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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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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문화공간 양 기획자)

신을 변호하던 시대가 있었다. 선한 신이 만든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다양한 논리로 신을 옹호했다. 이제 신의 죽음은 선포되었고 따라서 신을 변호하는 일이 더는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정현영은 여전히 신을 변호한다. 색으로 가득 찬 화면 속에서 우리는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신의 찬란함을 본다. 동시에 정현영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한낱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을 위해서도 변호한다. 선(線)의 힘으로 꿈틀대는 화면 속에는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정현영은 이번 전시에서 우리 시대를 위한 성화/추상화와 세속화/드로잉을 동시에 보여준다.

추상화에 매진해 온 정현영이 양구에서 드로잉을 겸하여 작업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의 작품 변화과정을 살펴볼 때 필연적인 결과다. 자연에서 느낀 생명력, 영원성, 환희 등의 감정을 주로 표현했던 작가는 제주도에 살면서 집어등(集魚燈), 밭담, 테왁 등 노동에 필요한 사물을 소재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먼 바다에서 비춰오는 집어등이 작은 계기가 되었다. 노동과 관련된 사물을 작품의 소재로 삼게 되면서 작가의 시선은 사람에게로 이끌렸으나 제주도에서는 사람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양구로 오면서 우연히 그리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꼈고, 그리는 행위 뒤에 사람, 집, 풍경이 자연스럽게 남았다.

정현영은 개인전마다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작가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심은 매번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고 기법을 고민하게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시도와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지금부터 변화과정을 중심으로 정현영의 작품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자연,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

자연 특별히 나무와 숲에 정현영은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한 관심은 작품과 작품의 제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특히 자기 생각을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작가이기에 작품의 제목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잘 드러난다. 
초기 작업에서의 자연은 색을 연구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2004년도에 그려진 작품 제목인 <붉은 멈춤>, <그림자의 빛> 등에서 우리는 작가가 자연 그 자체보다 자연에 비친 색 또는 빛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점차 작가는 자연의 표면이 아닌 그 자체를, 더 나아가 자연의 본성에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2007년 작품의 제목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담긴 하늘>, <깊은 파도> 등의 제목에서 자연을 자연 자체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확인된다. 또한 <서 있는 땅>, <생명의 교통>, <파도의 끝으로부터>와 같은 제목은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의 의지를 연상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2009년 작업까지 이러한 시각이 유지되었고, 인생의 고난 속에 꽃피는 희망, 환희, 생명, 영원 등의 개념을 작가는 자연의 모습 속에서 찾았다.
2013년에 그려진 <어선> 연작은 소품이지만 ‘어선’ 즉 인간이 노동하는 공간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제주도의 드넓은 바다에서 작가가 본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었다. 이후로도 고단하지만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어선’을 주제로 한 거로마을 당충대 벽화 <삶의 빛>을 제작하였고, 2014년 제작한 <진동하는 바다>에 ‘테왁’에서 온 이미지를 담았으며, 화북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든 벽화 <밭담, 빛을 머금다>는 ‘밭담’을 주제로 하였다. 
양구에서의 생활은 자연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철조망이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고 있지만, 여전히 이어져 있는 땅과 산맥은 분단의 역사와 현실을 더욱 가슴에 와 닿게 한다.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이라고 불리는 산의 능선은 이제 더는 그냥 자연이 아니다. 환희와 생명으로 가득 찬 자연도 아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자연이다. 그래서 양구의 산을 표현한 <단장의 능선>, <산, 붉게 드러내다> 등은 자연에 새겨져 있는 역사를 상기시키고,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2. 색, 노동의 집적이 만들어낸 무한의 깊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30번 이상의 미세한 붓질로 1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일화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4년에 걸쳐 그리느라 목이 삐뚤어졌다. 개념미술이 등장한 이후 이러한 작가의 노동은 더는 작품 제작의 주요 덕목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자동차 도색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는 제프 쿤스의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보다 경주용 자동차가 더 아름답다”는 미래주의 선언문이 요즘 시대에 더 적절해 보인다. 또한,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생산될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자본주의 시대에 요구되는 작품이다.

정현영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개의치 않는다. 작품 속 작은 점 하나가 지금과 같은 색을 얻기 위해서는 20번 이상의 붓질이 필요하다. 수십 번의 붓질에서 한 번, 그다음에 이어지는 또 한 번의 붓질은 무의미해 보인다. 눈으로 봤을 때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의미해 보이는 붓질이 쌓여 결국 색에 힘을 부여하고, 평면으로 된 화면에 깊이를 만들어낸다. 특히 투명한 물감층이 만드는 깊이감은 작은 화면에서도 무한을 느끼게 한다. 즉 작품에 투여되는 막대한 노동의 양은 작품의 물질성을 정신성으로 바꾸어놓는다. <땅굴, 막힘 너머>, <산맥, 생(生)을 피우다> 앞에서 관람객이 멈춰서 움직일 줄 모르는 이유는 10년 이상 고수해온 이 고단한 작업 방식 때문이다.

<산맥, 힘을 품다>, <산맥, 연결됨>, <산맥, 뜨겁게 꿈틀대다>에서는 양구의 산맥을 표현하기 위해 먹선이 강조되었다. 색은 먹색과 어우러지게 되면서 점차 원색으로 바뀌었다. <산맥, 힘을 품다>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중에 칠한 색을 구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처음 색감과 차이가 난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산맥, 연결됨>을 <산맥, 힘을 품다>와 <산맥, 뜨겁게 꿈틀대다>와 비교해보면 더 분명한 색감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검은 먹이 색과 색을 중재해 줌으로써 원색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강한 먹색의 힘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도 원색은 필요했다. 

원색의 사용으로 작품은 빨강, 파랑, 노랑에 검은 먹색과 화면의 흰 여백이 주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색의 구성은 우리나라 관람객들에게 오방색으로 이해되고, 작품이 한국의 감성을 지녔다고 여기게 만든다. 한지와 먹의 사용 그리고 넓은 여백은 한국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색채만 놓고 보면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와도 유사하다. 특히 먹선과 먹선 사이에 색을 채워가는 색채구성 방식은 검은 틀 안에 색유리를 넣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에 바탕을 둔 오방색과 천국을 상징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정현영의 작품에서 신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한한 깊이감과 관념화된 색의 사용이 정현영의 작품을 이 시대의 종교화로 만든다.


3. 대비, 하나가 되기 위한 과정

푸른 바다 위의 붉은 해, 떨어지는 폭포와 솟구치는 물방울, 투명한 수면 위의 불투명한 나뭇잎, 삶과 죽음 등 자연의 모습 속에서 상반되는 요소의 대비는 쉽게 발견된다. 자연에서 이러한 대비는 생명의 역동성을 만든다. 대비는 정현영의 작품에서 형식과 내용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빨강과 파랑, 상승과 하강, 투명과 불투명, 고난과 희망과 같은 대비의 연속으로 화면은 구성된다. 자연에서와같이 강한 생명력, 역동성, 운동성을 위해 정현영은 대비를 사용한다. <파도의 끝으로부터>에서도 작가는 하단의 붉은 색과 푸른 색 그리고 하단 작은 점들의 상승하는 힘과 상단 큰 점들의 하강하는 힘을 충돌시킴으로써 작품이 강렬함을 갖도록 만든다. 

색채 대비는 거의 모든 작품에 적용되었다. 보색을 병치시키는 화면의 구성 방식은 신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점묘법과 유사하다. 실제로 정현영은 신인상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정현영과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보색을 사용하는 이유가 다르다. 정현영이 작품에 보색을 사용하는 이유는 각각의 색이 갖는 고유성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정현영의 관심은 색과 색의 만남이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색채연구에 있었다. 반면 신인상주의의 점묘법은 서로 다른 두 색이 간섭하여 하나로 보이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나되기>는 서로 다른 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된 비자림의 연리목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연리목은 어느 한 나무의 희생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자신의 뿌리와 가지를 갖고 있지만 하나다. 즉 하나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서로 다른 두 개체가 우선 나란히 있는 것이다.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색이 서로 자신의 색을 잃어버리지 않고 나란히 있는 것은 대립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대비되는 두 요소가 각자의 특성을 잃지 않고 공존하듯 정현영의 작품에서 충돌하는 두 요소가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것은 대립을 넘어선 함께함이다. 


4. 콜라주, 가능성으로 열린 세계

종이 콜라주를 이용한 설치 작업은 2004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였다. 2010년 영은미술관 개인전에서 종이 콜라주가 다시 선보였으며, 2014년부터는 MCM 매장에 전시되었던 <하나되기>를 시작으로 콜라주가 작업의 주된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 콜라주 설치 작업은 채색된 종이와 잡지를 찢어서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하나되기>부터는 한지에 먹으로 드로잉을 하고, 드로잉의 일부분을 찢고 다시 재조합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든 후, 먹의 모양에 따라 채색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채색에서 우연의 요소를 작업에 받아들임으로써 철저한 논리에 따라 색을 배치해 왔던 기존의 작업방식은 일부 깨졌다. 먹으로 드로잉을 할 때 우연히 생기는 번짐의 효과가 색의 형태와 크기를 크게 좌우한다. 따라서 색은 먹선, 여백 등 화면의 다른 요소들과도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제주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진동하는 바다>와 같은 자유 형태의 입체설치물도 콜라주 기법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콜라주 기법은 화면 구성과 형태에 이와 같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완성된 작품에 콜라주 기법이 드러나지 않았다. 색으로 메워지거나, 한지에 한지를 결합하기 때문에 이음새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콜라주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은 최근에야 완성되었다. 채색 없이 먹 드로잉 콜라주만으로 만들어진 세 점의 설치작품 <산맥, 하나로 지어지다>, <산맥, 하나로 굳건하다>, <산맥, 하나로 이어지다>는 무채색이고 한지가 연결된 방향에 따라 입체감이 생기도록 제작되어 종이들이 이어진 방식이 쉽게 파악된다. 

먹 드로잉을 이용한 콜라주 기법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최소한 네 단계 이상의 작업과정이 필요하고 배접도 최소한 네 번 이상은 해야 한다. 색을 쌓아 올릴 때처럼 콜라주의 고된 노동의 과정이 어쩌면 무의미해 보인다. 콜라주의 과정 없이도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콜라주는 노동의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를 고민하게 함으로써 작가에게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시도된 물감 뿌리기 기법 또한 콜라주 작업으로 인해 도입되었다. 물감 뿌리기는 붓으로 그리는 점이 어울리지 않는 콜라주 된 화면을 위한 시도였다. 뿌려진 점은 콜라주와 잘 어울리면서도 화면의 응집력과 완결성을 높였다. 콜라주는 정현영에게 가능성으로 열린 세계 그 자체다. 


5. 드로잉, 일상을 향한 시선

응집하는 힘을 갖는 점이 선으로 펼쳐지면서 양구 사람들의 일상이 드러났다. 추상에 묻혀있던 사람, 풍경, 건물 등이 갖는 고유의 특성들이 선의 흐름과 함께 하나하나 살아났다. 드로잉이 정현영에게 새로운 작업방식은 아니다. 정현영은 항상 자연을 충실하게 사생한 후 이를 바탕으로 추상화를 그렸다. 또한, 추상화를 위한 드로잉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드로잉을 그려왔다. 다만 드로잉이 추상화로 환원되는 과정이 있었기에 드로잉만의 이야기는 갖지 못했다. 

추상화를 향한 작가의 사유 속에는 한 사람의 구체적인 일상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이 존재했다. <불, 물에 타오르다>에서는 험한 세상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람들의 희망을 물에서 타오르는 불로 형상화했고, <삶의 빛>에서는 바다 위 고단한 삶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지를 집어등으로 표현했다. 이와 달리 드로잉에는 모두의 것으로 수렴되지 않는 각 사람의 소소한 일상을 담았다. 그래서 양구에서 일기를 적듯 매일매일 그려간 드로잉에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 있다. 드로잉 속 사람들은 그저 군인, 농부, 노동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개인 그래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개인이다.

정현영의 드로잉은 기록의 성격을 갖기에 작품에는 남한 최북단에 있는 양구 지역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양구는 두 개의 사단이 있어 군인의 수가 민간인보다 많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군인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드로잉의 1/3 정도는 군인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축제를 즐기고, 자원봉사로 학교 벽화를 그리며, 야외 활동으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사건·사고로 등장하는 군인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집을 짓는 과정 하나하나를 사람이 하는 일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밭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의 일화를 담고, 미술관 사람들의 휴식을 그렸다. 색을 수십 번 쌓아올리듯 드로잉을 쌓아간다. 이것은 각 사람의 순간을 쌓는 일이고 시간을 쌓는 일이다. 순간과 시간의 축적은 언젠가 사람들의 역사가 될 것이다.

개인전을 열 때마다 변화를 보여주었던 정현영이지만 이번 개인전은 어느 때보다 다양한 연구와 실험의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것처럼 작품 형식의 측면에서는 콜라주 기법을 부각한 작업과 무채색의 작품이 선보였고, 뿌리기 기법이 새롭게 등장했다. 내용의 측면에서는 일상의 기록이 드로잉으로 전시되었다. 6∙25 당시 격전지이기도 한 양구는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양구의 역사성은 계속 작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총알이 뚫고 지나간 녹슨 철모를 받아 작업실에 두고 어떻게 작업해야 할지 작가는 고민 중이다. 정현영의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보는 일이 우리의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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