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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섭 : running railroad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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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소개


 기억공작소Ⅲ『홍명섭』展

‘기억공작소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생’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예술이 한 인간의 삶과 동화되어 생명의 생생한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또한 그 기억의 보고寶庫이며, 지속적으로 그 기억을 새롭게 공작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이 탄생한 환경의 오래된 가치를 근원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재생과 공작의 실천을 통하여 환경으로서 다시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살려 내려는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멈추어 돌이켜보고 기억하라! 둘러앉아 함께 생각을 모아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금껏 우리 자신들에 대해 가졌던 전망 중에서 가장 거창한 전망의 가장 위대한 해석과 그 또 다른 가능성의 기억을 공작하라! 

  

그러고 나서, 그런 전망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가치와 개념들을 잡아서 그것들을 미래의 기억을 위해 제시할 것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를 공작한다.

 

「불화의 유머 - shadowless, artless, mindless」

“본다는 것은 시지각視知覺 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身體的 행위行爲이다. 공간에 노출되거나 포획된 우리 몸이 느끼는 감각이고 몸의 경험이다. 이렇게 우리의 신체를 처단하는 드로잉 속을 배회한다는 것은 우리 의식의 환각적이고 몽상적인 곡예이기도 하다.”라는 홍명섭 작가의 명확한 설명을 접하기 전까지, 우리는 대개 뭔가를 눈으로 보고 대상의 형태적 특징이나 존재의 가치, 의미 등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의 ‘러닝 레일로드’ 전시 또한 이제까지처럼 난해한 개념과 정신의 예술적 승화와 진지한 미학으로 둘러싸인 어렵고 특별한 세계의 무엇으로만 파악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작가의 제안적 설명에서처럼 본다는 것의 신체적 행위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정신과 신체’, ‘시간과 공간’ 관계의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매개적 수행이며, 그 자체로 살아있는 작업의 태도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서, 눈높이 정도에서 무심하게 시작되는 길이 27m정도, 폭 5㎝ 정도의 검정색 종이테이프 2가닥을 평행으로 이어 붙여 칼로 그려내는 철길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두 개 선의 철길로 출발하여 흰색 전시실 4벽면을 수평으로 횡단하면서 중간 벽면쯤에서 하나의 철길로 합쳐지고 다시 슬며시 나누어져 두 개의 철길로 마무리되는 이 이미지는 두께가 없으니 그림자를 찾을 수 없고, 별스럽게 가치를 꾸미지 않아 소박하며, 특별히 예술적 작동의 의미를 담은 것 같지 않은 그런 홍명섭만의 유머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흑백의 격한 명암대비에 의한 눈의 어른거림과 함께 우리의 기억을 일깨우는 환경으로도 작용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철길 이미지는 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미지에의 동경과 같은, 비약이 없는 미지로의 표면장력, 문명과 혁명, 광야와 개척, 모험과 일탈, 유혹과 외경, 만나고 헤어짐, 심리적 방황 그리고 속도 등을 일깨우는 몽환적 모티브인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신체운동을 유도하는 이 전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작가의 ‘생각’과 그 ‘신체 행위’로 인한 물질적 현실화의 사태로 이루어져있다. 철길 형태의 테이프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시공간 속에서 관객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데, 관객은 작가가 제시한 무거운 ‘무쇠 슬리퍼’를 스스로 신고 중력의 저항을 감지하며 시각과 몸이 결합된 걷기라는 신체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이렇게 관객은 더 이상 정신과 영혼만의 주체가 아니라, ‘몸, 시간, 공간’의 융합체로서 ‘드로잉’과 ‘무쇠 슬리퍼’가 되는 변태의 창발적 체험을 경험한다. 이 상황 속에서 시각에 신체가 더해지고 공간에 시간이 개입되며,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식은 총체적으로 해체되고, 사물의 질서정연한 의미들이 교란되어 불화不和하는 것이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running railroad’는 1982년부터 진행해온 topological한 공간운영 개념을 기반으로 한 작업, 이 작업은 관객의 시선뿐만 아니라, 관객의 몸 자체; 걸음걸이의 감각, 호흡과 속도, 중력에의 저항 등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외부적 요소들이 작업의 흐름을 창출하는 조건이 된다. 관객의 준비되지 않은 몸의 리듬을, 그래서 몸이 예측하지 못했던 감지력이 촉발하게끔 낯설고 껄끄러움으로 유발되는 중력과 몸의 불화의 감성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면서, 마치 거동이 불편한 환자처럼, 익숙하지 않은 몸 씀의 이질적 흐름들에 맡겨지는 비자발적 감성, 일상적 인식의 틀과 겉도는 지각과 몸 감각의 충돌들, 내 몸의 감각이 새로운 보철을 체험하듯 낯선 변종의 감각을 꿈꾸며, 그래서 우리의 몸의 비자발적 감각의 각성을 통해 또 다른 생명환경의 사유를 도모한다.”라고 한다.

 

 홍명섭의 작업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업에 대하여 예술 개념의 모호한 경계 제시와 거친 당혹감, 저항과 불편함, 불화를 촉발하는 긴장감을 떠올린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의 사유와 지각이 달라지고 새롭게 배열되는 타자적 지점을 향해 고정된 정체성의 인식에 교란을 주어 우리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꿈꾸는 체험을 관객에 의해 더불어 창출하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그 전략이기도한 작가의 기본적 태도는 우리 의식의 동일성 원칙을 해체하려는 ‘불화’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이 ‘불화’는 작업의 내적 불화에서부터 작업이 끼치는 외적 불화까지 포괄하여 작업과 관객 사이는 물론 작업과 작가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화이다. 이 때 불화는 사람들 사이가 나빠지는 감정적 대립이나 적대시하는 반목의 유형이 아니라, 동일화되지 않는 이질감의 경험이면서 힘의 밀림과 당김으로, 준비되지 못한 감성의 마찰을 견뎌야하는 그런 ‘저항’과 ‘불편함’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결국 삶의 감각을 변화시키고 확장하게 하는 힘으로서, 개념의 바깥을 지각하고 각성시키고자 하는 생기일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꿈꾸는 경험의 창출을 염두에 둔 이번 전시, 기억공작소 ‘러닝 레일로드’에서 작가는 고정된 예술의 경계와 인간 감수성 사이의 불화를 비롯한 그 균형적 대응이 지닌 탁월卓越한 긴장과 공감共感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를 예술 확장의 충만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정종구


▢ 작품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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