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
예술가의 노동 가치에 대한 짙은 물음을 남기고 떠난 작가의 15주기 기념전이 제주비엔날레와 연계하여 시작되었다. 여럿이 둘러앉아 두런대며 의지를 불태우기도하지만 뭔가 모를 무거움이 가득한 <파업>부터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벽 구석을 찾아 주섬주섬 바지춤을 내리는 술에 취한 소시민의 모습까지 작가의 주요 작품이 다시 대중 앞에 섰다. 구본주는 물질과 정신을 일치시킬 줄 아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의 낫이나 <눈칫밥 3년>의 맨홀 뚜껑을 연상시키는 둥근 대좌는 이미지와 내용의 절대적인 합치점을 보여준다. 나무와 브론즈, 철 등 모든 재료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던 작가의 작품 중 이색적인 재료를 사용한 것이 아마도 이번 전시의 클라이맥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는 폴리 코트에 야광안료를 넣어 단 3개만 만들어 놓고 저세상으로 떠났고 그 작은 샐러리맨들은 1천 개가 되어 은하수처럼 전시장 안을 흐른다. 사라진 작가의 호흡이 그곳에 가득할 수 있는 것은 그를 아끼는 동료와 그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사랑 덕이다. 전시명 ‘아빠가 왔다’에서 아빠는 검정고시 올백의 세모와 시 쓰는 중학생 네모의 아빠, 작가 전미영의 남편 구본주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거칠게 호흡하던 시대의 조각들이 새로운 공간을 만나, 묵은 때를 떨치고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니 반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