 호기심, 기쁨, 기대, 희망과 같은 미래지향의 감정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태몽>에서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의 목소리 속에는 자녀의 탄생, 성장, 그리고 미래를 향한 그와 같은 감정들이 깊게 배어 있다. 이와 함께 동판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 또한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결과물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과 기대를 적극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된다. <27개의 동판>이 담고 있는 시간의 형태도 <태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판화를 찍기 위한 준비 단계의 틀로서, 동판은 그 자체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수많은 가능성과 기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27개의 동판>은 더 이상 판화를 위한 틀로서 기능할 수 없게 만들어진 상태이다. 보통 작가들은 한정 부수만큼의 에디션을 찍은 후 판에 ‘X’자 또는 다른 표시를 하여 판을 폐기하는데, 이유진은 잉크를 바른 후 그대로 굳히는 방식으로 판을 못쓰게 만들었다. 기존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판을 ‘폐기’한 것이다. 이렇게 ‘폐기’되어 독립된 오브제로 존재하게 된 27개의 동판들은 다음 단계의 작품의 형태를 예시하면서도 그 단계에 도달할 수 없음을 공표하는 두 가지의 모순된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암시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과 상상의 괴리를 확인시키는 이중의 기능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이중 작용은 <태몽>에서도 두 가지 층위에 걸쳐 발현된다. 어머니의 태몽 이야기를 통한 작가의 미래에 대한 암시, 그리고 그 상상 속 작가의 미래와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의 실체 사이의 틈을 확인하는 순간이 그 첫번째 층위를 이룬다. 이는 꿈의 내용을 전달하는 어머니의 언어(한국어, 구어)와 작가의 언어(영어, 디지털 자판)의 차이를 통해 함축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즉, 작가의 미래를 두 가지의 언어로 중첩적으로 예시하면서도 그 언어/매체 자체의 극명한 차이로서 둘 사이의 다름을 확실히 하고 것이다. 이 두 화자가 이루는 평행적 구조는 작품의 막바지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의 목소리가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할 때, 즉, 작가가 완성에 다다른 동판을 마주하며 ‘엄마 손은 약손’을 부르는 순간에, 기대와 괴리 인식의 이중 작용은 또다른 층위로 넘어가게 된다. 엄마-자식의 관계가 작가-작품의 관계로 오버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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