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하늘이 내게 내려준 재주는 종이를 만드는 일이다.’라는 말은 장지방으로 유명한 고(故) 장용훈(1937-2016) 선생의 말이다. 이번 전시는 평생을 한지와 더불어 살아온 한 장인의 삶을 추모하는 특별한 행사이다. ‘비단 백 년, 종이 천 년’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한지는 본래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하였지만, 근대 이후 서구 문명에 밀려 온갖 전통적인 것들이 사라질 때 한지 역시 그 유장한 역정을 마감한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우리 문화를 대변하고 우리 미술의 특질을 담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생 같은 분들의 땀과 눈물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는 전통에 대한 신념과 종교적인 확신, 그리고 이의 처절한 추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의 실천으로 되살아난 한지를 통해 우리의 정서와 감성, 그리고 심미와 사유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그것은 물질의 복원이 아니라 정신의 회복이다. 더불어 디지털 시대라는 새로운 문화 환경 속에서 우리의 독창성과 차별성, 특수성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미 작고한 장인의 삶을 기리고, 그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는 이번 전시는 사뭇 따뜻하여 고맙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