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長生
민재홍
전시기획부 과장
성남큐브미술관은 현대용접조각전<불로장생長生>을 개최한다. 흔히 용접(熔接, Welding)이라 하면 건설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불꽃튀는 작업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미술에서도 용접은 오랜 시간 작품을 만드는 작업방식으로 이용되어오고 있다. 이번 현대용접조각전<불로장생長生>은 용접, 즉 무언가를 녹여서 접합시키는 방식의 작업에 천착해 온 작가들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살펴보는 주제기획이다. 현대조각의 오늘을 있게 한 결정적인 기법이자 방식인 용접술에 주목하며, 이를 원용⋅응용한 조형적 변용과 그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용접조각은 20세기초 대장장이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훌리오 곤잘레스(Julio Gonzalez, 1876-1943)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의 협업을 통해 그 틀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당시 조각에 있어서 새로운 재료였던 철과 작가에게 자유로운 표현방식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용접기술은 기존의 미술양식이나 미술사조를 뛰어넘는 새로운 조각술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아나갔다. 한국용접조각은 1950-60년대 당시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석조나 목조가 매스(Mass)에 집중했다면, 공간과 여백을 살린 용접조각은 세밀하거나 날카로운 표현이 가능하였으며, 작가의 생각을 보다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식이었다. 또한 전후(戰後)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철이라는 작품 재료를 어렵지 않게 수급할 수 있었기에 빠르게 확산하였다.
고명근 4.Stairway-13
오늘날 용접조각을 단순히 철조로 국한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스테인리스, 아크릴, 스티로폼, 비닐 등과 같은 재료들은 새로운 용접방식을 이끌어 내었다. 고명근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하며, 다양한 장르에 대해 연구하게 된다. 그 중 사진에 집중하며 사진조각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데, 그 작업방식은 굉장히 복잡하고 민감하게 진행된다. 투명 OHP필름에 사진을 출력하고 그것을 다시 두터운 투명 합성수지판에 압착한 후 이들 면과 면이 만나는 부분을 인두기로 녹여 접착시키는 방식을 통해 평면으로부터 비롯한 입체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투명한 면들이 겹쳐져 새로운 환상공간을 만들어내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자연과 건축물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새로운 현실로 재구성되어진다.
김선혁 The vague truth_painted stainless steel_215x480x110cm_2016
김선혁은 세밀하고 섬세한 용접방식을 보여준다. 어릴 적 집앞을 청소하던 싸리 빗자루를 떠올렸을 만큼 가는 스테인리스 봉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상은 나무의 뿌리, 혹은 인간의 혈관으로 보인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나무와 인간은 한 몸을 이루며 서로가 다르지 않은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앙상하게 말라있는 나무와 희망을 잃은 듯한 인간의 모습에서 나약하고 위태로운 현대인의 모습이 중첩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절대고독, 절망, 허무, 불안 등의 감정을 자기고백을 하듯 풀어내고 있다.
김윤재 하우스5 철 위에 혼합재료 80x40x80 2014
김윤재의 작품은 오랜 시간 바다에 잠겨 있다 인양된 유물처럼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태곳적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람의 몸에 자연을 융합하는 지난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가 특유의 세계관은 연대나 국적을 특정할 수 없는 기와집들이 크고 작은 군집을 이루며 주로 인간 형상으로 나타난다. 또 예로부터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였던 개와 말의 형상을 빌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김재각,복합적오해-산#2, Multiple Illusion - Mountain #2, 280x200x50cm stainless steel, wire netting, welding 2016
김재각의 작품은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져 있으나 바람에 날리는 실크스카프처럼 공중을 부유하고 있다. 작품에 사용된 철망들은 무수한 선들을 만들어내며, 그 것이 층층이 겹쳐져 새로운 공간감과 환상적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용접에 의해 발생한 불의 흔적들은 철 고유의 색을 변화시키는데 작가는 이러한 상처를 꽃으로, 의도적인 명암의 효과로 사용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작가 주변의 직간접적 생활 이야기지만, 주제의 해체와 재조립의 반복 속에서 그 의미는 모호한 추상형상으로 남겨진다.
이길래 에굽은 소나무 5 Crooked Pine Tree 5 150×95×165cm 동 파이프 산소용접 copper welding 2010
이길래는 일정하게 자른 동 파이프를 용접술로 덧붙여 유기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개별 파이프 단면은 마치 세포처럼 하나하나 이어져 하나의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운전 중 우연히 접한 트럭에 적재되어져 있는 파이프의 모습에서 작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작가는 생명과 자연, 원시성에 관심을 가지며, 우리 문화의 고고성을 나타내기 위해 소나무를 소재로 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동 파이프를 망치로 두드려 만든 길쭉한 타원형의 모습은 두터운 소나무의 표피를 연상시키며, 선으로 이어진 그것은 입체지만 평면처럼 드로잉을 보는 듯하다.
이성민 Forget-Me-Not_180x180x140cm_iron_2017
이성민은 석공이 정과 망치로 돌을 깎아 내는 것처럼 산소절단기를 사용하여 철덩어리를 불로 깎아낸다. 불에 익숙하지 않다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시행착오가 작가와 함께 했을 것이다. 노동에 비교될 정도로 고된 과정을 거치며, 목판에 칼이 지나간 흔적처럼 작품 곳곳에 남겨진 불의 흔적에서 저간의 땀과 호흡을 찾을 수 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러한 행위는 작품의 일부분처럼 철에 질감을 더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구도자(求道者)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힘든 수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작가 또한 작업과정을 통해 자신과 작업의 존재이유를 얻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영일, 조용한 확산1
전영일은 등불 조각가로 알려져 있다. 시임(Seam)용접을 통해 스테인리스 틀을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붙인다. 그리고 틀 안에 불/조명을 넣어 빛을 밝혀야 마무리가 되는 작업과정을 거친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연등이라는 전통문화를 현대미술과 접목시켜 전통적 조형미와 현대적 미감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사회의 첨단기술들 앞에 옛 것은 하찮게 여겨지며 사라져가는 시대에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현대 등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가고 있다.
불은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해왔던 동반자였다. 인류가 생활하고 발전, 진화하는데 불은 중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인류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다. 이번 현대용접조각전<불로장생長生>은 불이 만들어낸 예술, 불로 전하는 영원한 미감에 대해 조명하는 전시이다. 고명근, 김선혁, 김윤재, 김재각, 이길래, 이성민, 전영일 등 7인이 보여주는 특유의 형식과 방법은 현대미술, 특히 조각의 다양한 양태를 이해하고 이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