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박경진 조각 라선영 이인전
사람, 사람
2018-02-28 ~ 2018-03-31
갤러리마크
회화 박경진 작가, 조각 라선영 작가의 2인전 “사람, 사람” 에서는 개인에 집중하지만 그 개인의 절대적 고독과 외로움은 허락하지 않는 작가 라선영의 군상 작업과, 생존이라는 개념을 본인의 생업과 작업으로 담백하게 표현한 작가 박경진의 현장 생존 작업을 한 공간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두 작가의 ‘사람’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시선과 관점은, 같은 공간이라는 제약된 장소 안에서 상대적으로 더욱더 부각되어 풍성한 다채로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 완벽한 연출 :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작가 박경진의 작업은 처음부터 생존‐의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먼 곳 이야기이기에 안타깝지만 '흥미롭게' 접했던 재난이 어느덧 실제 본인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로 스며들어 체감되면서 그의 작업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얽히고설킨 거대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자신의 고민으로 끌어오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겁고 버거운 짐이었기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시야를 좁혀 깊숙한 본인의 이야기로 풀어나가기 시작한 것이 근래 보여지는 작업이다. 생업으로 착수한 세트장(영화, 뮤직 비디오 등)현장을 본인의 작업장으로 가져와 작품으로 담아내고 있다. 생업 현장 모습은 실제 본인의 생존 호흡이 함유된 공간이기도 하기에 치장되거나 세련되게 관념적일 수 없을뿐더러 작가에게는 가장 날 것 그대로의 진솔한 공간일 것이다. 생업과 작업 사이, 붓을 들고 칠하는 동일한 행위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치환이 되는지, 그것이 또한 쉬 가능한지가 작가 입장에서는 어려움보다는 긍정적인 긴장감 내지는 나아가 이제는 안정적이라고까지 작가는 고백한다.
통제된 현장에서 '그렇게 그려야만 하는' 과업 후에 작업실로 돌아와 조각조각 분열된 현장의 모습을 끼워 맞추며 빈 곳을 빼곡히 본인의 표현방식으로 메꾸는 그 밸런스가 작가에겐 좋은 에너지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사람 한 명 한 명 정성들인 섬세한 묘사 대신 한 눈에 거두어들이기 힘겨운 수의 군상 조각들이 부지런히 작가 라선영에 의해 생성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수 70억 명을 제작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은 작업해야하는 인구수에 기함하기에 앞서 개개의 사람들을 모두 다르게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 더 놀랄 만한 부분이다. 게다가 독립된 개체가 아닌 삼삼오오 옹기종기한 그룹들로 산재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나름의 스토리들로 얽혀져 있다. 이들 세상에는 세상사는 이야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이들을 계속 엮어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나무가 지닌 부드러운 수용적 물성이 각기 다른 개체를 표현하는데 있어 더없이 좋은 재료라고 언급하며 재료에 강한 신뢰를 보인다. 각인각색인 작품 수의 여하를 막론하고 시각적으로 부담되지 않는 이유는 실제 사람 형상에서 6:1정도 축소된 크기란 점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30센치미터 남짓의 크기는 다루기 편하고 산발적인 무리형태도 무리 없이 조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크기는 아닌 정도다. 실제 보편적인 인형크기로 만들어진 사람 형상의 물건들은 예로부터 제의적․놀이 등에 사용되었고, 이는 사람의 형상이 그대로 표현 가능함과 동시에 사람에 의해 적절히 제압될 수 있는 심리적으로 편한 크기라고 작가 라선영은 설명한다. 근래에는 나무의 깎인 결이 그대로 보이도록 본 떠 끊임없이 생산되고 복제되어지는 인간의 욕망을 도자조각으로 제작한 작업을 대량 생산하였다. 작가의 의도대로 깎였던 따듯한 사람냄새나는 나무 조각은 사회적 규범과 관습이 개인에게 쥐어준 욕망 덩어리로 수백 개가 복제되어 규칙적으로 나열되어졌다. 그간 올망졸망 이야기가 피어나는 군상들과는 달리, 객관화되고 정형화된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들은 모두 한 곳을 향해 차가운 무표정으로 달려가고 있다.
개개인에 집중하되 사람 곁에는 늘 사람을 두어 절대적 고독과 외로움이 스며들 틈을 허락하지 않는 작가 라선영의 군상 작업과 관념적으로 자연스레 미끌어지려는 생존이라는 개념을 본인의 생업과 작업으로 담백하게 돌린 작가 박경진의 현장 생존 작업이 한 공간에 배치되었다.
작가 박경진의 생업현장에서 세트장의 구조물은 철거하기 가장 손쉬운 나무로 구축이 된 후 작가에게 주어지는데,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구조물 위에 시간을 입히는 일종의 변장 작업을 한다. 이렇게 생업에서 씨름했던 작가 박경진의 나무 구조물은 작가 라선영에게는 완벽히 제어된 세트장 형태로 다시 재현된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세트장 안에는 연출된 사람들과 이야기가 흘러간다. 작가 박경진의 현장에서 시간의 흔적을 껍데기로 입혀야 완성이 되는, 본분을 다하면 즉시 말끔히 제거되거나 또 다르게 쓰여야 하는 나무 구조물들은 작가 라선영에 의해 사람들이 가진 스토리를 더욱 극대화시켜주는 도구로 축조되었다. 어찌보면 작가 라선영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무던히 표현을 다해주었던 것도 나무였다.
주로 생업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을 담는 작가 박경진은 다시 작가 라선영의 생존과 생업의 현장인 그의 작업실로 시선을 옮긴다. 본인의 작업실에서 수없이 만들어낸 수많은 군상 작품 속에 얽혀있는 작가 라선영의 모습,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과정이 작가 박경진에 의해 또 다시 새로운 시간으로 입혀진다. 그리고 한 편에는 작가 라선영에 의해 제작된 작가 박경진의 모습 골똘히 뭔가를 골몰하고 있는 형상이 군상들 사이에 고독하게 위치해 있다.
실제 연기를 하도록 꾸며진 세트장 안에서 설령 연기가 아닐지라도 완벽히 연출된 무대공간은 이들의 몸짓을 그럴듯한 허상으로 진열해 놓는다. 곧 세트장과 함께 사라져야함이 마땅한 듯 완벽하게 공연되어진다. 이러한 허상은 내용 없는 형식으로, 혹은 내용의 유무 따위도 별 상관없는 형태만이 복제되어 작가 라선영의 거수경례하는 군인들의 모습과 작가 박경진의 군인군상 작품으로 맥락이 이어진다. 진짜 같은 가짜, 절실하게 진짜로 보여야할수록 그럴듯한 엄청난 가짜가 만들어지는 일, 작가 라선영과 작가 박경진의 작업이 이 지점에서 포개어진다.
'이 그림은 망친거야. 붉은 물감이 캔버스에 흘렀거든. 처음에는 화를 냈는데 점차 그 얼룩이 맘에 들더군. 그 공사장이 진짜가 아닐 뿐 아니라 눈속임용으로 그려 넣은 낡은 무대장치 같았고, 붉은 물감 자국은 찢어진 틈 같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 틈을 확대해서 그 뒤에서 볼 수 있을 것을 상상하는 놀이를 시작했어. 그런 이유로 내가 그린 첫 연작을 무대장치라 불렀던 거야. 물론 아무도 내 그림을 보진 못하게 했지. 보았다면 나는 퇴학당했을 거야. 앞은 완벽한 사실주의 세계였고, 그 뒤에는 무대장치의 찢겨진 캔버스 뒤편처럼 뭔가 다른 것, 신비롭고 추상적인 것이 보였지.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중에-
이번 전시에서 보여진 두 작가의 사람에 관한 시선과 관점은 흥미롭게 포개어져 차분하고도 긴박하게,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욱이 같은 공간이기에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색깔이 풍성히 병치혼합되어 깊은 다채로움으로 감지되고 있다. 작가 박경진의 실제 생존이 달린 긴박하고도 삭막한 환경 속에서도 틈틈이 따스한 인간적 쉼을 사람을 통해 숨 쉬려는 진지한 무거움과 쉽게 깨질듯 보이는 허상과 형식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무수히 반복되는 우리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작가 라선영의 작품에서 진하게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럼에도, 모두 사람인 것이다.
- 고연수(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