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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래: 꺼지지 않는 불꽃 The Eternal Fl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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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래 <꺼지지 않는 불꽃(The Eternal Flame)>에 관하여; 경험(經驗, experience)


작업실은 다양한 전문 공구로 가득하다. 공방 같은 작업실 안은 스테인리스의 반짝임으로 곳곳을 밝힌다. 인공으로 만든 묘한 자연광은 작업실 한 곳에 놓인 식물을 비추고 있다.

작가는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권용래는 <내면과 외면 `사이'의 직관적 표현에 관한 연구(1992)>를 시작으로 스테인리스 금속판 조각을 활용한 새로운 형식의 작업을 2004년부터 이어가고 있다. 최근작 <꺼지지 않는 불꽃(The Eternal Flame)>은 그 연장선이다. 작업의 출발점이자 중심 개념은 회화이다. 모더니즘 이후 평면에서 오브제의 사용은 흔한 일이며 동시대의 미술은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장르를 거침없이 넘나들고 융합한다. 그의 작업은 실험성이 돋보이는 동시대 작업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업의 내밀한 어법은 고전적인 회화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는 미술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던 재현과 평면의 문제 너머에 있다. 혹자는 입체물이나 설치물로 보기도 하지만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회화의 확장이고 설치된 작업은 회화의 연속이다.

 

새로운 매체를 다루는 경험의 축적은 회화의 확장된 해석을 지속시키며 작업의 동기부여를 강화한다. 전통적인 회화가 가지는 손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차가운 금속과 빛에 관한 미적인 탐구로 연결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빛이 만든 물리 현상을 하나의 정신적인 경험으로 끌어올린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가 언급한 “예술은 손끝의 숙련이 아니라 작가가 경험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경구처럼 작가는 내밀한 미적 체험(expérience esthétique)을 전달하고 있다. 작업 태도는 명상적이며 영적인 탐구심에 기초한다. 작가는 즉물성(卽物性) 너머의 세계를 본다. “세계를 본다는 것은 심리적 세계이며 그 자체가 일루전이다. 즉, 허상이다. 일루전은 허상을 드러내는 현상일 뿐이다.” 라며 세상을 관조한다. 존재는 늘 변하며 움직인다. 눈 앞의 세계는 관조자의 마음에 따라 움직일 따름이다. 중력을 가진 모든 세상의 존재들은 작가에게 허상이다. 작가는 ‘원초적인 촉수()’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촉수는 세계의 감각적이고 미묘한 부분까지 즉시 반응하고 영원한 것의 실체를 감지한다. 아름다움과 숭고 그리고 영원한 것의 경험은 상통한다. 작업은 아름답고 영원한 것에 관계하며 내밀하게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상의 찰나적인 생소함이나 낯섦의 발견은 작업의 중요한 추동력이다. 작가는 미묘한 일상의 경계에서 미적 쾌감과 현상 너머의 영원한 것에 관한 적합한 실마리를 발견하고 끄집어낸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며 현상 너머의 영원의 경험을 창출한다.


빛의 존재를 인식하며 빛으로 화면을 그린다. 화면을 반사된 빛으로 채운다. 빛이 만든 환영을 회화의 주제로 포착한 것이다. 권용래는 미술사의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있다. 빛이라는 주제를 미술사의 핵심으로 보고 빛의 미술사로 인지한다. 작가는 렘브란트의 화면에서 물체, 빛, 배경을 구분 없이 재현한 부분과 광선이 닿는 밝은 부분만 강조해서 그리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존재 자체를 드러내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렘브란트의 빛을 ‘존재를 드러내기 혹은 존재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작품 밖에서 작동하며 존재를 확인케 하는 빛을 인식하는 지점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의 형식은 빛이 가지는 물리적인 현상의 절묘한 결합이다. 작가가 직접 관여하는 조명(downlight)은 화면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작품의 크기에 따라 높은데 위치한 몇 개의 광원은 미묘한 자리매김을 통하여 작가의 화면구성을 돕는다. 우레탄 망치로 두들기고 레이저 커팅한 스테인리스 금속판 유닛(unit)은 광원을 적정한 불꽃 모양으로 모은다. 작품의 구성 단위로서 유닛(unit)은 반복적으로 환영의 공간에 등장하지만 동일자는 아니다. 빛을 모아 담은 유닛의 조합은 열린 공간의 변화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금속 표면을 반사한 빛은 공간을 미끄러져 들어와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낸다. 빛은 금속의 차가운 표면에서 뜨거운 불꽃 형상으로 살아난다. 빛은 스테인리스 유닛의 그림자를 비추며 여명처럼 공간을 은은히 밝힌다. 그 빛은 작가가 기획한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불꽃 형상은 사각의 화면과 설치된 벽면에 영원을 향한 불꽃으로 퍼져나간다. 일상의 사물과 빛이 만나 미적 쾌감을 자극하는 독특한 환영의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건축물 내부 공간의 설치작업은 절묘한 빛의 산란을 담은 넓은 풍경이다. 불꽃처럼 상승하는 빛의 황홀한 환영은 빛이 머무는 곳과 물질성을 잊게 한다. 찰라의 순간을 변하지 않는 영원의 실체로 감지하는 경험의 장소를 마련한다. 그림자 속에 머무르는 불꽃의 경험은 영원한 존재의 숭고함으로 안내한다. 권용래의 작업은 우연성을 가진 빛과 그림자 그리고 유닛의 시각적인 변주이며 감상자의 신비한 미적 체험을 이끈다.


빛은 상징이자 은유다. 빛은 진리이며 신적인 존재와 영원한 것을 내포한다. 작가는 빛의 신비감을 주는 조형작업으로 빛의 연금술을 찾아낸다. 붓과 물감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회화의 고정관념을 깨고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와 조명을 이용해 집요한 연구와 작업으로 독창성을 확보한다. 작업의 형식은 평면과 설치 공간에 동일한 구조를 이룬다. 금속 조각, 조명, 그리고 그림자는 작가에게 조형 요소이자 빛 자체의 내밀한 본성을 드러내는 제작 도구이다. 작업 규모에 따라 조절하는 조명의 개수는 그림자의 미묘한 차이를 유도하며 금속판 유닛의 크기와 조명의 각도는 작업의 조절 장치이다. 스테인드글라스용 투명물감은 반사 빛의 다양한 색상을 연출한다. 겹쳐진 그림자와 공간의 여백은 다각도의 반사광이 드리워지는 기획된 미시의 화면이다.


빛의 숭고(le sublime)를 표현한다. 작업 내용은 정신 혹은 영혼과 같은 영원한 것과 관련짓고 있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다. 영혼으로 느낀다. 바로 영혼이 있기에 느껴진다.”라는 지점에서 작가는 인간의 예술적인 경험을 확신한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관한 미적 탐구와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은 계속된다. 일상에서 미세하게 번득이는 물성의 직관적인 발견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작가는 “익숙한 특성을 변화시켜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물질의 제한된 현상세계를 넘어선다.”고 한다. 자신이 만난 사물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은 연속적인 리듬을 발생하며 영적인 것의 움직임을 체험하게 한다. 그 움직임은 영원의 경험이자 영혼의 체험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은 빛의 리듬이 창출하는 비밀스런 순간을 경험하고 시각화 한 빛의 숭고이다. 권용래의 빛은 공간을 타고 차가운 금속 표면을 미끄러지듯 튕겨 나와 그림자 속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환생한다. 명상가 켄 윌버(Ken Wilber, 1948~)의 표현처럼 시원한 봄날 이른 아침 수정처럼 맑은 연못 위에 반짝이는 햇살만큼이나 명백하고 완벽하고 틀림없는 그 무엇의 관조를 경험한다.


김대신(미술과 문화비평, 문화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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