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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행복한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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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세계 기획
최광희 개인전 행복한 파수꾼

2017. 9. 20 Wed - 9. 26 Tue
갤러리 미술세계 제1전시장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24 T.070-7731-6344

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일 때, 흔히 재능이 ‘꽃을 피웠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리고 9월 20일 갤러리 미술세계에서 14번째 개인전을 개최하는 최광희 작가는 그동안 문자 그대로 ‘꽃을 피워온’ 사람입니다. 오랜 기간 꽃꽂이 강사로 활동하며 꽃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켜왔던 그는 어느 날 “이 아름다운 꽃과 기억 속 풍경들을 오래 간직할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붓을 집어 들었습니다.

용기없는 이에게는 ‘늦은 나이’라는 핑계가 만능이지만, 용기 있는 자에게는 ‘늦은 나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습니다.

최광희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정물화, 풍경화, 문인화, 서예 등 장르를 과감히 넘나들며 표현기법을 익혔습니다. 그리는 대상 역시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된 꽃부터 아프리카 여행의 단상까지 제한이 없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종이죽을 이용해 제작한 부엉이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지혜롭고 용맹한 부엉이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지혜와 부, 장수, 명예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최광희 작가의 화폭에서 새롭게 표현된 부엉이 역시 감상자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2008년 이후 이번 전시까지 14회의 개인전을 개최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보이는 작가는 근래 화정 김무호 작가를 사사하며 새로운 창작세계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의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는 이번 미술세계 기획전에 많은 분이 찾으시어 작품세계를 감상하시고 작가에게 응원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작과의 대화 91×117cm 캔버스 위에 한지·아크릴, 2017




산삼 61×73cm, 캔버스 위에 한지·아크릴, 2017





행복한 파수꾼이 전하는 생(生)의 이야기


글 | 장서윤 예술학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시인 김춘수의 작품 「꽃」의 한 구절이다. 누군가에 의해 이름이 불러지고 이로써 존재 가치를 부여받은 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을지 모른다. 존재만으로 생명이 주어지지는 않는법. 그래서 여기, 꽃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붓은 든 사람이 있다. 최광희 작가는 20여 년 동안 꽃꽂이를 하며 수많은 꽃들을 직접 만지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음에도 시간이 지나 점차 그 고왔던 빛깔을 잃어버리는 꽃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사라져 가는 것이 비단 꽃만은 아닐 터, 인생의 수많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기억은 마치 시들어가는 꽃처럼 색이 바래고 희미해져 결국 기억이라 믿는 것들을 의지하며 살게 된다. 최광희 작가는 그 안타까움의 순간을 붓으로 붙잡았다.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색을 더했다. 아스라이 사라질 뻔했던 꽃은 선명한 색채를 입고 영원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가 통과해온 수많은 시간과 경험은 캔버스라는 기억의 저장소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장면으로 남았다. 삶과 생명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최광희 작가의 그림은 그래서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정 어린 시선과 손길이 캔버스 위를 스칠 때, 또 다른 생명의 온기가 피어오르니 말이다.



가족 73×51cm 캔버스 위에 한지·아크릴, 2017

나, 작가 최광희

누구나에게 시작은 의미가 깊다. 시작에는 동기가 선행되어야하고, 그 시작을 현재와 미래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의미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 최광희작가에게 첫 개인전은 바로 예술가로서 시작점이자 근원일 만큼 의미가 남다른 것이었다. 명지대학교 도서관 사서로서 정년퇴임을 하고 예술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던 2008년, 전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남몰래 작업에 매진해왔던 최광희 작가의 작품들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틈틈이 취미로 꽃꽂이 배운 것이 어느덧 전문가적인 수준에 올라 교회 교단을 장식하는 등의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지만, 그림 그리는 ‘예술가 최광희’는 낯선 것이었고 그가 그려낸 그림들은 그만큼 더 놀라웠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알아봐줬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작가에게 있어 호평은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전시를 열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지금까지 13번의 개인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역시 주변사람들 호평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실력을 주변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돌리는 작가의 심성에서 호평만큼의 온기가 느껴진다.



행복 발사 60.5×73cm, 캔버스 위에 한지·아크릴, 2017

그의 따뜻한 시선은 최광희 작가의 빛이 발했던 첫 개인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프리카 호수의 홍학 떼(〈난무〉, 2008), 석양의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을 노니는 기린들(〈만남〉, 2007), 마사이 원주민들의 춤(〈블루문 댄싱〉, 2008), 그리고 모로코 들녘의 해바라기(〈지라쏠레〉, 2008) 등 세계 각국의 여행지에서 작가가 직접 마주했던 장면을 담아낸 작품들은 희미해진 기억과 달리 찬란하고 선명하게 빛났다. 타국으로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도시를 감싸고 있는 하늘과 태양, 그리고 공기의 색이 한국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그렇기에 최광희 작가가 그려낸 색채는 선명하다 못해 이국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그림에 사실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지라쏠레〉 시리즈의 해바라기에서 살펴볼 수 있듯 디테일한 묘사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흩뿌리기 기법을 사용하여 군데군데 표현의 미를 가미한 것은 최광희 작가의 예술적 스펙트럼이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상에 애정이 있다면 그 표현에 있어서도 당연 노력과 공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투박하고 거친 질감 속에서도 발하는 선명하고 밝은 색채, 그리고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섬세한 붓 터치를 횡단하는 방식은 최광희 작가 스스로 보다 높은 단계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인 동시에 작업 스타일로 구축된 것이기도 하다.

평범한 것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래서 늘 경이롭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였던 일상의 존재는 너무 가까이 있어 그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빛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다.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 안에 시야는 함몰되지만, 존재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광희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바로 그의 딸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그림으로 상 받은 적이 있다’는 엄마의 말을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최광희 작가의 생일날 미술 도구와 함께 마포도서관 아카데미 수강증을 선물로 준 것이다. 결코 거부할 수 없었던 딸의 소중한 선물이었기에 작가는 그때부터 열심히 아카데미를 나갔다. 일이 끝나면 늘 몸과 마음이 지치기 마련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순간부터는 힐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최광희 작가는 이종근 작가를 사사하며 수채화를 시작으로 유화를 배웠고, 이후 서예와 사군자, 한지 공예를 배우며 일주일에 하루도 빠짐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배움에 대한 열의와 새로운 창작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결코 작가를 배신하는 법이 없다.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작업에 매진한 결과, 최광희 작가는 한지 종이죽 작업을 만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 최광희 작가의 창작세계에 새로운 장(場)을 열어주었다. 운명은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작가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나르시즘 91×117cm, 캔버스 위에 한지·아크릴, 2017




종이죽으로 빚어낸 행복의 염원

2013년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던 당시 최광희 작가는 무수한 연습량만큼이나 쓰고 버려지는 한지를 보며 이를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고, 물에 넣으면 풀어지는 한지의 속성을 이용하여 종이죽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들어가는 꽃들을 보고 그림을 그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한낱 버려진 종이에도 따뜻한 마음과 시선을 보낸 것이다.

종이죽을 만들어 이를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에 부른 종이를 하나하나 손으로 찢어야 하고, 찢어진 종이는 다시 체에 걸러 잘 말린 뒤 다시 물에 풀은 후 비로소 작업에 쓰일 수 있으며, 젖은 종이를 캔버스에 부착하고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방부제 효과가 있는 고무풀을 종이죽과 섞어 사용해야 한다. 또한 하얀색은 하얀색끼리, 검은색은 검은색끼리 불리고 찢어야 색채의 표현이 선명하게 나올 수 있기에 여간 번거로운 작업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최광희 작가는 2014년 당시 양평 세미원 연꽃축제 초대로 열린 《애련(愛戀)》전에서 40개의 종이죽 작품을 선보인 후 손가락에 생긴 건초염 때문에 일 년을 쉬어야 했지만, 특유의 유쾌하고 호방한 성격과 창조력은 그 고통마저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할 것으로 품었다.

이와 같은 어려움에도 최광희 작가가 지속해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그림을 ‘왜 그리는가’ 라는 원론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작가는 성당의 교리를 언급한다. “‘성당에 왜 다니는가? 그건 영원히 죽어서까지 행복하려고 다니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교리를 배울 때 이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내 인생의 모토와도 같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사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리면 다른 사람들도 즐겁겠지? 웃음이 나오겠지?’ 나의 그림에도 행복한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나의 사상이다.” 최광희 작가가 캔버스 화면에 담아내는 소재에는 이러한 작가의 염원,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염원이 함께 담겨 있다. 부귀를 상징하는 물과 모란꽃, 장수를 상징하는 학, 어둠과 어려움을 뚫고 피어나는 연꽃, 지혜와 재물을 상징하는 부엉이 등 작가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최광희 작가의 행복과, 그가 그려낸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그의 작품에서 교차하는 것이다.





I love her(1) 32×41cm 캔버스 위에 한지·아크릴, 2017



캔버스에 담긴 삶의 이야기

특히 최광희 작가와 부엉이의 만남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하기 위한 도상으로 부엉이를 선택한 것이었지만, 최광희 작가에게 부엉이는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 속 동물이었다. 그리고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갤러리 초대전을 위해 떠난 영국에서 최광희 작가는 실제 부엉이를 직접 만나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부엉이를 그리는 작가를 초청한 옥스퍼드대학 한국학 교수의 세심한 배려로 인해 운명적으로 부엉이와 교감한 최광희 작가는 이제 상상 속 동물이 아닌 실제의 부엉이를 캔버스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교감의 힘이란 인간과 동물이라는 종(種)의 차이마저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마치 최광희 작가가 부엉이인 듯, 부엉이가 최광희 작가인 듯 의인화된 부엉이는 이전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최광희 작가처럼 〈여행〉, 〈2층버스〉 속 세계 도시를 유람하는 부엉이가 있는가 하면, 눈 내리는 겨울날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는 〈겨울〉 속 부엉이도 등장한다. 인생에서 늘 기쁜 일만 생기는 법은 없지만, 어려운 순간에서도 기쁨은 태어날 수 있다. 마치 〈너의 잘못만은 아니야〉, 〈내 뒤에 숨으렴〉처럼 누군가의 아픔과 고난을 보듬어 주는 부엉이, 불을 끄고 있는 소방관의 호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꽃가루들을 묘사한 〈행복발사〉에서는 최광희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도 위트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

작품 속 이야기와 더불어 종이죽을 붙여나가는 형식도 다채롭게 변주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흰색과 검은색 위주였던 종이죽은 점차 색을 다양하게 구사하며 화면의 색감의 풍요롭게 변화시켰으며, 〈유람〉, 〈무지개 폭포 위에서Ⅰ〉처럼 종이죽이 더해지지 않는 배경을 추상적으로 처리하여 화면에 리듬감을 불어넣었다. 사진과의 콜라주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뉴욕〉, 〈순례자의 휴식〉은 사진 위에 부엉이를 그려 넣음으로써 종이죽 작업의 형식을 한 차원 진보시켰다.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최광희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처럼 최광희 작가의 작업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국문학를 전공한 만큼, 작가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람들이 그림을 거는 이유는 그림에 사연이 있고 뜻하는 바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게 보이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 그게 바로 이야기이다.”최광희 작가의 작품들이 그렇게 행복하고 유쾌하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행복을 염원하는 작가의 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행복의 파수꾼’ 최광희 작가는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가 담긴 부엉이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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