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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석: 관습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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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회식계회도(職場會食契會圖)  color on hemp cloth  73×73㎝  2016


OCI미술관은 올해로 여덟 해 째를 맞는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 ‘OCI YOUNG CREATIVES’의 2017년도 마지막 전시로 최현석 개인전 ⟪관습의 딜레마⟫를 개최한다. 옛 기록화의 양식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동시대 기록화를 개척해 나간다. 물론 동기가 그러할 뿐, 대상, 연출, 표현 등 모든 면에서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자신만의 형상을 정착시켰다. 성곽 대신 전봇대와 빌딩 숲이 늘어서고, 가지런한 행렬 대신 몇몇은 구석에서 슬며시 담배를 피우고,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하는 인물들은 안 봐도 어떤 표정일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그의 기록화는 현재를 조감하고 보다 나은 미래로 향하는 발판으로서 보다 큰 가치와 정체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전통 기록화의 그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때문에 ‘기록화를 전복하는 기록화’라 칭하곤 한다.

 ‘좋은 것은 그리지 않는다. 찜찜하고 꺼림칙한 것을 포착한다.’는 최현석. 전시 제목 《관습의 딜레마》는 사회적이든, 작업 차원이든 관성에 순응과 항거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세태를 중계하는 전시임을 시사한다. 이 관습의 좌충우돌, 진퇴양난은 세 가지 섹션에 걸쳐 전개된다.


우상협치십곡병(偶像協治十曲屛)  color on hemp cloth  140×700㎝  2017


인류사가 반복적인 계층화의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와 장소는 수없이 흐르고 바뀌었건만 그 관성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작가가 사는 지금 우리 사회까지 전해져 되풀이된다. 바로 그 ‘고립된 수직 사회상’이 첫 섹션을 연다.

 들어서자마자 세로 4m가 넘는 크기의 <현실장벽도축(現實障壁圖軸)>이 층층 솟은 절벽 같은 사회상을 위아래로 펼친다. 길게 늘어뜨리는 전통 족자의 형식적 특성을, 수직적 사회상에 빗대어 보다 영리하게 활용한다. 생물학적으로 동종일 뿐, 상류층과 하류층이 극명하게 나뉘어 그 출발점도, 목표지점에 닿는 방식도 결코 같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들이 공유하는 건 절벽 하나를 앞 다투어 탈 운명이다.
 <현실장벽도축>이 시녀처럼 곁에 거느린 <사회초년생관문도(社會初年生關門圖)>와 <직장회식계회도(職場會食契會圖)>로 현실장벽의 단면을 한층 가까이 들여다본다. 밤늦도록 이어지는 왁자지껄한 회식 자리는 야근 특근에 지친 몸으로 끌려가 남은 목청을 끌어올려야 하는 직장인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희비의 페이지이다. 문인들의 모임을 기록한 ‘계회도(契會圖)’를 차용해 그 현장을 조명한다. 다른 한 편은 사회초년생이 되기 위한 처절한 무한경쟁의 현장인 신입사원 면접장 풍속도를 내걸었다. 과거시험 못지않은 긴장감으로 들어찬 면접장 바깥은 희비의 몸짓과 자책, 탄식으로 얼룩진다. 이곳이야말로 반대편 <직장회식계회도>의 한 배역이라도 맡아 보려 몸부림치는 현장이며, 관문(關門)이란 표현이 무엇보다 그럴듯하다.

 국방에 청춘을 불태우고 제대하면 예비군이 반겨준다. 낡고 답답한 군복에 무거운 총이 두 어깨를 짓누르면, 하품에 연신 젖은 눈동자엔 먼 산과 핸드폰만 번갈아 비친다. 시간은 점성이 생긴 양 흐를 줄을 모르고, 그늘만 보면 담배가 고프다. 사회라는 서바이벌 도중, 산 속 서바이벌 훈련장에서 군인 연기를 해야 하는, 또 시켜야 하는 이들의 따분함이 <예비군훈련도(豫備軍訓鍊圖)>에 펼쳐진다. 끝이 아니다. 젊어선 외딴 예비군 교장에서, 늙어선 탑골공원 노인들 사이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3·1운동의 불길이 치솟고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던, 패기와 의연함이 넘치던 사적(史蹟)은 이제 쪼글쪼글한 입술로 과거를 곱씹으며 오갈 데 없는 장기짝만 매만지는 비둘기 섬이 되었다.


예비군훈련도(豫備軍訓鍊圖)  color on hemp cloth  145×220㎝  2015


 산중턱에서 땀을 훔치며 내려다보면 십자가, 능선을 훑어보면 절밖에 안 보인다고들 한다. 첨단의 시대에 오히려 그 맹위가 더해가는 것이 있다면, 기술 앞에 꼽는 것이 종교이다. 두 번째 섹션은 ‘종교’이다.

 지난 대선의 키워드중 하나는 ‘협치’였다. 기업은 합병해 세를 키우고, 아이돌은 그룹으로, 다시 프로젝트 그룹으로 몸을 불린다. 전략적으로 손을 맞잡고 버티는 시대는 종교에도 드리우고, 예수부터 단군까지 열외란 없다. 이에 서로서로 ‘에피소드’를 적절히 공유하며 시대에 순응하는 절대자들을 <우상협치십곡병(偶像協治十曲屛)>에 폭폭이 모신다. 종교는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 아니라 어엿한 일부인 바, 아울러 <종교비치도(宗敎備置圖)>로 현실 속 종교의 요지경 세태를 두루 전망한다.


 전하여(傳) 잇는(統) 것이 전통이다. 마지막 섹션은 ‘생(生)의 끝은 전통의 시작’이다. 이미 최현석은 <종가불멸도(宗家不滅圖)>의 제례 장면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를 한데 움켜쥐는, 전통과 관습의 위력을 보인 바 있다.

 다가오는 추석이면 집집마다 벌초가 걱정이다. ‘후손의 도리’는 어느새 ‘대행업체의 벌이’로 옮아갔다. 땅 속에서도 후손에게 도리를 묻고 신세를 지게 하는 전통의 힘을 <벌초대행도(伐草代行圖)>에서 느낄 수 있다. 화분 속 춘란은 아차하면 스러지건만, 비단 속 묵란은 반천년을 버티고도 꼿꼿하다. 문인의 고결함을 대표하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는 그렇게 <신기루_매난국죽(蜃氣樓_梅蘭菊竹)>이 되어 오늘도 이어진다. “난(蘭) 치세요?” 소리에 이골이 난 한국화가는 온도에 따라 반응하는 특수 수묵을 활용해, 손대면 사라지는 사군자를 쳐서 그 오랜 신기루를 자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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