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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수 10주기 추모전 : 내일 더 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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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더 빛날

지상에 그는 화가로 내려 왔다.
10년 전, 천상으로 되돌아가면서도 화가로 올라갔다.
부활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고 부재不在의 존재로 하늘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 부재의 시간 동안 천상에서 그린 그림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전시가 가능해졌겠는가.
우리는 여태 일부로서의 박권수만 보아 왔다.
우리는 여태 한정된 시간 속의 박권수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여태 파편으로서만 박권수미학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와 일본을 비롯해서 국내외에서 가졌던 50여 차례의 개인전은 이 전시를 위한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이제야 우리는 박권수 작품의 전체상을 구성하게 되어 그의 미학세계를 진정으로 들여다 보게 되고, 또 알게 되며,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진정으로 알고 진정으로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깨우쳐주게 되었다는 자긍심으로 전시준비 내내 설레었다.
한점 한점에 작가의 삶과 예술혼이 스며든 이 걸작들이 흩어지지 않고, 작가의 고향 충남 서천을 빛낼
예술공간에 박권수 분신으로 들어서는 그날이여,
어서 오길!

2015. 12

공동대표 _ 박 인 식, 전 유 성, 최 민 식    




박권수10주기추모 연장전은 아라아트센터 1개층이 170평인 규모의 3개층 2F, 3F, 5F에서 1/26 까지 연장 전시합니다.








2F/ 1989-1992년도 Black light를 이용한 Neon color의 설치작품









3F/ 1988-1991년도 300-500cm규격의 대형작품









5F/ 1972-1985년도의 소외된 인간조건의 군상을 회색조로 표현한 ‘失題’ 연작작품
     1986-2003년도의 자연과 인간을 밝은 색감으로 표현하거나 나무판 또는 한산모시등 타재료를 사용한 작품
     연대별로 150점 전시

UNTiTLE · 220×740cm · Oil on Canvas · 1984








소외된 人間條件의 群像
朴權洙의 「先題」연작에 붙여
이 일(미술 평론가)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朴權洙는 줄곧 인간만을 그려왔다. 그리고 그것도 매우 특이한 인간상이다. 왜 그가 그처럼 집요하게 인간만을 그려왔는가? 화가 자신의 술회에 의하건데 거기에는 그의 절실한 인간적 체험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곧 혈육의 죽음에 대한 체험이다.

어렸을 때 맞은 「그 죽음의 동경은 나의 마음 속에 선명히 찍어 놓은 落款처럼 지워버릴 수 없는 것」으로 이 화가 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그의 유다른 視角이 태어나는 것이다.

박권수가 그려내는 인간상, 대개의 경우 群像은 한마디로 소외된 인간군상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脫人間的」상황에 놓여있는 군상이며 외부와 완전이 차단된 상태에 놓여있는 인간 군상이다. 알베르까뮈가 말한 「인간의 부르짖음과 그 부르짖음에 대한 외부 세계의 절대적 침묵」이라는 부조리의 세계에 「갇혀져 있는」군상이다.

박권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저마다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 표정은 거의가 얼어붙은 듯이 굳어 있으며 생명이 있는 얼굴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가면을 생각게 한다. 굳이 어떤 표정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 세계로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면을 마치 어떤 深淵을 들여다 보듯 바라보고 있는 그러한 표정이다. 인물들의 동작도 또한, 비록 그 포즈는 다르기는 하나 역시 얼어붙은 듯 영원히 정지되어 있는 듯 하다. 이른바 「動勢」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일정한 옷을 입힌 모델로 하여금 어떤 포즈를 취하게 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은 후 거기에서 일련의 포즈를 선택하여 單一像으로 화면에 옮기든가 또는 군상으로 여러 가지 포즈를 배합한다. 그러나 그 배합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에게 있어 각 동작의 의미 또는 그 동작의 역동적인 연결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물들은 한 화면에 자리를 같이 하고 있으면서도 또같은 옷, 같은 얼굴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서로가 他人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묶는 배경, 즉 현실적인 상황 설정도 없이 상호간의 교류·교감이 완전히 단절된 인간군상이다.


처음부터 그의 화면에는 배경이 없다. 만일 배경이 있다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빈 공간이며 그것도 화면의 내부에 침투하고 그 일부를 냉혹하게 절단해 버리는 공간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 공간 속에, 마치 진공의 투명한 유리상자 속에 갇혀 있듯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모습은 거의 모두가 회색주의 單色調로 다루어지고 있다. 옷은 하나같이 죄수의 옷과 같기도 하며, 그 어떤 억압에 오히려 무표정해진 얼굴도 또한 어두운 회색이다.

언뜻 보기에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박권수 자신의 얼굴을 닮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자기자신을 모델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의 회화 그 자체가 自敍傳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회화는 어떤 한 개인의 「자화상」임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자화상 너머의, 현대인의 인간조건 바로 그것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85.9.








박권수 화백은 거대한 대작들과 함께 크고 작은100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였고 현재 대, 소 합쳐서 400여 점의 작품이 남겨져 있습니다.




박권수 (1950 - 2005)

1950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그는 1977년 홍익대를 졸업한뒤 1982년도 서울 미술회관에서 '소외된 인간의고뇌' 를 무채색의 자화상으로 표현한 첫 개인전을 가지며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1987년도 부터 이어진 뉴욕, 마드리드, LA 등지에서 전폭적인 초대를 받아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자연과 인간을 근간으로 고향의 소나무나 옛동상의 형상을 밝은 원색조의 배경에 - 외로움과 고뇌가 내재된 인간의 극한 상황을 - 다양한 몸짓의 자화상을 흑백의 회색조인 무채색 으로 대비시켜 관람자에게 그의 작품이 각인되어 버리는듯한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국내 미술인으로는 처음으로 1990년 (구)소련의 모스크바에서 초대전을 시작으로 한 *소 문화 교류의 첫장을 열며 각종 매스컴 등에서 연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1년 부터는 알본 동경의 '무라마쯔갤러리' 와 나고야의 'APA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하며 시대를 앞선 Neon light 를 이용한 4-5m 규모의 대작들과 설치물들을 발표하였다.더불어 33.4x24.2cm의 작은 작품들이 독립적으로 또는 하나의 Unit가 되어 크고 작은 화면을 구상하는 '유년의 기억속에서'를 연작으로 발표했으며 마티에르가 강한 화면에 자연 친화적인 작품을 평면과 입체로 선보였다. 

국내외에서 서른 한번의 개인전과, 구조전, 현상전, 익나전,오리진등의 멤버로 활발히 활동하며 쟝르를 넘나드는 시대를 앞서간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치열한 예술가의 삶을 살다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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