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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한 컬렉션 하이라이트전 : 아름다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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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한 컬렉션 하이라이트전 , 아름다운 선물




대구경북 주요작가



① 영남권 : 1910년 전후 태생 대구경북 출신


대구경북 지역 출신 작가 가운데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작가는 1910년을 전후해 태어난  배명학(裵命鶴 1907-1973), 손일봉(孫日峰 1907-1985), 이인성(李仁星 1912-1950), 김용조(金龍祚 1916-1944), 김수명(金壽命 1919-1983) 다섯명이다. 


이들은 서양의 유채화를 배워 대구 경북지역에 정착시켜 나간 초기 작가들이다. 기증 작품에 포함되지 않은 동년배로는 서동진, 최화수, 황술조, 김용준, 박명조, 서진달, 김성암, 남관, 이쾌대, 강홍철, 정점식, 박인채 열두명이 더 있는데 김인한 소장품에 이들 초기 작가의 절반가량이 포함되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배명학(裵命鶴 1907-1973)은 상주 출신으로 어린 시절 대구로 이주해 1927년 영과회, 1930년 향토회 회원으로 활동함으로써 대구지역 유채 화단의 초기를 열어나간 화가였다. 해방 뒤 교사 생활을 하는 가운데 대구경북 미술계를 이끌어나갔다. 1965년작 <설경>, 1970년작 <백합>을 비롯하여 10점은 작가의 말년 작으로 소박한 인상파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손일봉(孫日峰 1907-1985)은 경주 출신으로 일찍이 서울로 유학했다가 제국 미전과 조선미전에 입선하고 난 뒤 1929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1934년 졸업한 뒤 귀국해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해방 전후 귀향하여 경주를 비롯한 경북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70년 전후 서울로 이주해 활동했다. 1965년작 <이끼>, 1979년 <큰 무늬가 있는 정물>까지 무려 38점이나 되는데 인상파 화풍을 토대로 삼고서 약간의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 풍부한 색감을 구사하여 이곳저곳에 개성이 번득인다.  


이인성(李仁星 1912-1950)은 대구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대구가 낳은 천재였고 후원자를 만나 1931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을 연속 세 차례 수상하여 천재의 명성을 이어가는 가운데 향토회 회원으로 대구 화단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해방 뒤 서울로 이주하여 활동하던 중 6.25전쟁 때 불의의 사고로 요절하였다. 1933년 작 <연못>과 연대를 알 수 없는 <향원정> 두 점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자리에서 가볍게 그린 소품으로 자기완결성을 지닌 작품이다. 


김용조(金龍祚 1916-1944)는 대구 출신으로 일찍이 서동진의 대구미술사에 입학해 그 뒤 조선미전을 무대로 화가의 길을 걷다가 1940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에 입학해 문부성 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1943년 귀국한 뒤 결핵에 걸렸어도 투지를 살려 다음 해 조선미전에 <어머니>를 응모해 조선 총독상을 수상했지만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연도를 알 수 없는 <항구 풍경>은 대담한 편파 구도와 안정감 넘치는 필치, 중후한 색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김수명(金壽命 1919-1983)은 김천 출신으로 대구사범학교 진학과 더불어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고 해방 뒤 대구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가운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대구 화우회,  팔공회 같은 단체전과 개인전을 전개하였다. 1957년작 <시골 풍경>, <도시 풍경> 두 점은 전후 1950년대 인상파 화풍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② 영남권 2 –1920년대 태생 대구경북 출신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작가로 1920년대 출생 작가인 백락종(白樂宗 1920-2003), 김준식(金埈植 1920-), 전선택(全仙澤 1922-), 강우문(姜遇文 1923-), 백태호(白泰鎬 1923-1988), 서창환(徐昌煥 1923-), 이경희(李景熙 1921-), 이복(李馥 1927-1975) 여덟명이다. 이들 또한 앞서의 초기작가와 큰 차이 없는데 1920년대 출생 작가만으로 보자면 장석수, 손동진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김인한 소장품’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백락종(白樂宗 1920-2003)은 대구 출신으로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술을 배워왔으며 1941년 경주에서 김준식, 박봉수, 김만술과 교유하였고 해방 뒤 1949년 개인전, 1951년 대구 화우회, 1958년 황토회 창립회원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1951년 작 <해바라기>, 1957년 작 <소년>은 활달한 필치와 풍윤한 색채를, 1964년의 <건물> 두 점은 색 면 바탕에 굵은 선묘를 보여주고 있다.  


김준식(金埈植 1920-?)은 경주 출신으로 일본 태평양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경주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해방 뒤 경주예술 학교 미술과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서라벌 미술가 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장을 맡아 경주 화단을 이끌었다. 1958년 작 <투계>는 붉고 검은 색조의 긴장감과 처절함이 넘치는 작품이다. 


전선택(全仙澤 1922-)은 평북 정주 출신인데 해방 직후 1946년 월남하여 전쟁과 더불어 대구경북에 정착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천단화 학교에서 유학하였고 1951년 김천 농림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경북에 정착한 이래 대구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1954년 작 <닭>부터 1960년 작 <얼굴>, 1974년 작 <흑과 청>, 1980년 작 <휴일>, 1992년 작 <넋을 달래다>, 2000년 <물고기를 잡은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65점은 각 시기별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서 전선택의 회화세계를 일별할 수 있다. 사실과 표현, 구상과 추상, 현실과 초현실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변모가 펼쳐져 있다.  


강우문(姜遇文 1923-)은 대구 출신으로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이래 추천, 심사위원을 역임한 국전작가이며 창작미술가 협회, 목우회, 구상전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대구 화단을 이끌었다. 1974년 작 <실내의 여인>, 1985년 작 <나부>, 1997년 작 <신바람>을 비롯한 22점 가운데 다섯 점을 제외한 모두가 화관무나 탈춤을 소재로 삼아 특유의 ‘신바람’이란 주제를 갖추고 있는데 그 형식은 표현성을 가미한 구상화풍이다. 

  

백태호(白泰鎬 1923-1988)는 대구 출신으로 계성중학교 시절 서진달로부터 유채화를 배웠고 일본 천단화학교와 동경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해방 뒤 교직에 투신하였고 1958년 백락종과 함께 황토회를 창립하였다. 1986년작 <정물>을 비롯한 세 점 모두 인상파풍을 보여준다.   


서창환(徐昌煥 1923-)은 함흥 출신인데 1946년 월남하여 영주를 거쳐 1959년 대구에 정착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대학 예술학부 미술과에 유학하였고 월남 한 뒤 교직에 투신하였다. 1970년 작 <추상>은 기호 추상으로 그의 추상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경희(李景熙 1921-)는 칠곡 출신으로 1939년 일본에 유학하였고 해방 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한 이래 국전작가로 활동하였는데 수채화 분야에 전념한 화가다. 1970년 작 <풍경>과 1975년 작 <항구>도 수채화로 풍부한 색감을 보여준다. 


이복(李馥 1927-1975)은 왜관 출신으로 일찍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다. 해방 직후 왜관 공립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시작하여 1949년 대구 대건 중학교 교사로 옮겨 미술교육에 종사하였다. 1974년 작 <물고기>는 무겁고 어두운 표현 풍으로 이복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1930년 이후 출생자들로는 곽훈(郭薰 1941-), 김영세(金永世 1952-), 이배(李英培 이배 1956-)가 눈길을 끄는데 곽훈은 미국, 김영세는 독일, 이배는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는 화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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