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7-09-21 ~ 2017-10-20
이요나
무료
02.734.0440
OCI미술관은 올해로 여덟 해 째를 맞는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 ‘OCI YOUNG CREATIVES’의 2017년도 마무리 전시로 이요나 개인전 ⟪MONOCHROME ON DISPLAY⟫를 개최한다. 다양한 형태의 설치작업을 통해 공간의 특성,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요모조모 탐색한다. 나무와 쇠뿐만 아니라 온갖 레디메이드 잡동사니를 폭넓게 활용해 왔지만 물리적 형상이나 특성 자체에 앞서, 설치물과 관객의 상호작용에서 부싯돌의 불꽃처럼 불현듯 솟는, 공간의 숨은 매력을 포착함에 초점이 있다. 상호작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식의 순간 이미 시작되는 것으로, 구조물과 관객의 위치, 거리, 각도, 시야의 열림과 가림, 또 다른 구조물과의 새로운 삼각 구도 등 자연스러운 관람 행위만으로도 무수히 발생한다. 설치작업은 대체로 공간과의 조화를 중시하기 마련이나, 이요나는 그것을 넘어 특정 공간 자체를 제재로 삼는 셈이다.
이번 전시 《MONOCHROME ON DISPLAY》는 OCI미술관의 실제 공간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작가가 파악한 미술관 전시장 2층 공간은, 바닥 중앙이 뻥 뚫려 1층과 숨을 공유하는 입체적 구조, 물리적으로 단절되지는 않으면서 시각적으로는 두 섹션으로 현격히 나뉘는 ‘ㅁ’ 모양의 바닥, 천장을 가로지르는 보와 마룻대가 교차하며 불거지는 수많은 네모 형상, 카메라가 초점을 잡지 못할 정도로 희디 흰 벽체가 결합해 마치 거대한 미니멀리즘 조형과도 같은 인상이었다. 강렬한 기하학적 형상에 대한 관심 때문만은 아니라, 비움으로써 작업과 해석의 자유를 개척하는 점에서도 미니멀리즘 코드는 작가에게 기껍다. 감정을 절제하고 개입은 최소화해 관객과 공간 경험 사이에 직렬연결을 시도한다.
우선 액세서리 매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MDF제 스페이스 월(space wall)은, 장식물 판매와 가장 거리가 멀 것만 같은 화이트큐브에서 오히려 전례 없이 거대한 규모로 벽면을 잠식한다. 무채색의 공간과 어우러져 특유의 매끈한 질감이 더욱 돋보이는 표면에는 여러 줄로 나란히 홈이 패어 있어, 공간을 움켜쥐고 능동적으로 흐름을 제안하는 일종의 시각적 권력을 획득한다. 홈에는 사물의 재현이나 특정한 상품(레디메이드) 대신 기하학적 모양새의 작고 날씬한 걸쇠들이 천방지축 매달려 그 힘의 변주를 무던히 시도한다.
스페이스 월이 재질과 압도적인 면적으로 공간을 장악한다면, 분체도장 처리한 검정 철제 로드(steel rod)는 직경 6mm의 날렵한 형태와 특유의 방향감으로 시선을 다스린다. 끝은 갈고리처럼 여러 형태로 휘어, 마치 스페이스 월의 홈에 걸쇠가 걸리듯 철제 로드를 허공에 거는 형상으로 힘의 대칭을 이룬다. 다양한 표정 덕에 때로는 공기의 흐름이나 발걸음을 지시하는 화살표가 되기도 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공중에 줄지어 매달린 로드의 행렬 속에, 나약한 로드는 어느새 벽이 되고 통로가 되어 감상자의 눈길과 발걸음을 좌우하기에 이른다. 그 간격 너머로 맞은편 스페이스 월과 흰 벽면, 격자형 난간이 각도에 따라 번갈아 교차하며 로드의 행렬은 마치 유리창처럼 형상을 투과하고 거른다. 무궁무진한 이 조합은 낱낱의 구획을 흐리고 공간 전체를 한 점 작업으로 묶는 데 앞장선다.
이요나를 소개할 때 ‘음악적 요소를 미술에 접목시킨 작가’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본 전시에는 음악의 요소를 직접적인 조형으로 표면에 내세우진 않으나, 음악과의 몇 가지 접점은 여전히 공유한다. 이를 살핌으로 전시 전반의 특성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전 그가 다루던 첼로는 나무와 금속이란 물성을 남겼다. 현이 가로지르는 몸체는 목재 위로 줄짓는 조형으로, 악기를 바닥에 지지하는 스파이크(endpin)는 천장에 매달린 로드에 그 이미지를 인수인계한다.
다음은 률(律)과 율(率)의 요소이다. 음정간의 관계를 잘 정돈해 음률을 유지함으로 단일한 음계를 이루는 조현(調絃)작업은, 줄지어 매달린 로드 사이의 간격이나, 스페이스 월 위로 홈들이 그려내는 기하학적 형상의 닮음비를 다듬음으로, 공연장 대신 전시장에 전이한다. 이 비율은 반복, 점층, 점강하며 청각 대신 시각적 리듬(韻律)을 생성한다.
연주란 노트를 음파로 변환하는 기계적 작용이라기 보단, 작곡자 그리고 동료 연주자와의 실시간 교감 행위이다. 따라서 백 회의 연주는 백 차례의 재해석과 다르지 않고 이는 실황성의 원천이 된다. 길게 늘어선 행렬을 정면에서 마주치듯, 천장에 매달린 로드는 폭폭이 겹쳐 마치 한 다발처럼 첫눈에 다가온다. 조금 시선을 틀면 어느새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지며, 사이사이로 비치는 스페이스 월 표면의 홈이 만드는 가로줄과, 또 전시공간의 흰 난간과 격자를 짓고 대비를 이루어 서로를 부각한다. 흰 벽면을 마주칠 때면 로드의 실루엣은 더없이 또렷해진다. 멀찍이 검정 스페이스 월은 군데군데 흰 걸쇠를 품고 있다. 다가가면, 보호색 속에 웅크리고 있는 더 많은 검정 걸쇠들을 발견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효과를 ‘보이다가 숨다가’라고 묘사한다.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줄지어 홈에 매달린 걸쇠들은 손쉽게 좌우로, 혹은 숫제 다른 홈으로 자유로이 옮길 수 있다. 각도를 바꾸고, 거리를 좁히고, 걸쇠를 옮기는 순간, 공연장의 실황성(實況性)은 전시장에서 실시간으로 만끽하는 가변성(可變性)으로 평행이동 한다. 천장과 벽면을 수놓은 구조물들은 이로써 물리적 치수를 한없이 초월하고 매번 서로를 색달리 섞으며 공간 전체를 거대한 일련의 작업으로 묶는다.
첼리스트는 작곡가가 제시한 노트를 더듬어 자기 활을 켠다. 전시 감상자는 로드가 여닫는 공간과 스페이스 월의 흐름에 시선을 끌리고 발걸음을 제안 받는다. 치밀한 동선 설계는 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른 차이를 적극 유발하고 개별적인 공간 경험을 강조한다. 작곡가와의 교감 끝에 한 곡의 연주는 완성되고, 구조물과의 상호작용 끝에 감상자의 수만큼 전시가 태어난다.
이요나는 공간을 썰고 이어 붙이며 숨은 맛을 속속들이 만끽하는 비법을 감상자와 공유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전시 제목과 더불어, 공간뿐만 아니라 미술 행위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엿볼 수 있다.
한국 단색화에 쏠린 열기와 가격으로 줄 세우기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느낀 작가에게, 스페이스 월은 또한 ‘상업화’, ‘규격화’의 환유이기도 하다. 표면에 위태로이 걸린 걸쇠며, 한 순간 스쳐 지나는 로드의 실루엣은, 상품처럼 줄지어 진열된 조형들이다. 진열 중인 단색화, 진열 중인 조형들. 어쩌면 조형을 상품처럼 진열하고 쇼핑하는 행위야말로 작업과 전시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조형 진열장을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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