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감 있는 야성과 변방의 힘
“ASIA YOUNG 36” - <아시아현대미술전 2016>
2016. 9. 2 ~ 11. 27
전북도립미술관
“지금 아시아는 끓는 물이다. 언젠가 솥뚜껑은 솟구칠 것이고, 갇혀 있던 변방의 힘이 솟아서 나올 것이다.”
지금 전북은 청년이 화두다. 전주한옥마을이 청년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그곳에 가면 천 년 왕조의 꿈을 찾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만날 수 있다. 한복을 차려입고 셀카를 찍으면서 추억을 만드는 청춘들도 생기를 보태고 있고, 요동치는 전북 청년들은 맛과 멋, 흥이 넘치는 전통 위에 구석구석에서 저마다 판을 벌이면서 한 뼘 더 성장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남쪽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모악산에 아시아 청년미술가들이 몰려온다. 이곳에서 비범한 미술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보자기처럼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열린 미술판을 깔고 있다. 아시아 현대미술을 전북에 불러들이고, 전북미술을 아시아로 나가게 하는 프로젝트. 역동적인 아시아 미술의 힘을 주체적인 시각에서 응집하고 환류하는 지도리를 실현하고자 한다.
제국주의 패권에 의해 대부분 식민으로서 근대를 맞이한 아시아는 아픔을 갖고 있다. 아직도 한국사회의 곳곳에 그 역사의 상처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 안의 사대주의, 서구인의 뒤틀린 오리엔탈리즘, 그로 인해 형성된 옥시덴탈리즘. 이런 것들을 우리 자신의 미술 언어로 추슬러서 극복하고, 예술적 가치를 여는 프레임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펼친 <아시아현대미술전 2015>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아시아의 문화적인 상황을 폭넓게 펼치고 규명함으로써 아시아 현대미술의 미학적 특질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지역 미술 활성화와 국공립미술관의 특성화 전략의 하나로도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올해는 치열하게 내달리는 아시아 청년미술가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려준다. 탈 서구적인 시각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미래를 가늠하는 국제전. 9월 2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열리는 “ASIA YOUNG 36” - <아시아현대미술전 2016>에서는 아시아 14개국 36명 청년미술가의 진솔하면서 치열한 예술적인 발언을 들을 수 있다. 정치적 혼란과 개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아시아. 저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현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예술이 지향하는 ‘가치’를 제시한다. 더러는 어둡고, 아프고, 불안하고, 우울한 상황을 생동감 있는 야성과 변방의 힘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은 이 전시를 위해 중국, 홍콩,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베트남, 미얀마 등을 탐방해서 청년미술가를 섭외했고, 그 외에 타이베이 아티스트빌리지,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양곤의 뉴 제로 아트 스페이스 등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얻기도 했다. 소위 서구의 시각에서는 변방으로 분류되는 소수의 청년미술가를 모은 것. 그래서 총 14개국에서 외국 미술가 21명과 한국 미술가 15명이 참여했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그라피티, 퍼포먼스 등을 망라한 것이다.
9월 2일, 개막식에서는 힙합 공연과 중국의 루양(Lu Yang)은 무빙 갓(Moving God) 퍼포먼스를, 몽골의 엥흐볼드 토그미드시레브(Enkhbold Togmidshiirev)는 게르 설치 작품에 머물면서 퍼포먼스를, 한국의 유목연은 관람객에게 잔칫날에 걸맞은 국수를 끓여서 대접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중국의 넛 브러더(Nut Brother)는 100일 동안, 베이징 거리를 걸으면서 진공청소기로 공기 중의 먼지를 수집해서, 먼지로 벽돌을 만들고, 그것으로 공사현장에서 벽을 쌓은 개념적인 퍼포먼스 기록을 상영한다.
베트남의 마인 훙 응우옌(Manh Hung Nguyen)은 ‘바리케이드’로 폭력적인 전쟁의 상흔에 시달리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상처를 보여 준다. 전쟁 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는 한 아파트에 두세 가정이 같이 살기 위해 공간을 나눈다. 한 가정이 욕실을 가지면, 다른 가정은 부엌을 쓰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비좁은 주거 환경. 식량, 물 등 모든 것이 궁핍한 상황에서 케이지를 이용해 거실을 늘리고, 생계를 위해 가축과 가금류를 아파트 안에서 키우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아파트 건물과 바리케이드의 이미지를 하나의 설치물에 결합해서 표현했다.
미얀마의 응게 레이(Nge Lay)는 ‘죽은 자기의 모습 관찰하기’로 죽음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과거에는 화산 폭발, 지진, 혹한, 산불 등 자연재해가 잦았지만, 현재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일상의 위협이고, 더 큰 재해를 낳는다. 미술가는 배경이 조금씩 다른 곳에서 자신을 죽은 사람처럼 설정해서 촬영했다. 반복되는 작업은 죽음에 익숙해지기 위함이고, 이를 통해 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죽음 자체를 모호하게 생각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에게나 살아갈 날이 점점 소진되어 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박재연은 ‘Flexible mass’로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명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이, 흐르는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무에서 시작한 감정이 꿈틀거리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식물이 자라고, 죽고, 사라지는 변화를 인간 감정으로 이입해서 구현하고 있다. 두꺼운 철판을 자르고, 불에 달궈서 두드리고, 용접하고, 재조립하는 힘겨운 작업을 통해 자유로운 드로잉을 구축하고 있다. 안과 밖이 여실히 드러나는 선재 조각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채로운 변화를 생산해 낸다.
인도네시아의 루디 아체 다르마한(Rudy Atjeh Dharmawan)은 지방 출신으로 이슬람의 계율을 따르는 남자로서 족자카르타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종교적인 책임감과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다. 만물은 신 앞에 평등하고, 차이가 있다면 빈부의 차이만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신의 본질과 다르게 종교적 도그마가 약육강식의 정글처럼 지배논리로 작용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동물(호랑이, 독수리, 사슴, 뱀 등)의 기호를 뚫새김해서 뒤엉키게 설치함으로써 공생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는 강한 자와 전능 해 보이는 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연애편지다.
전시와 더불어 개막 다음 날부터 4박 5일간 <아시아 청년 국제교류 워크숍>을 하면서 아시아 속에 있는 사회문제에서 파생되는 예술적인 문제들을 들추고 드러낸다. 장석원 (전북도립미술관장)은 ‘아시아현대미술과 아시아 네트워크’, 아예코(Aye ko, 미얀마, 뉴제로 아트 스페이스 관장)는 ‘미얀마의 현대미술과 정치적 상황’, 왕둥(Wang Dong, 중국, 허샤닝미술관 학예관)은 ‘중국의 현대 사회와 실험미술’, 시타 막피라(Sita Magfira, 인도네시아, 독립 큐레이터)는 ‘족자카르타비엔날레와 인도네시아 현대미술’, 짠 타인 하(Tran Thanh Ha, 베트남, 디아 프로젝트 관장)는 ‘베트남의 현대미술 상황’ 등을 발제한다.
워크숍을 통해 미술가와 미술계 주요 인사 20여 명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발표하고, 자국의 현대미술을 알리고, 그에 따른 질의와 토론이 이어진다. 서로 교류하고 공감하면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한국미술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와 담론을 제시할 것이다. 국제전과 워크숍을 통해 전북도립미술관이 아시아 현대미술의 허브로 작용할 것을 기대한다.
가을의 길목에서 전북도립미술관을 찾아 아시아 청년미술가들의 투박하고, 신선하고, 진정성 있는 현대미술을 즐겨 보시라. 다양한 장르와 경계를 가로 지르는 거칠고 신선한 예술적인 행위 속에서 참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벌여 놓은 판에 흥을 더하는 건 사람이다.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이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