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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고 불온하며 불온하지 않은 것
비어있는 공간, 끊어지던 것은 여전히 문 밖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데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방에 나의 형상이 반사된다. 시작과 끝은 보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소외될 수 없는 이곳에서 나를 지켜보는 것은 무엇인가.
결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의식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에 외부의 눈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가 또한 예외는 아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엄격함을 포함하여 평판, 제도, 자금, 대중, 비평, 동료 등 수많은 외부요소들이 무의식적으로 창작과정에 개입된다.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 시선과 관심을 둔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행위는 부자연스러워지고 경직된다. 질문은 간단하게 시작한다. 예술의 구성과 창작에 있어 외부의 눈은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되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스펙테이터spectator는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옵저버observer와는 다소 다르다. 스펙테이터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우리 행위에 영향을 주고 그 행위의 기준을 만드는 타자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타자로부터 공감과 칭찬, 보상을 받기를 욕망하며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예술과 관련한 모든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스펙테이터가 예술가들의 창작과정과 결과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준다. 전시『스펙테이터』시리즈는 작가들이 스펙테이터와 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일종의 실험적 태도로서 접근하는 프로젝트다. 작가들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관찰자를 상정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관찰자가 되어 작업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지극한 관심과 창작요소들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록과 결과의 개별적 경험들은 전시를 통해 은유로서 드러난다. 막연하게 추측되던 외부 시선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구체화된다.
송수영_나뭇잎 - 신도시_2009
이번 신한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전시「스펙테이터」는『스펙테이터』시리즈를 구성하는 프로젝트 전시다. 참여 작가 송수영, 전병구, 임유정은 총 7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에게 의도적으로 스펙테이터가 되었다. 회화, 설치, 영상 등 상이한 매체를 다룬다는 것은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의 상대성을 담보한다. 서로의 작업을 비평하고 작업과정에 개입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그들은 스스로 기꺼이 관찰대상이자 관찰자로서 과정에 참여했다.
전병구_1996_oil on canvas_31.8x40.9cm (2013)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기존 작업과 함께 실험적 결과물로서의 작업들로 구성된다. 특히 작가 각자가 무형의 관찰자를 설정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작업들이 주목할 만하다. 지난 4월 전시 과정의 일환으로서 선보인 프로젝트 전시「공정한 관찰자」에서 작가들 사이의 상호 긴밀한 관찰의 결과를 중점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 관계성을 여전히 가져가면서도 개별 관찰자의 영역을 확장하여 재구성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작업적 대상과 창작자 사이, 예술가 및 예술품과 관객 사이, 전시기획과 작가, 공간 사이 수많은 경우의 수로 이루어진 관계 속에는 늘 스펙테이터가 존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결코 단순화시킬 수 없는 이 긴장상태가 작업과정과 작업적 결과물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관하여 가시적으로 혹은 개념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임유정_monument, mixed media, 18x20x30 (2017)
과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완벽한 결과에 수반되는 지난한 시간과 행위들은 늘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의 관찰자를 의도적으로 개입시키는 일은 얼핏 작업이 갖는 아우라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서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관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치부로, 혹은 부정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특정 위험을 감수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들의 예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가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관계적 실존을 요청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예술이란 늘 성공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측면에서 이는 자기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자아의 부재로도 읽힐 수 있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결코 단순한 모럴의 주제로는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전시는『스펙테이터』라는 무형의 대상에 대한 기나긴 탐색의 시작일 뿐이다. 공간에 들어선 순간, 당신은 자연스럽게 스펙테이터가 된다. 여기에 가득 채워질 무수한 서사를 기대한다.
천미림(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