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은경 작가의 작업실은 손님들의 발길이 잦다. 그들은 그녀의 모델이 되어주고 그녀는 그들에게 담요와 전열기를 내어준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모델과 작가는 담소를 나누지만 한편으로 는 서로를 의식하는 불편을 느낀다. 그림이 완성되면 모델이었던 손님은 (질병에 걸린 듯 푸르스름한 피부, 미묘하게 일그러진 표정, 그리고 초점 잃은 불안한 눈동자로 묘사된) 자신의 초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은경 작가가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모순과 괴리에 얽힌 이중적이고 아이러니한 이야기들이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녀는 비틀리고 찢겨진 기형의 형상들과 그녀 특유의 블랙 유머를 사용하여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이러한 이미지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문학 작품이나 그녀의 경험에서 재창조된 캐릭터이거나 거울 속 그녀 자신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타인을 실제로 마주하고 그들을 그리는 과정은 작가에게 있어 다음 행보를 위한 습작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관계의 초상』은 작가의 최근 타인 드로잉 작업 위주로 구성되지만 그녀의 자화상 작업들 또한 감상할 수 있다. 그 중 마네의 「Olympia」(1863)를 패러디 한 작품 「올랭피아 놀이」는 타인 드로잉을 진행한 이후에 제작된 가장 최근의 페인팅 작업이다. 작가는 그림 속 창녀와 하녀 모두를 자신의 자화상으로 대체했다. 이 두 자화상은 호화로운 배경 안에서 타인 드로잉들과 같이 음울하고 병적인 색조와 일그러진 형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둘의 시선은 모두 거드름을 피우듯 화면 밖 관객을 빤히 응시하는데, 이것은 마치 그들의 호화롭고도 초라한 이중적인 모습에 공감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만 같다. 이처럼 작가 이은경은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인간 본연의 부조리들에 대하여 관찰하고 표현하고자 한다.
그녀가 자신의 자화상으로 인간관계 전반에 존재하는 이중성에 대하여 말해왔다면 타인의 초상들은 어떠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도 음울한 형상으로 묘사된 모델의 초상들을 볼 때, 작가는 타인의 모습을 마주하며 역으로 자신을 바라 봤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초상들과 자화상들이 함께 전시되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작가 본인의 작업 세계가 보다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유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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