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용 개인전 : Reincarnation of Paradaise
Reincarnation of Paradise
낙원(paradise)의 어원은 고대페르시아어pairidaēza이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조건들이 주위를(pairi) 둘러싼(daeža)곳 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낙원의 건설을 위해 기계를 이용하여 신의 능력을 초월하려는 동안, 신은 세상에 더 이상 화신(incarnation)하기를 포기 한 듯하다.
인간은 기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진화를 이루려고 하지만, 어느새 스스로를 유용성에 지배된 현실의 노예로 전락시켜버렸다. 쓸모있음과 없음의 가치로 이분되어 왔던 산업자본주의의 가치이념은 점점 그 쓸모를 생산하는 자본의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로 천박하게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의 재능과 노력이 오로지 돈으로 환원되고 나아가 그 돈을 소유하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욕망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 결국 낙원이란 우리가 꿈꿔왔던 창세기복락원이나 아미타정토가 아닌 지금 21세기의 현실세계인 것이다.
시장경제가 탄생한 이후 세속의 인간은 돈으로부터의 구원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왔다. 어디에도 도무지 신은 보이지 않았고, 어쩌면 돈으로 신의 역할을 대리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여. 신의 화신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그래도 인간이 우월하다며 아우성을 쳐 봐야,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기능을 기계에 의탁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존재가치의 승부수를 내 주고 만 것이다. 심지어 인간으로부터 사람만들기를 가능하게 하는, 마음이라는 히든카드조차도 기계에게 내주려 하고 있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그 인간이 신을 죽이고,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고 그 기계가 인간을 죽일 것이다.
예술과 종교까지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는 가치관은 그것이 자본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자본주의와 물신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하모니를 이루는 돈의 낙원에서 구원이건 창작이건 모두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로 그 가치수준이 정해지고 말았다. 이도저도 결국은 돈이다. 구원도 돈이며, 행복도 돈이다. 사랑도 돈이고, 예술도 돈이다. 낙원의 비참한 현실은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돈의 화신들이 잉태한 것이다. 돈에 의한, 돈을 위한 구원(salvation for money)이란 어차피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돈지랄로 광기가 만연한 낙원의 평화란 놀랍도록 역설적이다. 인간은 돈이 제공하는 평화와 고요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절대적 타자임(absolute otherness)를 부정하고 폄훼한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자타간의 대립 속에 인간의 사랑을 얻기 위한 신들의 질투는 전횡한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돈으로 구매되는 신들의 낙원, 여기서 잉태되는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는 부질없는 욕망일 뿐이다. 우리가 알던 신은 진즉에 돈에 팔려 먼 곳으로 떠나갔다. 부재한 신의 자리는 탐욕과 권력에 환장하는 인간들이 괴물이 되어 들어앉았다. 수 백 명의 아이들이 산채로 심연의 검은 바닷속에 가라앉는 꼴을 무기력하게 생방송으로 지켜보면서도, 이를 일상다반사의 사건사고로 치부하며 잊으려는 괴물의 화신이 득실대는 것이 인간생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문도 모르고 숨통이 막혀진 아이들에게 신은 무엇이었을까? 구원의 화신이 나타나주기를 기대하며 올렸던 처절한 기도들은 허무로 돌아왔다. 차라리 기계가 인간을 대신했다면, 그래서 기계가 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죽음은 삶으로 바뀌었을까? 검은바다 한 가운데서, 아무도 신(GOD)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가 개(DOG)들은 보았다.
천사의 검은날개와도 같이 선악의 이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들은 사람을 인간으로,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우리시대의 낙원에는 괴물이 되려하는 사람과 사람이 되려하는 괴물들이 우글우글 섞여 살아간다. 에덴(Eden)이건 정토(淨土)건 샹그리라(Shangri–La)건, 낙원엔 신이 없다. 대신 돈과 인간과 기계가 있다. 신이 없는 곳에 믿음이 없고, 믿음이 없는 곳에 희망이 없으며, 희망 없는 곳에 구원과 환생에 대한 기대가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낙원은 이상향인 樂園이면서 현실세계인 “落園”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환생의 낙원(reincarnation paradise)이란, 말 그대로 윤회적 이상향이자, 현실로부터 도피한 신을 다시 불러오는 세계다.
종교와 예술에서 투사되는 회계와 구원, 전생과 윤회에 대한 신념들과 아트만에 대한 직관같은 것들은, 카르마(karma)가 부재한 기계에겐 아마도 영원히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이 아직은 건재하다. 아무리 세상이 테크놀로지에 미쳐 돌아간들 재생과 복원이 아닌, 부활과 환생에 대한 판타지는 기계에 대항하는 인간가치의 마지막 보루일지 모른다. 돈에 파묻혀 죽은 것 같은 신을 되살리는 것조차 미래의 인간에겐 가능할런지 모르지만, 불과 같은 신성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 그리고 내세의 극락정토에 대한 갈망, 천 개의 마루에 천 개의 해와 달이 뜨는 화신과 환생의 기대가 사라진 곳이란 결단코 사람의 낙원일 리 없다. 영원불멸에 대한 경외와 희망이 기계에게 있을 리가 없으니, 하물며 사람이 하는 기도와 예술에 대한 기대가 이것과 다를 수 있겠는가.
로터스/Ph.D_ art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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