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18-09-03 ~ 2018-09-11
장대일
02.2105.8190~2
우리 시대의 초상을 묘사한 거대 두상 조각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서초구 양재동 한전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데, 중견 조각가 장대일의 9번째 개인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셀러리맨의 얼굴을 통해 현대인의 우울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m가 넘는 두상으로 조각 작품 위에다 회화적 페인팅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하였으며 철 수세미와 알루미늄 철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흡연구역에서 담배피는 모습을 묘사한 샐러리맨의 일상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두상은 불안정한 감정의 상태를 느끼게 해 주며, 꽉 다문 치아와 우울한 얼굴표정은 긴장된 셀러리맨의 삶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9월, 가을이 시작되는 문턱에서 전시회 나들이를 한 번 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전시기간은 9월 3일부터 9월 11일까지입니다. 관람시간은 평일 09시부터 18시까지이며 토요일․ 공휴일은 17시까지입니다.
장대일: 부풀려진 얼굴들
박영택 l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장대일은 2016년부터 커다란 남자의 두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실제 인물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포착된 동시대 한국 사회의 중년 남성상이자 직장인의 보편적인 초상, 일종의 도상화 작업이다. 그들은 거의 차이를 지니지 않은 채 동질화되고 규격화된 듯한 표정, 자세를 하고 있다. 역삼각형에 가까운 큰 머리, 상대적으로 왜소한 목과 상반신으로만 제한된 신체는 바닥에 다소 위태롭게 서 있다. 분명 바닥에 붙어 있지만 어딘지 불안정하고 불균형적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일시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실존적인 인간 존재의 상황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저 결정적인 얼굴 하나로, 덩어리로 충분히 대변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또한 그 매스의 표면은 회화적 요소를 적극 끌어들이며 시각적 볼거리를 안기는 동시에 얼굴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반쯤 뜬 눈과 벌린 입, 크게 드러난 치아가 특히 관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시적인 균형감과 불안한 균형을 지닌 이 두상/상반신은 약 190~210cm 정도의 높이를 지녔다. 커다란 두상/상반신의 조각은 좌대 없이 특정 장소, 바닥에 직접 설치되어 곳곳에 산개되어 있다. 마치 거인처럼 또는 바위나 나무처럼 직립해 공간을 힘있게 점유하고 있다. 다소 불편하고 생경하게 다가오거나 혹은 피할 수 없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은 자신의 신체와 대등하게 혹은 그보다 다소 크게 자리한 이 커다란 두상들 사이를 걸어 다니거나 비켜 다닌다. 따라서 관자는 자연스레 그의 조각 주변을 돌아가면서 응시하게 되고 그렇게 접하는 시선에 따라 새로운 장면, 시간과 접촉하게 된다. 그것은 조각이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스펙타클한 건축물이나 풍경과 같은 대상이 되어 있다. 그럴 때마다 관자들은 저 우울한 표정과 홀연 맞닥뜨린다. 너무 커다란 얼굴이 뿜어내는 묘한 표정과 심란한 심리의 굴곡짐을 외면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다.
작품의 제목은 <흡연구역>이다. <깨진 얼굴>이란 것도 있다. 모두 유사한 얼굴 형상을 보여준다. <깨진 얼굴>에서는 얼굴 표면을 여러 색채를 지닌 조각, 그러니까 무수하게 분열된 색면이 흡사 모자이크처럼 구획되어 있다. 온전한 신체에서 추출된 두상/상반신만이 대신하고 있다. 작가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두상만을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절단된 얼굴, 상반신의 고립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온전한 몸을 잃은 과도하게 큰 얼굴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을 과장되게 표현한다. 하여간 이 과장된 얼굴이 시각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극적인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편이다. 작가는 전체가 아닌 부분을 제시함으로써 시각적인 집중을 유도하고 그를 통해 모종의 위기 상황에 처한 현대인의 운명, 심리를 부각시킨다. 동일하게 역삼각형의 큰 얼굴과 과감하게 절단된, 상대적으로 작은 상반신은 흰색셔츠와 줄무늬넥타이를 맨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 혹은 왼손에는 연기(철사)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다. 그러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장면의 형상화다. 다소 코믹하고 만화적이다. 아니면 팝적인 조각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을까? 한결같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있는 이들은 다소 우울하거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좀 언짢은 표정 같기도 하다. 마치 이를 악물고 있는 듯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있으며 눈동자는 아래를 향해 있는데 약간 풀린듯해서 마치 고행석의 만화 캐릭터 ‘구영탄’의 눈을 연상시킨다. 대부분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남자들인데 이들은 각기 제 삶의 영역에서 힘겨운 생존을 도모하는 생의 이력을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상형하고 있고 애써 기술 記述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의 얼굴이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자 동시에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생성 중인 회화나 조각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후의 결정적인 이미지 하나를 얼굴에 새기며 죽는다. 그러니 얼굴은 단지 누군가의 표식에 머무는 기호이거나 피부만이 아니라 공들여 읽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깊이 공감, 성찰해야 하는 텍스트에 해당한다. 저마다의 얼굴은 스스로 써 내려간 하나의 책이다.
그런 맥락에서 장대일이 형상화한 얼굴은 다분히 세태풍자적 요소를 지녔다. 이 인물을 통해 작가는 나름 우리 시대의 전형성, 리얼리티를 포착하고자 한다. 오래 전부터 작가는 예술, 작업이란 최소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삶을 통찰하는 데서 발아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로부터 늘 작업이 출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다. 그 방편의 하나가 자신의 시대적 현실과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작가 작업의 모티프였다. 여기서 작가는 현실의 관찰자가 되고 그 속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한 인간, 동시대 사람들을 예민하게 발견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현실과 현실 속 사람들이 늘 불완전하며 삶 역시 부조리하고 모순됨을 느낀다. 그 안에서 그는 과연 “무엇이 가치 있는 예술인가”를 질문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예술가 의식을 갖고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작가상을 지니게 되었다. 자신의 통찰력과 감정을 사회에 전달하고 교감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통찰력과 함께 그것이 정확히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정확한 표현능력이 또한 필요하다고 작가는 생각하고 있다. 장대일의 작업은 이 같은 인식, 미술관(작업관)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다.
근작 역시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출현한다. 작가는 한정된 흡연구역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작업을 떠올렸다고 한다.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이 비정한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과도한 생존경쟁에서 나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들은 흡연을 통해 그 압력을 다소 초초하게 달래고 있다. 제한되고 밀려난 변방 같은 곳에서 홀로 급하게 피워야 하는 모습이 그대로 그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본 것이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이야말로 이 시대의 초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아가 “바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이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그들의 얼굴과 표정을 다소 희화화했고 과장했다.
이 조각은 전통적인 조각적 방법론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재료의 콜라주와 회화적 요소가 적극 개입된 작업이다. 폴리에 석고가 기본적으로 쓰였지만 여기에 철,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질의 재료가 얹혀졌고 채색과 음영효과를 집어넣어 조각/입체에 회화적 효과를 부여하고 있다. 내부에서 광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형상조각에 근간하면서도 여러 조형적 기법이 종합되어 시각적 효과가 극대화되었고 따라서 무척이나 재미있는 얼굴이 되었다. 한편 이 얼굴의 표면은 내면의 여러 갈등과 다기한 심리 등을 복합적으로 직조하기도 한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다양한 감정의 기류에 휩쓸리고 자기 분열적인 모습에 시달리는 내면들이자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갖게 되는 여러 페르소나를 지닌 얼굴의 재현이다. 그러니 이 표현방법론은 우리 시대의 전형성을 지닌 얼굴의 도상화에 입각한 불가피한 전략적 측면이 있어 보인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유전자에 의해 얼굴 하나를 들고 나오지만 동시에 주어진 생존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그 얼굴이 조금씩 변형되거나 변질된다. 사람들의 얼굴은 불변하기보다는 생성적이며 그것은 주어진 사회의 압력과 현실적 무게에 의해서 변질되기도 한다. 장대일이 보여주는 얼굴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 인간들의 본 얼굴이자 동시에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불가항력적인 얼굴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얼굴 이미지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의 심층 깊이 감추어져 있거나 억눌러져 있는 감성의 외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기억이 될 만한 작업, 시선을 끌 만한 두상 작업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이 괴이하게 부풀려진 얼굴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힘을 지니며 기념비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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