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어떤 산책’이란 제목으로 열린 전시에는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도서관과 방(모기장), 창문과 분수, 그리고 숲속을 산책하는 남자와 목욕하는 남자를 그린 그림을 선보였다. 작가는 특정 공간을 반복해서 관찰하고 그곳의 시각적, 비시각적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그림으로 가시화하는데 그것은 철저하게 작가의 신체 반응에 견인된다. 매 순간 자기 몸의 감각, 온갖 생각들이 뒤섞이는 체험, 그 느낌을 그림으로 끌어내려고 하며 종이, 화면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을 방법을 찾는 한편 기존의 작업 방식과는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려한다. 최근 작품은 이전보다 형태는 모호해지고 추상화되어가며 종이와 물감은 구분 없이 뒤섞여 마치 격렬한 상처처럼 들러붙어 있으며 좀 더 잘게 쪼개진 점들과 작은 터치들로 자욱한 화면을 안겨준다. 흔들리고 유동적이며 비결정적인 표면이 발생시키는 감각이 이전과는 조금 생소하다. 특히 물성 자체에 보다 기울어져 있어 시간을 쌓아나가는 작업이자 공간에 직접 개입해서 기묘한 층차나 사건들을 끌어낼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갖고도 기존의 그림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무척 다른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그려내고 있다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다소 관습화되고 반복되어 풀려나온다는 느낌을 주면서 그림의 긴장감과 회화성의 농밀함이 이전보다 줄어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