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작가는 합판이나 폐목 등 독특한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을 일정 기간 진행한 바 있다. 그것은 단순히 재료의 확장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자체가 형식이자 내용이었다. 폐목을 통해 축적된 시간의 기록들을 채집하고, 이를 수묵으로 해석하여 수렴해 내는 그의 작업은 소재 자체의 물성에서 비롯되는 강한 질감과 반 입체적인 화면의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그는 이형동질(異形同質)을 이야기한다. 즉 서로 다른형식과 모양이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같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론을 통해 비록 형식은 다르지만 전통적인 수묵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그 내용을 표출해낸다.이번에 선보인 대규모 설치 작업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의 정점을 찍는 기념비적인 작업이다. 둔탁하고 거친 수묵과 합판의 물성이 이루어내는 조화, 그리고 마치 획을 긋듯 꿈틀거리며 공간으로 뻗어 나가는 조형미는 단연 돋보인다. 규격화된 합판에서 비롯되는 견고한 형식을 곡선으로 수렴하여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그의 이러한 작업을 통해 수묵이라는 전통의 요체를 상기시키고 현대라는 시공을 포용하고자 한다. 설치라는 형식의 본질은 이질을 넘어 여전히 우리 미술의 특질과 연계된 것이라 읽힌다. 천명변곡(天命變曲)으로 명명된 이번 전시는 분명 작가의 작업 역정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이정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