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7-03-15 ~ 2017-03-20
김한 金漢
무료
02-724-6322
실제로 1980년대 초부터 명민한 미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소묘적인 선을 구사함으로써 독자적인 조형언어 및 어법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후 그의 작업은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선이 중심이 되어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게 된다. 그의 선은 소묘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솔직하고 활기가 넘치며 자유롭다. 형태를 왜곡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소묘적인 선이 가지고 있는 결정력은 그의 작품 전반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조형적인 언어는 선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선은 발랄하면서도 경쾌하여 생동감이 넘치지만 형태를 만들어가고 내용을 담는 과정에서 애조를 띠게 된다. 그것은 실향의 풍경, 망향의 정이 그림의 정서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소묘적인 선을 중심적인 조형언어로 설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망향의 정이 그림의 정서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소묘적인 선을 중심적인 조형언어로 설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소묘가 명쾌하지 못해 부실하면 그림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나약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선은 대작에서도 그 존재감이 결코 반감하지 않는다. 연필을 사용하는 소묘의 선이 이처럼 그림의 전체를 지배하고 장악한다는 것은 소묘력이 그만큼 견고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기에다 형태의 윤곽에 부여된 선은 세련미가 넘친다. 어떤 완고한 형식적인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 속에서도 결코 어설프게 보이지 않는다. 소묘의 선이란 반복적인 훈련 및 타고난 재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만큼 감각적인 선이 있는데, 그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 선은 단지 형태를 찾아가는 데 급급하지 않다. 오히려 구체적인 형태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선은 자유롭고 그러기에 생동감이 넘친다. 그의 작업은 선으로 시작하여 선으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로 선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연필 소묘에서 쓰이는 선을 그처럼 최종적인 형태미를 결정하는 데 곧바로 쓰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대담하게 소묘의 선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순수한 선묘가 주는 미적 쾌감이 크다. 그 선은 내용을 이루는 고향의 추억 그 단편들을 통해 독자적인 형식미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소묘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고향의 이미지를 되살리고 또 조합하는데 기민하게 대응한다. 그의 그림에서 느끼는, 작가의 감정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내는 솔직한 느낌은 소묘적인 선과 무관하지 않다. 거기에는 가식이나 억지가 없다. 감정의 흐름을 여과 없이 받아쓰는 까닭이다.
이렇듯이 소묘를 기반으로 형태를 왜곡 변형하여 간결하면서도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구성적인 화면은 새삼 선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여기에다가 고향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는 짙푸른 동해의 물빛을 가미하고, 또 고향풍경과 고향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얘기를 덧붙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온통 한국전쟁 이전의 시간선상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의 추억이란 그 시간대에 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품에 담겨진 내용은 작가적인 상상력의 산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두가 그 자신의 체험과 결부된 것들이다.
2008.1 신 항 섭 / 미술평론가 -일부 발췌-
실향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다. 화가 중에서도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월남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말고는 그처럼 집요하게 향수로 일관하는 화가는 다시없다. 그림의 제재가 온통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그래서일까. 제재 자체만으로도 그의 작품세계는 유별나다. 그 유별난 제재에 일생을 집착함으로써 그로부터 독자적인 형식 하나를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로서는 기대하지 않은 보상인 셈이다. 예술이란 이런 것인지 모른다.
서두에 밝혔듯이 그의 그림은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치고 또 어떠한 결과에 이르렀던지 분단이 만들어낸 결과이자 결실이다. 가고 싶을 때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고향을 사랑한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서는 마침내 진력이 날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갈 수 없는 땅이 되었기에 그토록 목메어 부르고 불러도 매양 그리운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볼 때의 그의 조형세계의 원천은 분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의 미학이란 반드시 직접적인 전쟁과 관련한 스토리를 전제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세계가 보여주고 있듯이 분단이라는 현실은 넓은 시각에서 볼 때 창작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적인 시각 또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그 제재 및 표현방법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물 및 상황을 받아들이는 미적 감수성에도 차이가 있고 미의식과 사상에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를 재해석하여 예술적인 표현으로 승화시키는가의 문제는 순전히 작가 개인적인 취향이나 사상에 맡겨질 일이다.
그의 그림에 민족이라든가 국가라는 거창한 관점은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과 관련한 조그만 세상, 즉 바닷가 마을에 대한 소회라는 소박한 시각이 담겨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의 추억을 매개로 하여 우리 모두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정서를 일깨워 주는 힘은 아주 강렬하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을 되살려주는 마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그림은 미적 삼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의 감정을 흔드는 힘이 있다. 그가 그림 속에 농축시키고 있는 고향의 그리움이란 체험적인 진실의 고백인 까닭이다. 그는 일체의 형식적인 기교를 버렸다. 오직 순수한 시각으로 고향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좀 더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생각뿐이었다.
그가 조형적인 개별성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 수 없는 고향은 그에게 간구의 대상이 되었다. 진정 간절히 원하는 대상이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 수많은 위대한 문학을 탄생시켰듯이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애상의 미학이라는 그의 그림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가 이룩한 성과는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김 한의 개별적인 감수성 및 사유의 공간에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반세기 동안이나 키워온 고향의 그리움과 속죄의 감정은 누구와도 공유될 수 없는 것이다.
화집에서 -신항섭 (미술 평론가) -일부 발췌-
김한화백은 소묘를 많이 그리셨습니다. 남기신 작품 중에도 유화의 바탕이 되는 소묘르 많이 남기 셨습니다. 드로잉 북으로 보관되어 있는 소묘작품은 분리할 수 없기에 낱장으로 보관되어있는 소묘 중에서 유화작품의 바탕이 된 작품 22점을 유화와 함께 전시합니다. 또한 생전의 마지막 작품-2011년작 포구의 여인-을 포함한 미공개작 20여점도 전시합니다. 그리고 생전에 출판하신 화문집 중에서 김한화백의 글과 시에 연관된 작품 5점과 생전에 늘 곁에 두셨던 작품-1988년작 모자-을 이번 회고전 때 소묘와 함께 전시합니다. (김 기주)
김 한 (金 漢)
1931~2013.6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천동 출생
1955~57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수학
수상
1966 제5회 신인예술상 미술부문 장려상
1981 벨기에 국제미술전 스페인 동상
1995 제7회 이중섭미술상 (조선일보사 제정)
공모전
1957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1959 제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1962 제1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1963 제1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1966 제1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개인전및 초대전
1979 제1회 희화랑
1981 제2회 관훈 미술관
1983 제3회 신세계 미술관
1985 제4회 동방프라자 미술관
1987 제5회 조선화랑
1991 제6회 정송갤러리 초대전
1993 제7회 갤러리아 아트홀 (정송갤러리 초대전)
1996 제8회 조선일보미술관 (조선일보사초대전,이중섭미술상수상기념전)
2001 제9회 본화랑 초대전
2002 제10회 인사아트센터 (명동화랑 초대전)
2005 제11회 밀알미술관 초대전
2006 제12회 토포하우스 초대전
2007 제13회 갤러리서종 초대전
2008 제14회 밀알미술관 초대전
2008 제15회 진부령미술관 초대전
2013 신한은행PB센터 초대전(신한PWM 서울파이낸스센터)
2014 1회 유작전(겸재정선기념관)
단체전
1980 아세아현대미술전(일본동경도미술관)
상형전(롯데화랑)
아세아미술교우회전(도쿄, 서울)
1981 아세아미술교우회전
상형전
일본국제미술협회전(도쿄)
1981 벨기에국제미술전(브뤼셀)
7인초대미술전(문화화랑)
1982 아세아미술교우회전
상형전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건립기금조성전 (선화랑)
한국문학100호 기념 미술도예전초대전(롯데화랑)
1983 아세아미술교우회전(동경, 서울)
상형전
한일현대작가초대전(미도파화랑)
청소년회관 건립기금조성전(세종문화회관)
월간 한국문학 100호기념 미술도예전(롯데화랑)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I.P.U 서울총회기념 대한민국국회초대전 (국회의사당)
제4회 200인 초대한국현대미술대전초대전(세종문회회관)
국회개원 35주년기념초대전(국회의사당)
1984 아세아미술교우회전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상형전
1985 KBS-TV 미술관 초대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아세아미술교우회전
예총회관건립기금조성미술도예초대전(세종문화회관)
1986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전(파리)
전경련창립기념전(전경련회관)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7 중견작가5인초대전(현아트홀)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8 서울올림픽개최기념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90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 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전(예술의 전당)
현대작가10인초대전(중앙문화화랑)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독서신문초대전
갤러리예향초대전(광주)
1991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92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I.A.A 서울기념초대전(예술의전당)
구상현대작가초대전(정송갤러리)
1993 화랑미술제초대(정송갤러리)
구상현대작가초대전(정송갤러리)
1995 DMG특별전“가고싶다 보고싶다 그곳에” 초대전(선화랑)
1995 광복50주년기념초대전(대구)
장안회전(조선화랑)
미술의 해 중견작가초대전(인천예술회관)
1996 이중섭미술상수상 기념전(조선일보미술관)
한국현대미술 현재와 미래전(홍익대학교현대미술관)
1997 원로작가초대전(서울시립미술관)
1999 코리안평화미술전(일본 미술세계화랑 주최)
이중섭미술상수상작가전-10년의 발자취(조선일보미술관)
2000 세계평화미술대전(예술의 전당미술관)
아세아평화미술전(일본 미술세계화랑 주최)
2001 이상적인 연인상전(명동화랑)
살롱도톤느 특별전(파리)
21세기 한국미술의 여정-100인초대전(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화랑미술제(본화랑)
2002 컬렉션을 위한 제안전(가진화랑)
김 한 화집 발간 기념전(인사아트센터, 명동화랑)
2004 한국-중국-프랑스 교류전(북경)
세계평화미술대전(상해)
MANIF 구상작가 초대전(예술의 전당)
2005 현대구상작가 초대전(서울시립미술관)
2007 코엑스아트페어
2008 이중섭미술상 20년의 발자취(조선일보미술관)
소장
조선일보사
고려대학교 박물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이중섭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이건산업(주)
겸재정선미술관
밀알미술관
기당 미술관
진부령미술관
독립기념관
저서
화문집 “엉겅퀴 꽃” (2002년 4월 30일)
“나의 세월은...” (2002년 8월 1일)
“고향친구” (2008년 9월)
기타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이중섭미술상창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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