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7-02-01 ~ 2017-02-18
신철균
02.730.3533
신철균, 산운, 63X36cm
필묵과 인생 사이를 넘나드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세계
검은 그림자가 강을 건너올 때면 여전히 나는 산으로 눈을 돌린다. 어릴 때의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는 탓이다. 높은 산 맑은 물 사이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저물녘의 이미지는 늘 검은 산 그림자가 강물에 어리는 모습으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어디선가 까마귀 몇 마리가 하늘을 가로 질러가면 뒷산 언덕에 놓아주었던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풍경이 내 삶에 큰 그늘을 드리우면서 지금도 저물녘 산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된 것이다. 그러니 검은 그림자의 거대하고 막막한, 어쩌면 죽음과도 같은 아득함은 고향의 이미지이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드러내는 중요한 매체다. 저물녘의 검은 산을 좋아하는 버릇은 아마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와 경계 사이를 떠돌면서 살아왔던 내 삶의 이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신철균 교수의 산운(山韻) 시리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의 검은 산 그림자를 경험했다. 내 미의식의 근원에 자리한 그림자는, 그것이 접속하는 맥락에 따라 숭고와 우아 사이를 유영하면서 새로운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때는 큰 그림 앞에서 한참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검은 산을 표현한 속으로 힘찬 붓의 기운이 느껴질 때도 있었고, 마음 깊이 침잠하는 절대고요의 세계가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 삶의 맥락에 따라 신철균 교수의 그림은 다양한 모습과 의미로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종이와 먹물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세계를 해명하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경계와 반(反)경계의 미학을 통해 그 세계를 엿보곤 한다. 먹물을 찍어 화선지 위에 선을 그으면 흰색과 검은색의 선명한 대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선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종이의 결을 따라 스미는 먹의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된 것도 아니고 만들려고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움의 세계다.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의 절묘한 이중주가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곳에 작가의 기운이 더해지자 가슴을 울리는 거대한 산 그림자가 문득 눈앞에 우뚝 선다.
사혁(謝赫)이 그림의 여섯 가지 법을 이야기했을 때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첫 번째로 들었다. 우주의 호흡을 표현하기 위해 시작된 ‘기(氣)’와 언어 저편의 울림을 말하는 ‘운(韻)’이 살아 꿈틀거리는 순간을 그렇게 말한 것이라면, 적공(積功)과 깨달음의 무수한 단계를 겪어야 비로소 한 발 재겨 디딜 수 있는 경지가 바로 기운생동의 세계일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오(妙悟)의 세계가 그 안에 담겨있어서 기운생동의 의미를 풀어내기는 어렵지만, 우주에 대한 작가의 감흥이 그림을 통해 감상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공명(共鳴)과 감동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리라. 명나라 도종의(陶宗儀)도 기운생동의 경지에서 나온 그림을 최고의 단계인 신품(神品)이라고 분류한 바 있다.
‘운(韻)’은 단순한 기교에서 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어울림에서 오는 효과다. 서로 다른 사물들이 만났는데도 절묘하게 어울려서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발현되는 울림이 바로 ‘운’이다. 서로 다른 소재,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경계들이 어울려서 만드는 지취(志趣)가 바로 ‘운’이다.
신철균 교수의 그림에는 분명히 자신만의 ‘운(韻)’이 스며있다. 검은 산 그림자 앞에서 깊은 울림을 받은 뒤 그러한 감동을 찾아 많은 그림을 만났지만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의 그림자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고, 잊혀 졌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으며, 삶의 굽이마다 문득 삶의 감흥을 느끼게 하는 묘한 불꽃을 던지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필묵의 저편에 스며있는 기운(‘氣運’이 아니라 ‘氣韻’이다!)이 내 지친 삶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명확하게 경계를 나누지 않는 붓의 울림이 그런 힘을 준 것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진한 먹의 흐름이 종이에 스미면서 만들어내는 절묘한 ‘경계-너머’가 만드는 짙은 그림자, 그것이 만드는 여백들이 신철균 교수의 그림에서 발견하는 내 나름의 예술적 즐거움이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인문학도의 눈에, 그의 그림은 생동하는 기운을 품고 있는 산 그림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무수한 경계를 넘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의 그림은 그 숙명을 부드럽고 조화롭게 넘어서는 필묵 사이로 자연스러움을 배우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김풍기(강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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