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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식 : 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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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도스 기획

신장식 ‘길’展

2017. 9. 20 (수) ~ 2017. 9. 26 (화)

 


1. 전시개요

■ 전 시 명: 갤러리 도스 기획_ 신장식 ‘길’ 展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Gallery DOS (갤러리 도스)

■ 전시기간: 2017. 9. 20 (수) ~ 2017. 9. 26 (화)

 

 

2. 전시내용

신장식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는 길이라는 큰 주제 안에 아리랑, 금강산, 불교, 세상 속으로, 우주, 촛불 이라는 여섯 가지 소주제가 담겨있다. 아리랑으로 시작하여 금강산 그림을 주로 그려온 작가로 알려진 것과 달리 다른 것들을 표현해낸 작업들도 많이 있으며 이번 '길'이라는 전시에서는 그 전체를 엮어보고자 한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화해간 사유의 대상을 통해 그동안 작가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 왔는지 더불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길이란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이동해간다는 의미로서 공간적인 이야기이지만, 어디로 가느냐 자체가 시간적인 측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의 시간적인 측면의 길 즉 20대,30대의 길 뿐만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돌아다니고 관심 가졌던 것들의 길 또한 길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번전시를 기획하였으며 이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예측 혹은 과거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을 하는 시간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는 전시가 될 것이다.





 아리랑–아침   목판화  56x38cm   1990   대영박물관 소장

 

 

3. 전시관련 인터뷰

신장식, 길 위에서 길을 묻다

대담일시: 2017년 8월 16일

​질문하는 사람: 안대웅

대답하는 사람: 신장식

 

안대웅 : 지금부터 신장식 선생님의 새로운 개인전 <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요. 여섯 소주제로 전시를 구성하셨다고 해서 소주제의 흐름을 중심으로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전시의 동기에 대해서 먼저 간략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 전시를 두고 ‘특이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신장식 : 전시 제목이 <길>인데,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내 그림의 시작이 ‘아리랑’이고 금강산 그림도 많이 그렸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그거 말고 다른 것도 많이 그렸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 전체를 엮어보자는 거죠.

 

‘내 인생의 50대는 길 위의 수행자다.’ 내 블로그의 글에 있는 이야기에요. <월간미술>에서 50대 작가들, 중견작가, 본인의 50대의 느낌이나 자기를 몇 마디로, 예술 세계를 설명해달라는 기획이 있었어요. 나한테도 그러한 제의가 들어와서, 그때 “내 인생의 50대는 길 위의 수행자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예술가의 길도 수행자의 길이며, 그림도 수행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찾으러 세상을 그렇게 다니고 동서고금을 헤맸나? 조금의 빛이라도 표현해낸다면 좋겠다. 나는 그림으로 희망의 아리랑을 그리고 싶다.” 그렇게 썼어요. <월간미술>에서 대표작 2점하고 자기심정을 내라고 해서 청사초롱 그림, 아리랑 시리즈 91년도작, 그리고 금강산 그림을 냈어요. 그래서 길이라는 개인전을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2011년에 그런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생기지 않아서 전시하지 못하다가 지금 실현하게 됐어요.

 

길이라고 하면 시공간으로 생각을 해봐야 해요. 조형의 길, 인생의 길. 아니면 물리적 길이든 시간적인 길이든.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가는 거니까 공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디로 가느냐 자체가 시간적인 측면도 있죠. 인생의 길을 쭉 걸어온 거죠. 그 인생의 사람의 (시간적인) 20대 30대의 길 뿐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돌아다니고 관심 가졌던 것들의 길, 그것도 길인 것 같고. 그동안 작품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왔는지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 그것을 중심으로 전시를 해보자, 물리적인 길도 물론 있고. 길 위의 수행자라고 내가 말을 했으니까 내 말에 책임을 져 보자. 그래서 전시를 시작한 거예요.






아리랑 –기쁜날   목판화   42x62cm   1992

 


 

안대웅 : 약간은 회고전 측면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신장식 : 아직 회고전 할 나이는 아니죠. 다만 이제까지 해왔던 작품이 어떻게 전개될까 라는 의문점이 자신한테도 들고, 그동안 앞으로 갈 길보다는, 전시라는 게 왔던 길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에서, 그리고 앞으로 가는 길은 모르니까. 가는 길을 예감할 수는 있겠죠. 조용히 나의 작업의 길을 이것이 맞는지 틀린지, 반성도 좀 해보고.

 

그러니까 조형의 길을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까. 첫 번째 해본 것이 ‘아리랑’이고, 두 번째가 ‘금강산’ 시리즈이고, 금강산 다음에 해본 것이 불교 작품들, 그 다음에 ‘불교’라는 게 뭘까 관념적이고 인도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그것을 찾아다니면서 발견했던 ‘세상 속의 길’, 그 길을 통해서 히말라야에서부터 앙코르왓트를 보러 갔는데, 중국 황산, 서안, 그리고 평양. 처음 평양을 가봤었거든요. 세상 돌아가는 흔적들을 작품으로 남겼죠. 작품에 어떤 길을 다녔는지, 흔적이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관심이 있는 게 지구별에만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더라고요. ‘우주’. 달, 해, 달, 그 다음에 별 이런 것인데, 이거저거 해가지고 꽤 많더라고요. 어쨌든 COSMOS가 다섯 번째에요. 그 다음, 제 그림엔 꼭 ‘촛불’이 들어갔어요. 아리랑 시리즈에서도 촛불을 ‘아리랑-기원’이라고 해서 넣었거든. 그 촛불이 우주랑 결합이 되고 해서 촛불 작업이 꽤 많아요. 근래까지.

 

안대웅 : 정리 하자면 이 전시는 (1)아리랑 (2)금강산 (3)불교 (4)세상 속으로 (5)우주 (6)촛불로 구성되겠네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 작품 세계에서 계속해서 반복 변형되어 등장하는 모티브가 있는 것 같아요. 아리랑 같은 초기작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신장식 : 대학원 시절에 했던 작업은 신구상회화 비슷한 것을 했어요. 프랑스의 누벨 피그라숑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러다 제가 88서울올림픽 미술 조감독 했다고 했었죠? 88올림픽 미술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것을 많이 공부하게 됐어요. 올림픽 때 세계인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운 것을 많이 알려주자 라고 했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 민속에 나오는 내용, 음악은 아리랑, 뭐 그리고 민요 그러면 옷은 한복 입어야 되겠죠? 색깔은 전래에 나오는 색을 써야 될 것이고, 누가 봐도 또 대사와 특수효과도 그것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1년 동안 연구했죠. 그러면서 우리 민속에 숨어있는 조형적 언어, 내용 그것을 현대미술로써 하는 게 나의 미술의 길이다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럼 이 주제를 정해야했는데, 고민할 것도 없이 아리랑이었어요. 아리랑이라는 것이 민요이지만요. 아리랑 뜻이 뭘까요?

 







 아리랑 –생명력   목판화   42x62(cm)   1992

 

안대웅 : ...글쎄요? 언뜻 떠오르지 않네요.

신장식 : 금방 안 떠오르죠?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인데. 그걸 국문학자들이 20여개의 학설이 있어요. 아리설, 알영설, 아령설. 아리설은 메아리이거든요? 산에 가서 메아리가 아 ~하면 메아리가 산의 울림 같은 것이잖아요. 민요니까. 민요 아리랑은 우리 정서에 맞는 울림의 노래다. 이런 뜻이겠죠? 아령설은 일제 강점기 때 고난당해 러시아로 연변으로 넘어갔잖아요. 원래 정선 아리랑이라는 것은 고려 때 유신들이 왕씨들이 다 죽었으니까 정선으로 도망갔어요. 강원도 정선이면 아무도 안 오지. 괴로웠겠죠? 그래서 정선 아리랑이 나왔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한의 정서가 있긴 한데. 알영설은 박혁거세 난생설화에서 나오는. 알영은 알에서 나왔던 노래, 그걸 노래한 것이 오늘날의 아리랑과 연결이 된다.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맞다고 하기 보다는 우리의 민요의, 영화도 있고, 한국인의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리랑이 아닌가. 노래뿐만이 아니라, 그래서 미술에서도 민속의 색깔이나 이런 것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런 것을 연구해서 현대 미술로서 표현해 보면, 아리랑 시리즈를 한 겁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연꽃, 구름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가잖아요. 이런 것을 엮어서 뭔가 희망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보자 이런 것이고.

 

안대웅 : 한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기쁨을 담을 수 있다, 아리랑이?

신장식 : 왜 희망을 언급 하냐면, 아리랑 하면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퇴폐 아리랑을 작곡 해가지고 유행을 시켰어요. 아리랑이 끈질기게 한민족에 어떤 생명력 같은 것이 있어요. 퇴폐적인 것을 해서 아리랑을 타락시켜야 자기네들이 식민지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래서 그런 걸 만들려고 했거든요. 물론 고려, 아리랑에 고려 유민들의 한이 있고, 이런 것들이 있지만요. 그런 것들 속에 희망이 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고개를 넘어가는 거거든요? 그리고 나를 버리고, 즈려밟고 넘어가소서 소월의 시, 그것도 아리랑이에요 사실은. 그러니까 러시아로 경상도 여기서 수탈 때문에 못 사니까, 러시아로 넘어가니까 고개를 넘어가잖아요. 그러니까 아리랑의 한의 정서. 패배의 한의 정서가 그 시대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지만, 오늘 입장에서 희망의 정서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해석이에요.

 

안대웅 : 아리랑 시리즈는 얼마나 오랫동안 작업하신 건가요?

신장식 : 아리랑 시리즈 5-6년 했어요. 소나무도 파 보고... 경복궁 같은 경우에는 아리랑 역사에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인데, 잘 안 알려져 있어요. 명성황후가 시집을 왔는데, 시아버지가 대원군 아니에요. 대원군이 경복궁을 짓는데, 무리해서 경복궁 재건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을 때에요. 명성황후가 시집와서 자기가 할 일이 없잖아요. 그 당시에 전기불이 있었어요? 없었잖아요. 그래서 전국에서 기술자 목수 일꾼들 다 저녁이 되면 공사를 못하니까, 저녁때면 불피워놓고 명성황후가 장기자랑을 시켰어요. 뭔가 막걸리도 돌리고 그랬겠죠. 그러니까 정선 아리랑 부르고, 밀양의 쾌지나칭칭나네 하고, 남도, 진도 아리랑 부르고 아리랑이 경복궁을 지으면서 뭐라 그럴까 노래자랑이 꽃피웠다고 그럴까? 명성황후나 조선의 운명이나 다 조선의 비극으로 갔기 때문에 한의 정서가 더 느껴질 수 도 있어요. 하지만 그 경복궁 중건 이후에 돌아간 사람이 각지의 아리랑을 다 들었으니까, 각지에서 새로운 아리랑들이 나타납니다. 지역마다. 아리랑 민요의 역사에서 그런 것이 있어요. 그래서 경복궁 시리즈를 회화로는 큰 그림 많이 그렸거든요. 근데 옛날에 조선 총독부가 경복궁 안에 있었으니까 총독부는 시꺼멓게 많이 그렸어요. 경복궁은 밑에서 에너지가 생명력이 올라오게 그렇게 표현했었어요.

 

또 평생 경복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다음에 소나무 이런 거 산에 다 모여 있으니까. 경복궁 뒤에 북한산, 북악산이 있잖아요. 그래서 산을 그려야겠다 했죠. 아리랑의 다음단계는 산인데 어느 산을 그릴까? 설악산은 김종학 선생이 그리고 있고, 북한산은 여러 명이 그리고 있고 내 고향 대구의 앞산은 그릴 가치가 없죠. 나랑 연결되어 있는 산이 없는데,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근데 바로 휴전선 넘어 금강산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그려야겠다 생각했어요.

 

안대웅 : 자연스럽게 아리랑이 확장된 결과가 금강산 시리즈였던 거군요?

신장식 : 그 이야기는 해야겠네요. 희망의 아리랑을 하면서 그 때 산을 그리려고 하는데, 조선반도 반 도강이 났으니까. 금강산이 생각 난거에요. 아무도 안 그리고 있잖아요. 금강산을 그린 게 조선시대 겸재부터 시작해서, 엄청 많이 그렸어요, 일제 강점기 소정 변관식까지 그렸거든요. 그 다음에 그린 사람이 없어요. 소정 변관식은 금강산 갔다가 삼선암 그린 그림은, 1959년인가 그래요. 그니까 해방 이후에 그린 것입니다. 기억으로 해서 그린 것이고, 물론 변관식은 답사는 한 사람입니다. 그니까 금강산도라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 당시에 아무도 안 그리고 있는 겁니다. 근데 내가 왜 못 그려? 아리랑인데, 아리랑 고개를 넘어, 휴전선이 아리랑고개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금강산 간다 그렇게 생각한 거에요. 이거다 싶어 금강산을 일 년 동안 연구했어요. 자료 다 모으고 사진 모으고 그때는 인터넷이 없을 때니까. 온갖 조선시대그림, 사진, 일본 사진가가 금강산 가서 찍은 사진, 일제 강점기 때 관광사진첩 그런 것을 다 모아서 연구해보니까 그릴 수 있겠더라구요. 한 일 년 되니까. 그게 93년도인데, 세월이 흘러가지고 이콘 갤러리에서 처음 발표했고 표화랑에서 금강산 전을 크게 열었어요. 금강산 그리는 사람이 있다 하면서 보도도 많이 되고 논란도 많이 되었어요. 가보지도 못하는데 왜 그리냐고 그랬을 때, 한국에서 금강산이 얼마나 중요하냐고, 근데 못 가본다고 못 그리냐구, 나 일 년 동안 연구했다고, 연구한 결과로 관념적인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 그게 먹혀 들어갔어요. 그런데 세상이 참 재미있는데, 그리고 2-3년 지나고 나니까 정주영씨가 이북에 소를 보냈어요. 금강산 바로 밑에 동네에서 어릴 때 집 나올 때 소한마리 들고 도망쳐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 소 팔아 밑천을 해가지고 현대그룹을 일궜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 천마리 갚는다고 이벤트해가지고 김정일이 오케이 해가지고 정주영씨가 소 1001마리 끌고 가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됩니다. 내가 금강산을 그린 5년 후에 1998년에 금강산 관광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배타고 갔었다구요. 아리랑 고개를 넘듯이 금강호 타고 금강산 가니까. 이북 애들 개판이죠.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 금강호에서 자고 3박4일간 있었는데 나는 신났지 뭐, 사진 수 천장 찍어 왔어요. 스케치할 시간이 없으니까. 일부 스케치 한거는 배에서 수채화로 그렸고 사진으로 찍고, 가져와서. 그렇게 해서 그림이 시작됐어요. 그러고 나서 금강산 관광이 10년 동안 이루어졌어요. 박왕자씨가 2008년에 총 맞고 돌아가시면서 금강산 관광이 끝났지. 그래서 딱 십년이에요. 나는 십년동안 열 번 정도 갔어요. 학생들, 대학원생들 데리고. 98년부터니까 국민대 미술학부 생길 때 부터에요. 그해 11월 19일, 18일에 배타고 19일에 금강산에 처음 올라갔는데, 그렇게 해서 금강산 그림의 세계가, 5년 전에 관념적으로 그렸던 것이 실경풍경이 된 거에요. 직접 스케치하고. 지금까지 쭉 계속 된 거예요. 박왕자씨 사건나기 직전에 내금강까지 열었거든요. 나는 그거 열었을 때 무조건 첫 번째에 갔었거든요. 근데 지금을 갈 수 없지.






금강산-만물상   27x38cm   종이에 먹 아크릴릭   1999

 



 

여하튼 금강산의 이름이 금강이잖아요? 금강경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금강산의 주봉이 비로봉이에요. 비로자나불 그 앞에 우리가 옥류동 계곡 올라가는 그 쪽 옆에 세존봉에 부처님 말씀 하는 거에요. 금강산에 표훈사 저 온정리에 제일 앞에 신계사, 내금강에 표훈사 장안사 정양사 묘길상 온갖 절들이 다 있어요. 그니까 불교를 모르고 금강산을 깊게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연히 나옹화상이 만든 조각상 불상, 신계사 같은 경우에는 6.25 때 다 날라가고 장안사도 날라가고 신계사는 조계종이 복원 돈 대가지고 복원되어있거든요. 그 다음에 표훈사는 6/25 때 하나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그런 것을 둘러보면서 불교 공부를 확실히 해야겠다. 나옹화상의 아미타불은 나도 몰랐으니까. 우리 민속의 대부분은 불교적인 내용이에요. 아리랑이 민속에서 출발했다고 했으니까 물론 조선시대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신라, 고려를 내려오면서 물론 불교적인 내용이에요. 석굴암이 정점인거고. 불교를 깊이 있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안대웅 : 그렇게 금강산에서부터 불교로 넘어가신 거군요?

신장식 : 최태만 선생이 간다라 불상을 연구하고 그래서 둘이 같이 여행가고 했죠. 티벳 여행도 가고 실크로드 완주했죠. 중국 서안에서 돈황까지 호탄, 카슈가르, 파미르고원 넘어 파키스탄 넘어가서 빈 라덴 죽은 곳 넘어서, 죽기 살기로, 인도도 2번이나 갔어요. 여행을 가다보니까 파키스탄 박물관에서 깨진 간다라 불상 너무 멋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렸죠. 그런데 이 불상의 후광이 있어야하는데 깨진 것은 그런 건 없으니까 안드로메다를 그렸죠. 우주적 명상이니까. <삼매>라는 전시를 했어요 그때. 깊은 명상, 그런 것을 삼매라고 하거든요.

 

불교 그림 배경으로 즐겨 쓰는 것 중에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있어요. 돌에 새긴 천문도,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인데 조선 초의 국보에요. 민속박물관 안에 비석이 있어요. 그 빛이 잘 드러나도록 시각적으로 다시 그린 거죠. 그림엔 비천상도 자주 나오는데, 돈황에 나오는 비천상을 그렸어요, 좌우대칭으로. 이것은 우리의 백제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죠. 또 한 번은 금강산 이북 문화재인데, 관음보살, 선재보살이 출토 됐어요. 조선일보에 나왔던 사진을 스캔 해놨다가 그림에 써먹었어요. 이렇게 부처 뒤에는 별이나 우주 이미지를 즐겨서 넣었어요. 물론, 우주도 내가 상상해서 그린 것은 아니죠. NASA에서 컬러로 사진 좋은 것이 많이 나왔어요. 허블망원경이 수천 장을 찍은 것을 결합시키면 이런 이미지가 선명하게 나와요. 그중에 일부분을 좌우대칭으로, 우측이건 좌측이던, 실제 좌우대칭으로 그려서 미소가 우주로 향하게끔 했어요.

 


​​

삼매 Samadhi 107x41cm 캔바스에 아크릴릭 2016

 

 

 

안대웅 : 듣고 보니 선생님의 작품 세계는 직접 눈으로 목격하신 광경과 상상속의, 관념적인 풍경이 항상 교차하고 있는 듯합니다.

신장식 : 그래서 불교를 공부 하면서 여행을 다녔죠. 다 길이죠 뭐, 실크로드도. 인도에 가면 부다가야라는 데가 있는데, 부다가야에서 부처님이 보리수, 전정각산, 고행 6년을 했죠. 그런데 고행으로 안 된다 해서 내려와서 나무 밑에서 편안하게 수행을 했어요. 삐쩍 말라서 굶어 죽을꺼 같으니까, 수자타라는 아가씨가 우유죽을 가져다 줘요. 부처님이 그걸 드시고 건강을 회복을 해요. 깨닫거든? 깨닫고 6일간 더 앉아계신다고 그래요. 깨달음의 있을 때의 불교를 다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새벽에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근데 새벽의 밝게 빛나는 별은 금성이거든요. 금성은 요즘 과학으로 부처님 생일날, 2300년 전으로 돌아가서 지구 자전을 계산해서 따져본다면 별로 의미 없는 일인거 같고. 아무튼 별을 보고 유성이었는지 그건 모르지만은 기록상, 별을 보시고 깨달음이 깊어졌다고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안대웅 : 민족성이나 한국의 아름다움, 한국성 이런 것에 대한 관심에서 불교쪽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고 봐도 될까요? 겉보기론 굉장히 특수한 것에서 보편적으로 관점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신장식 : 그러니까 수구적 민족주의 같은 것은 굉장히 나쁜 거예요.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우주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개성으로서는 괜찮고, 민족성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거조차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부처님이 부다가다에 있는 실크로드부터 시작해서 한국까지 오는데, 석굴암까지 7,800년이 걸렸는데. 그게 다 인간의 사는 모습이고, 행복이라는 것이 연결되어 있을 때 행복한 거지.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인간이 인간답지 않아요. 호모샤피엔스,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부처님 말씀이 맞는 거에요. 연결되어 있는 것, 자연물, 무생물과 동물과 풀과 세계와 역사와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연결이 안 돼 있는 것은 그건 가짜인거에요. 개별성을 큰 연결 속에서 개별성을 강조해야하는 거지. 우리 불교는 인도나 중국 불교의 아류인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죠. 오히려 더 잘 해석했어요. 어떤 좋은 것이 있으면, 해석의 문제에요. 해석을 얼마나 잘하는지, 또 얼마나 가시화하는지. 석굴암도 최고에요. 제가 석굴 본 것 중에, 전정각산 또 인도의 수많은 석굴들을 봤지만은. 그게 그런 식으로는 다른 거니까. 비교해서 이게 더 낫다 하는 것이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게 연결인 거고 그게 길이고.

 

안대웅 : 여행은 보편을 향해 트이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거고요.

신장식 : 엄청 많이 한 거지. 실크로드 여행. 그 다음 뭐 실크로드가 서쪽, 실크로드만 있는 게 아니고 해양 루트도 있거든. 혜초가 배 타고 인도 나란다 대학에 갔거든요. 결국은 돌아올 때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가 실크로드 따라 중국 저 돈황에서 죽었잖아. 신라까지 못 오고. 근데 돈황에서 혜초의 글이 발견됐기 때문에 우리가 혜초를 아는 거지. 신라 사람. 그런 거를 뭐 다 여행 다니면서, 그거 해양 루트는 오키나와, 오키나와도 몇 번 갔었고. 그 다음 동남아 뭐 그래서 뭐 그 루트를 다…, 주로 최선생이랑 나랑 둘이 여행했어. 허허. 그래서 그냥 관광 다닌 건 아니었어요.

 

안대웅 : 여행지에서 습득한 이러저러한 물건도 전시하실 계획이라고 하셨어요. 이런 것도 길이라는 주제에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신장식 : 붓 들고 있는 병마용, 인도에서 산 저 이파리 있는 불상, 하여간 이런 거 다 전시할 거야. 길이니까. 비너스도 갖다놓고, 징 같은데 미얀마에서 산거거든. 또 고구려성 백암성에서 내가 몰래 주워온 돌. 이게 좀 민족성하고 관계있죠. 우리 영토가, 아리랑의 영토가 끝까지 만주에 닿았던. 이런 걸 가져오면 안 되는데 진짜 가져오고 싶었어.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성지 동독의 그 라이프치히 교회에서 파는 십자가. 스토리가 한 개 한 개 물건에 다 있으니까.

 

안대웅 : 자연스럽게 세상 속으로란 소주제와 연결되네요.

신장식 : 뭐 궁금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니까. 아비뇽 아를르의 고흐가 귀 자르고 입원했던 병원이나 티벳에 갔을 때 스케치, 지프차 타고 끝없이 이 사막 같은 고원을 다닐 때 그때 하늘의 그 한 모습. 히말라야...




ANGKOR THOM GATE    100x70cm   종이위에 사진 드로잉   2002

 

 

 

안대웅 : 세상 속으로에 속하는 작품은 <다섯빛깔 룽다와 흰색 까닥>이란 책의 삽화이기도 하죠?

신장식 : 그렇죠. 거기 다 삽입되어 있어요. 여행 때 만난 사람들, 그 고호 정원, 앙코르와트, 스핑크스. 뭐, 이집트에서도 여행 많이 한 거지. 중국 황산. 평양 양강도 호텔에서 아침 새벽에 본 바깥도 그렸어. 진짜 평양 맞더라고. 넓직해요. 시커먼 도시지. 근데 막 물안개가 끼어가지고 안개가 막 겹겹이 부석사에서 멀리 산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뭐, 그렇게 여행 다녔으니까.

 

안대웅 : 그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우주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되는 거군요.

신장식 : 아폴로 우주인들이 쓴 책을 읽어봤어요. 그에 따르면 가장 감격적인 장면은, 달에서 갑자기 지구가 떠오르는 거래. 그걸 보고 다 울었대. 아, 우리가 저기 사는구나. 우리가 우리 사는 거를 그냥 관념적으로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은 실제로 본 거니까. 그니까 꼭 한번 그리고 싶었어. 지구에 우리 천상열차분야지도나 북두칠성, 비천상도 결합시키고 그랬죠.

 

안대웅 : 선생님 작품에 비천상도 꽤나 자주 등장하는데요. 전 도교인지 불교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신장식 : 다 불교지, 비천상은. 우리 동종에 비천상을 유난히 많이 새긴 이유는 소리가 울려 펴지는 게 뭐 그 느낌이 비천상 같다는 거겠지. 뭐 우리말론 선녀지. 선녀가 나타나는 거지. 그래서 동종에 보면 꼭 있어. 그 비천상이 민속적인 게 아니고 불교적인 거고, 한편으론 중국에 비천상이랑 우리 비천상이랑 좀 달라요. 복식도 다르고. 무섭게 느낄 수밖에 없지. 북두칠성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우리 민족한테는 복을 주는 의미가 많고. 특히 장수하라. 생명에 대한 그런 의미 같은 게 많이 있으니까.

 

안대웅 : 우주, 별은 마지막 소주제인 촛불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듯 보여요. 둘 다 빛나잖아요.

신장식 : 옛날부터 내 작품에 촛불이 간간히 계속 나오는데, 여러 가지 촛불의 의미가 있을 수 있겠죠.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봉화에 갔었거든. 그러니까 아직 장례 준비가 안돼서 기다리고 있는데 시민들이 화단에 초를 꽂아 놓더라고. 울컥하더라고. 슬픈 촛불이죠. 그걸 그려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때인가? <노란 선을 넘어서>라는 전시를 했었거든. 또 지난 연말에 광화문에 촛불, 하나는 그려야 되겠다 싶어가지고 조그만 걸 그렸어요.

 





촛불 백두산 북두칠성 달   130x80cm   캔바스에 아크릴릭   2017

 

 

 

근데 촛불은 또 촛불 이야기가 좀 있어요. 젊었을 때 파리에 갔는데 노틀담 사원에 딱 처음에 들어가니까 앞에 촛불이 쫙 있더라고. 굉장히 가슴이 뭉클한 거야. 이게 뭐, 문화, 동양 서양 떠나가지고 그냥 뭐... 우리는 할아버지 제사 지낼 때 촛불부터 켜잖아요. 결혼식 할 때 엄마가 와서 촛불부터 켜고 하잖아요. 정화의 의미가 있거든. 이 촛불이라는 게. 그, 촛불을 켬으로, 결혼식이나 제사지낼 때 촛불을 켜고 시작하는 것은 사악한 걸 물리치고 경건한 마음에 제사를 지내든지 결혼 축복도 그렇게 하는 거니까. 촛불하면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근데 노틀담 사원의 촛불을 보니까 (여기 물론 성당이니까 경건하죠) 당연 똑같구나. 이거는. 굉장히 감동했어요. 그래서 촛불을 도상화해가지고 그 목판화 초창기에도 많이 하고 한 게 그때 파리에서 본 거예요. 내가 어릴 때 봐왔던 그 촛불을 재인식한 거지. 소나무 밑에 촛불도 종종 그렸는데 그거는 개인적인 일화가 있어요. 군대에 갔을 때 야간 행군하는데 너무 힘든데 계곡에 촛불이 있더라고. 야, 촛불 밑에 저, 굿 했구나. 사과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앞에 소나무가 있는데 사과가 있더라고. 먹었지. 너무 꿀맛이었어. 그래서 그 촛불을, 안 꺼지게 바위사이에 차려진 그 인상을 그려서 한 작품이 있어요.

 

근데 하나 재미있는 건, 촛불은 실제로 가운데가 제일 밝고 밖으로 갈수록 옅어지잖아. 밝고 노란색, 갈색 이렇게 번져나가는 게 시각적으로 맞아요. 근데 관념적으로 생각하면 촛불이 빨갛지. 그래서 내 촛불은 도상이니까 빨갛게 하고 주변은 일단 하얗게 그 다음에 은색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어두운 거는 그렇게 했다고. 아무도 그거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화가는 이상하게 또 그런 고민을 하는 거야.

 

안대웅 : 듣고 보니 촛불에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경험적인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네요. 여기까지 해서 총 여섯 가지의 이야기가 풀어지겠군요. 상당히 인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물론 아까 전에 회고전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상당히 회고적인 면도 있고요. 그만큼 긴 길을 걸어오셨다는 거겠죠.

신장식 : 그동안 한 작품을 저런 식으로 그루핑이 되더라고. 그래서 무더기 무더기 이렇게 여섯 무더기로 하면, 이렇게 연결돼서 길이라는 주제에 괜찮은 전시가 될 것 같아서. 큰 거는 할 수가 없고 다 요렇게 작은 작품이에요. 물론 나중에 아마 큰, 이런 전시도 잘 해보면 또 반성을 해보면 언젠가는 나도 뭐 원로가 되고 어, 현대미술관이라든지 어디 큰 데서 회고전을 대대적으로 한 번 할 때가 오긴 오겠지. 그럴 때도 아마 지금 이번에 한 거가 크게 다른 거는 아니니까. 물론 작품이 소품이 아니라 그때는 대작들이 되겠지만, 이런 구조로 가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나는 길 위의 수행자이다.’ 저 얘기할 때 <길> 전시를 하려고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꽤 된 것 같아. 그래서 결국 이번에 뭐 작지만은 해보는 거지. 한번 점검하는 거지. 우리가 뭐 또 관객들에게 길이라는 거 한번 인생에 그 시간적인 길, 공간적인인 길 그 다음에 자기 관념 속의 길 이런 걸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내 조형 세계의 흐름, 길 한번 점검하는 뜻도 되고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이 전시 기획이 됐어요. 작지만 한번 해보려고.

 

끝.

 

4. 작가약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서양화전공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1987-88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개폐회식제작단 미술총괄보

1998-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

2004-07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종합예술대학원 원장 역임

 

1989-17 개인전 33회

2017 길, 갤러리도스, 서울

2015 “12 Scenes of Mountain Kumgang”, New York SPACE IN ARTS/ New York

2011 “신장식전, 하정웅 기증작품”,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08 “생명력–Vitality”, CITE INTERNATIONALE DES ARTS, 파리

2003 “10년의 그리움, 금강산”, 사비나미술관, 서울

1995 “금강산”, 표갤러리, 서울

1991 “아리랑”, 신세계미술관, 서울

1989 제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공간미술관/ 포스코/ 김포공항/ 삼성의료원 / 문예진흥원/ 서울대병원

대영박물관/ 와카야마 현대미술관/ 성곡미술관/ 국제방송교류재단/ 국민대학교박물관

대전시립미술관/ 거창문예회관/ 사비나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모란미술관/ 고려대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미술은행/ OCI미술관/ 전등사

한국대사관(인도네시아, 덴마크, 아일랜드, 베트남)/ 서울행정법원/ 서울동부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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