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가 있고
그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곳이 있고
그곳에 그가 있고 그 안에 내가 있고..
거울을 든 내가 또 다른 거울을 마주 보았을 때.. 어린 시절 보았던 거울 속에 비친 그 광경은 충격적이고 신비스러웠고 눈앞에 펼쳐진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저곳은 어디인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거울 속을 한없이 보려 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다시 그 기억과 광경을 마주하게 된 건 2015년 가을이었다. 서로를 마주한 두 개의 거울과 그 공간 사이의 나와 그의 모습. 끝을 알 수 없이 무한대로 펼쳐진 거울 속은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 속에 들어가 앉아있는 수많은 나와 그의 모습에서 지금의 내가 본 것은 영원함이 아닐까. 충격적이고 신비로우며 끝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럽기도한 사랑이라고하는 운명의 어딘가 존재하는 영원함.
유-무-만물의 영원무한함을 자연을 통해 형상화하다.
자연은 낮과 밤 그리고 계절을 거듭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변화하는 모습은 하루, 일 년을 반복하며 몇 겁의 세월을 거듭해 왔는데,
이 무한 반복 변화하는 모습은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 영원 지속되는..
그렇게 변화하고 바뀌는 속성마저도 영속성을 가진다. 나는 그런 자연속에서 나와 내 사랑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생과 삶을 무한 이어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기존의 작품들은 자연을 통해 사랑에 대한 기억의 감성적인 측면을 나타내고자 했다. 자연의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하고 수직과 수평을 오가며 즉흥적, 충동적이고 우연성에 의지했던 성향도 보여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수직과 수평은 평면 안의 전체적인 구도라기보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의 표면적 구조라고 말하고싶다. 예를들어 산과 대나무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특징, 하늘과 바다, 대지와 같은 공간이 가진 수평적인 속성. 이렇게 각각 따로 존재할수밖에 없었던 기존 작품들의 수직과 수평이 서로의 한계에 충돌하지 않고 각자가 주가 되며 조화롭게 공존하기를 바랐던 마음은 거울과 관련된 먼 과거의 기억과 최근의 사건과 함께 작품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자연의 모습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동시에 영원 지속된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이라고 불리는 현재 또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기억이라 불리는 과거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와 영원, 과거와 현재..
나와 나의 사랑, 남성과 여성, 감성과 이성, 고향과 타향, 기쁨과 슬픔, 차가움과 뜨거움, 꿈과 사랑..
이들은 과거와 현재의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또 동시에 삶의 축이자 중심이 되어준 것들이다. 축이자 중심이라함은 하나의 점, 하나의 선과 같이 단 하나의 무엇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의 사고와 감성이 흐르는 방향은 어느 한 곳을 향하기보다는 서로 대조적일 수도 있고 유사할 수도 있는 두 요소의 경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분명한 선택과 결정의 부재가 초래하는 ‘무’ 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무’는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all’ 이기도 하다. 내가 머무르는 이 경계가 내가 향해야 할 그 곳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이원적인 분별을 초월하려는 성향이 작품에 반영되는듯하다.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함으로써 보게 된 새로운 이미지는 고정된 인식의 세계가 창조한 풍경의 부재이다. 이 고정된 인식의 세계가 창조한 풍경의 부재로부터 파생된 형태로 내 마음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또 이 ‘부재’ ‘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것은 내가 수직과 수평으로 상징한 대상들의 충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하였다.
바다에서 설산과 대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또 바다는 산을 받치고 있는 푸른 언덕이기도 하고, 금빛 모래는 바람의 무게일 수 있으며 드넓은 대지의 실체는 회화 속에서 또다시 산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고정된 인식의 세계가 창조한 풍경의 ‘부재’ ‘무’에 의해 내가 보고 싶어 하던 모든 것이 한 곳에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