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6-12-09 ~ 2016-12-30
이인성
무료
062-412-0005
<큐레이터 전시서문>
어느 젊은 예술가의 우울한 초상(肖像)
올해 제1회 갤러리 리채 청년 작가로 선정된 이인성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화폭에 옮겨 놓으며,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암시적 조형 언어를 쏟아낸다. 그의 작품 속 흐릿한 형상의 인물과 풍경은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공허함’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평소 우리들이 경험하는 ‘실제의 풍경’을 벗어난 ‘상상적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친 현대인이 가장 안락해야 할 침대는 모노톤으로 그려져 있고, 인물들의 흔적만 있을 뿐, 실재(實在)하는 포근하고 따뜻한 이부자리의 이미지완 동떨어진 그의 ‘회색 침대 시리즈’는 관객들에게 음습한 느낌을 준다. 또한, 2016 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 수상작품인 <아버지의 목발(2016)>에서 보이는 소년은 서양식 승마복 유니폼을 입은 채 자신의 몸집에 비해 비교적 ‘큰 삽’을 들고 있으며, 이 때 같이 등장하는 아버지는 고뇌에 찬 일그러진 표정으로 ‘묘목 심기’를 돕고 있다. 얼핏 보기엔 소년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그 두려운 상황을 기성세대와의 연결고리를 통해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로 보이지만, 소년의 미래에 과도하게 간섭하며,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욕심’을 표현한 이인성 작가만의 ‘상상적 이미지’이자, ‘의미의 공간’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그의 이전 작업인 ‘나무 심는 사람들(2007)’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의미는 더욱 구체화되어 발전돼왔음을 알 수 있다. 작품 속 보라색 얼굴의 세 남자는 눈동자가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삽질’을 하고 있는데, 모두 작업복이 아닌 지나치게 깔끔한 서양식 양복을 입고 있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시 속 현대인들의 자화상. 끊임없이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과 목적의 부합은 이뤄지지 않는데서 오는 보라색 고독과 불안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이인성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이렇듯 목적 없는 항해(<낚시터(2016)>)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비오는 날(2016)>)으로 고립된 공포 속에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가? 2011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된 이후, 북경에서 제작한 작품들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등장하고 있는 ‘주황색 점(Orange Dot)’은 이인성 작가의 오랜 물음(“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을 압축해 캔버스 곳곳에 던져지고 있다. 때로는 하나의 점으로 보일 듯 말 듯 그려져 인간 군상들의 ‘감춰진 욕망’을 암시하기도 하고(<어느 오프닝(2016)>), 흐르는 여울 속에 묻혀 있어 ‘이루지 못하고 놓쳐버린 무언가에 대한 안타까움’을 은유하기도 한다(<징검다리(2016)>. 가장 최근 작에서는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1814-1875)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만종(L'Angélus)(1857-1859)>의 구도를 차용해 이인성 작가만의 <만종(2016)>을 재구성해 보여 준다. 그림 속 인물들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역시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올리고 있으며, 그림의 우측 하단에 그려진 ‘주황색 점(공)’은 바구니에 담겨 ‘생(生)의 감사함을 표시하는 의식(Ceremony) 뒤에 감춰진 인간의 본질적 욕망’ 또는 ‘하루 하루 추수(수거)되는 일생의 1차 목표’를 가리키고 있다. 이인성 작가는 삶의 다양한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 제거된 인간들의 본질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법으로 그만의 비현실적 공간을 설정하여 하나의 장면을 구상해내고, 이를 캔버스에 구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의 심상(心想)에 맺힌 이미지를 현실화시키며, 그만의 <His•topia>를 재구성한다.
이번 전시 제목은 ‘그(작가 자신)’를 가리키는 ‘He’의 소유격인 ‘His’와 세상엔 없는 완벽한 이상적 공간을 가리키는 ‘유토피아(UTOPIA)’ 또는 그 반대의 의미를 지닌 ‘디스토피아(DISTOPIA)’의 접미사인 ‘-topia’를 결합해 이인성 작가만의 단어 ‘히스토피아(His•topia)’를 창조해냄으로써 그의 작품 세계 속 상징 세계를 함축해 보여주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자아의 인지 범위를 넘어 선 낯선 지식에서부터 꿈, 무의식,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이인성 작가의 작품의 주요 주제로 등장하며 현대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존재의 불안, 동요, 그리고 억압된 현실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무지(無知)’ 상태에 대한 혐오와 거부를 통해 자신의 방어체계를 구축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알지 못하는 세계’로부터의 ‘일탈’을 위한 ‘겉치레’는 의복이나 의식과 같은 ‘다름의 절차’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인성 작가는 이러한 ‘드러냄의 세계’가 보여주는 ‘다소 정상적으로 보이는 행동 양식’에 우리가 추구하는 공통된 ‘그 무엇’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인간 본질의 ‘정상성’인 ‘인간성(人間性)’의 회복을 꿈꾸고 있다. 즉, 그가 휴머니티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히스토피아’의 세계이며, 그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그의 세계를 보여주는 길을 끊임없이 보여주며 관람객들의 동참을 이끌어 가고 있는 중이다.
갤러리 리채 큐레이터 박은지
* 전시전경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2bg6A-C2o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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