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16-05-20 ~ 2016-06-18
전병구, 토모미 타카시오
무료
070-7570-3760
전병구 작가 인터뷰
진행: 그리고 갤러리
인터뷰 및 글: 김우혜경
날짜: 2016년 4월 20일
Q. 전병구라는 작가에 대해 먼저 알려 달라. 대학과 대학원 시간을 모두 포함하면 작업한 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됐겠다(…) 그림을 그리는 게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했다. 회화에 대한 관심은 그때부터 쭉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는 종종 생각해봤다. 그런 생각들이 최근에 와서 조금 변했는데, 이전에는 그림이 나를 비추는 ‘거울’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주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상이나 풍경, 장면 등을 회화로 옮기며 내가 보는 ‘세상(계)’에 관심이 많아졌다.
Q. ‘거울’과 ‘세상’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 둘러싸여 있는 주체나,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은 관점의 차이인 것 같다. 작가의 전 작품에서 관통하는 ‘일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디서나 흔히 마주치는 일상의 오브제가 있고, 풍경 위주의 작업 그리고 풍경 속의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까지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대상이나 풍경, 장면을 통해 현대사회의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고자 했다거나, 관람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대상을 선택했기보다는 내가 처한 환경이나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 대상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나에게 내재된 정서나 감정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베어 표상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밝은 장면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려놓고 보면 그렇게 썩 밝지 않았다. 주변에서 작품이 우울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었다. 대학원 재학 시절 한동안 그려놓았던 그림들을 모아놓고 보니 하나같이 인물들이 뒤돌아 있어 내 자신도 놀란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인물이 등지고 있다든지, 눈을 감는다든지, 뒤돌아 있기도 한 인물들은 대체로 조그맣기도 하지만, 그 인물을 통해 관람자와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거니와 관람자와 마주할 수 없는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무제>(2015)나 <터미널에 있는 남자>(2015)와 같은 인물 작업도 그렇다. 작품의 인물을 통해서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게 없다.
Q. 전작가의 작업은 원근법의 환영(illusion)을 뜻하는 재현의 작업도, 순수한 매체를 추구하는 평면성도 아니다. 작가가 추구하는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세계’ 안의 실재(real)를 전유하고자 하는 인식론적 접근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작가나 사조에 영향을 받은 게 있는가?
학부 때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Elizabeth Peyton 1965-)과 벨기에 작가 뤽 타이만스 (Luc Tuymans, 1958-)를 좋아했다. 그들의 훌륭함은 여러 맥락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내가 그들을 좋아했던 것은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사실적인 페인팅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었다. 무척 감각적이고 센티멘탈 해 보이는 그들의 페인팅에 깊게 매료되었다. 그들보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를 좋아한다. 마티스는 평생에 걸친 그의 회화의 형식적 실험과 회화에 대한 열정을 좋아하고, 모란디의 작품에서는 특유의 절제되고 고요한 것을 좋아한다. 작업과 동 떨어있지 않은 그의 일상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 롤 모델이기도 하다.
Q. 작품의 제작과정에서 디지털 매체를 통한 사진이나 스냅 이미지를 사용한다. 작품 이미지와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이미지의 차이점이랄까?
일단은 물질적으로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모니터에서 보는 픽셀과 만져지는 물감은 큰 차이가 있지 않나? 회화는 평소에는 무심결에 훑고 지나가게 되는 대상이나 장면이지만, 내가 그림으로서 낯설어지고 응시하게끔 되는 것이 디지털 이미지와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이미지는 내게 기초적이고 형식적인 에스키스 역할을 하고, 진행 되면서 부분적이고 자의적인 편집을 통해 재구성된다. 재구성되는 지점이란 원본 이미지와 다르게 장면들을 지우기도 하며, 작품과 거리감을 두려고 한다. 이렇게 대부분 작업과정을 거치지만, <어느 하녀의 일기>(2015)는 물질의 형식적인 실험에서 나온 작업이기도 하다.
Q. 작가가 세계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궁금하다. 화면 구성에 있어서 형식적으로 장면이나 감정을 소거(without)하려는 이유가 궁금하다.
화면 안에 공백이 관람자에게 말을 걸어준다고 생각한다. 모호하게 열어 둘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 회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Q. 모호하게 열어둔다는 지점에서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계속해서 작품과 관련해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형식과 내용적인 면 둘 다 더 절제되고 최소화되면 어떨까 싶은 게 지금의 생각이다. 회화의 기본적인 형식만을 가지고 대상이 드러나기 바라서 인데, 그렇다고 비구상의 작업을 한다는 건 아니다. 구상을 추상처럼 느끼게 하고 싶은 거다. 작가가 작업을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막상 그리는 과정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Family>(2008)는 나의 가정사와 관련이 있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모호하게 숨길 수 있을지 더 고민했었다.
작업 <어 맨 언 우먼>(2016)은 회화의 형식적인 요소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작품 중 하나며, <혼자만의 것>(2016)은 최근 작업실로 거처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마주한 풍경이다. 몇 날 며칠 동안 주차해 있는 차 한 대를 마주하는 경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하게 다가왔고 이를 즉흥적으로 제작했다. 이처럼 내가 속한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그에 따라서 소재가 자연스럽게 변화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작업의 대상이나 처한 환경보다는 나의 감성 상태에 따라 소소한 대상도 달라지는 것 같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형편이나 상황 같은 외부의 조건은 늘 바뀌고, 불안정하여서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한다. 그때마다 나름대로 적응하고 맞춰가며,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이 목표다. 조금 더 가벼워지되, 큰 울림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토모미 타카시오 작가 인터뷰
진행: 그리고 갤러리
인터뷰 및 글: 전진우
날짜: 2016년 5월 17일
Q. 언제쯤부터 어떤 계기로 풀과 돌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미술 전문대를 다니면서 가장 처음 그렸던 것이 돌이었어요. 스케치는 따로 하지 않고 드로잉을 그리듯이 종이 위에 직접 그리는 게 좋았거든요. '돌'이라는 물체를 그린다기보다는 돌의 형상을 그리고 그 다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색을 입히는 작업 방식을 좋아했어요. 그 후에 풀을 그렸는데 돌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의 스트로크와 색 만으로 그리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Q. 풀과 돌의 형상에 끌렸던 걸까요?
저는 실제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나 물체를 그리지 않고 그저 한눈에 ‘이게 무엇이다’ 라고 알 수 있는 형상을 그려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것이 돌이나 풀처럼 보이도록 말이죠. 풀을 그린다기보다는 풀의 이미지를 그린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사람들은 녹색을 보고 풀을 떠올리기도 하잖아요. 저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들이 흥미로워요.
Q. 타카시오작가님의 작가 노트 중에 '공터의 풀들이 점점 자라나 이 세상을 전부 뒤덮어 버리면 좋을텐데' 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고향에서 상경한 뒤 도쿄의 생활이 많이 외로웠던 걸까요?
도쿄에 온 뒤 혼자 산책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공터에 자라난 풀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외롭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고향인 토치기의 저의 집은 논과 밭 한가운데 있는데 도쿄와는 많이 다르죠. 그래서인지 쑥쑥 자라는 풀들을 보며 뭔가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했던 거 같아요.
Q. 타카시오작가님의 작가 노트와 풀 그림을 보고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실제로 어떠신가요?
딱히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제 그림을 보고 환경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죠. 하지만 그건 보는 사람의 자유라고 생각해요.오히려 제 그림을 보고 그저 좋은 기분이 들거나 '아, 이색이 참 좋다'라는 감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제 그림은 꽤 감각적인 그림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감각적으로 자유롭게 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봐주셨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지 않기 때문이죠.
Q. 평면이 아닌 다른 표현방식에도 관심이 있나요? 예를 들어 입체작업이나.
제가 손재주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입체작업을 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의 작업을 입체작업으로 만들어도 그다지 재미있을 거 같지도 않고요. 그 대신 제 그림을 사용한 출판물이나 판화를 만드는 게 저에게 맞는 거 같아요.
Q. 현재의 작업방식과 재료들은 언제부터 왜 사용하게 되었나요?
대학교 초반에는 마카와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렸었어요. 그러다가 너무 예쁜 녹색 아크릴 물감을 접하게 발견하고 아크릴물감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모리스 루이스라는 제가 좋아하는 추상화 작가가 있는데, 그의 아름다운 색 표현에도 영향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도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기가 되어 작업 하다 보니 현재의 작업에 도달한 거 같아요. 기술이 있다면 모리스 루이스나 고흐처럼 그릴 수 있겠지만 불가능 하기 때문에 내가 그릴 수 있는 한에서 예쁜 색을 사용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Q. 이번 전시 이후 어떤 작업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컨셉이나 계획이 있나요?
그림을 그릴 때는 컨셉이나 주제는 정하지 않고 '그냥' 그려요. 한번은 계속 풀만 그리던 때가 있었는데 멈추고 다른 모티브로 그리려고 해봤어요. 그런데 전혀 그림이 재미가 없었어요. 그 때 앞으로도 계속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그림을 그려나가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어떤 그림이 재미있는지 알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지금 껏 그렇게 그려왔기 때문이에요.
Q. 타카시오작가님에게 있어서 그림이란 '생활'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더 '작업(work)'에 가까운가요?
사실은 이번 전시를 위해 꽤 오랜만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면서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됐는데 '생활'보다는 '작업'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죠. 내가 살아가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별도의 시간을 내어 내 나름의 작업방식을 가지고 내 놓는 작업인 거 같아요.
Q. 타카시오작가님이 그림이라는 것을 그리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요?
아까 말했던 모리스 루이스의 그림처럼 다른 작품을 보지 않고서는 이런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들 자기 방식대로 자신이 봤던 이미지들을 뭉쳐서 표현한다고 봐요. 모리스 루이스의 그림을 가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그림 속의 색들을 나도 표현 해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죠. 누군가를 위해서 또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지는 않아요. 오히려 나를 위해서 그려요. 색들의 조합을 실험 해 보고 다음엔 이렇게 그려봐야지 하는 생각들이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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