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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노력했는데,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하얀 설원 같은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독특한 느낌의 레섹 스쿠르스키 회화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 볼 수 있다. 갤러리JJ에서 2015년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전시 이후 2년만에 그의 개인전을 다시 마련하였다. 스쿠르스키는 폴란드 출신 작가로서, 독일에서 거주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1995년 폴란드 문화예술부의 예술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에서의 전시를 통하여 세계 무대에서 확고한 자신의 예술적 입지를 구축하였고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스쿠르스키는 삶의 순간들을 낯선 시각으로 관조한다. 마티에르 있는 백색을 중심으로 대부분 흑백 모노톤의 간결한 묘사로 우리네 일상의 여느 장면들을 압축적이면서 극도의 절제된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는 즉각적으로 포착된 순간에 대한 ‘회상’이자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때로는 유쾌하거나 로맨틱하거나 풍자적이며, 궁극적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며 함께 나누고자 한다.
신작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컬러가 들어간 일련의 작품을 선보이는 한편, 배경에 있어서도 예전에 비해 자연 풍경보다는 펍이나 가게 같은 사회적인 장소가 더 많아졌다. 전시 제목 ‘에피파니(Epiphany)’는 작품 타이틀 중 하나로써, 평범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하여 갑작스럽게 진실이 드러나기도 하고 일의 전모가 파악되기도 한다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간결해 보이지만 그의 작품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철학적 정서가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 때로는 인간의 행복한 모습, 외로운 모습, 때로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과 정지, 나타남과 사라짐, 침묵 사이로부터 낯선 세계가 문득 열린다.
White, Void
“’텅 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텅 빔’은 결핍이 아니다. 조형적인 구현에 있어서 ‘텅 빔’은 찾고, 기투하는 장소들의 건립의 방식으로 작용한다.”
–『Die Kunst und der Raum』 하이데거 1969 p.12
지워진 하얀 배경은 우리를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작가가 불러오는 백색 여백의 추상적 세계는 실은 사소한 상황들이나 전형적인 일상이지만 스쿠르스키는 그만의 방식으로 절제된 아름다움과 낯선 감각을 선사한다.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공허한 여백과 그 속의 수수께끼 같은 작은 인물들의 배치와 구성이다. 캔버스 내에서 출몰하거나 사라질 듯한 작고 분명치 않은 형상들은 단지 약한 실루엣만으로 거대한 보이드에서 내러티브를 만들며, 이 또한 미약한 정보만의 추측으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증대시킨다.
작가는 아주 날카롭게 특별한 순간들을 묘사하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의 디테일이나 컬러의 표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각할 때는 항상 하나의 배경 위에 하나의 형태가 형성되어 있다. 모든 것은 나의 주의(注擬)가 향하는 방향에 달려 있고 그 나머지는 무화(無化)되어 희미해진다(사르트르 『존재와 무』 中). 결국 배경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지워졌고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많은 공간을 남겨두었다. 사라질 듯 연약한 형상들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해 힘을 받고 그래서 스쿠르스키의 그림자 같은 장면들이 주는 잔잔한 여운은 오래 간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끝없는 순백색과 마주한다. 가까이 보면 두터운 물감의 붓 자국이 선명하게 레이어를 이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색이 없을 때 장면에 훨씬 잘 집중할 수 있고 그래서 백색은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좋은 도구다. 백색은 항상 같은 것이 아니라 무한히 다양하며 각 작품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백색을 띈다.” 그는 하얀 색이 지닌 고요함과 침묵, 정신성, 불가해함 등 그 특성을 놀랍도록 잘 활용하여 응축된 형식으로 반영하였다. 순백의 공간은 오히려 많은 여지를 준다. 하얀 보이드는 조용하지만 결코 비어있지 않으며 이야기는 열려있다.
Miniature
익숙함 속에 낯선 순간들이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것인가. 순백색의 정제된 화면을 통하여 평범한 여느 장면들이 무심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보인다. 이미지와 정보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스쿠르스키는 특별한 하나의 이미지에 집요하게 집중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상황들을 늘 찾고 있으며 어떤 특정한 순간을 잡아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화면은 영화의 스틸 장면이나 스냅샷처럼 느닷없이 정지된 순간이자 한편으로 의도된 미장센의 화면 같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점 또한 독특하여 장면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들 두어 익명성을 유지하고 디테일은 사라져도 좋은 즈음을 상정한다. 인물의 실루엣들은 한 곳에 집중되고 배경은 지워졌으며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붓 자국이 주는 약간의 암시를 통해 거리 혹은 카페 등의 장면으로 추측하지만 그 역시 분명하지 않다. 알 수 있는 것들의 대부분이 제거된 순백색의 보이드 속, 그래서 작은 인물들이 벌이는 사소한 행동들은 더욱 생생하게 잘 보이고 고요함마저 감지된다. 광범위한 백색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 침묵이 공명하는 가운데 작은 존재들이 빚어내는 몸의 언어. 백색의 그림자들과 캐릭터들의 움직임으로 작품들은 생명력을 얻는다.
이들은 화면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그 작은 외형으로 전체를 장악한다. 작품들에서 늘 인물들은 혼자가 아니라 둘 이상 혹은 다른 것과 함께 있다. 비록 공간 부재는 무중력의 우주공간 같고 밖으로 연장된 듯한 무한한 빈 공간에서 인물들은 극히 미미하고 고립되어 보이지만, 이끌어주는 것이 없는 ‘텅 빈 자유Empty Freedom’ (사르트르)를 극복하고 타인과의 중력을 느끼며 서로 관계하고 살아가는 존재임이 느껴진다. 미니어처 같은 형상들은 비록 불분명하고 연약해 보이나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삶의 무대는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고 견고하다. 보편적 삶에 대한 그의 추상적 터치는 세부나 테크닉 등 모든 수다스러움을 벗어버리고, 조용하게 익숙한 세계 너머로 유도한다.
회화는 침묵과 고요함이라는 것이 실제 물질 즉 물감에 스며있어서, 보는 이는 그 물질성을 통해서 화가의 몸짓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고 했던 존 버거(John Berger)의 말처럼 평범한 찰나적 순간은 그의 시각을 거슬러 즉각적으로 우리 눈앞에 놓여있다. 기억 속 혹은 방금 지나친 듯한 잔상 같은 것으로라도.
글ᅵ 강주연 GalleryJJ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