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캇 컨템포러리 11월 니키 노주미 개인전 <Please Sit Down> 개최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2018년 11월 21일(수)부터 2019년 1월 13일(일)까지 이란계 미국 작가 니키 노주미의 <플리즈 싯 다운>전을 개최한다.

니키 노주미는 이란 혁명 당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활동해 온 화가로서 지난 40여 년간 권력과 폭력성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매우 정치적이고도 심오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시카고 드폴 미술관, 쿠바 국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최근 유럽에서 처음 열린 개인전 이후 그의 생애에 걸친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노주미의 그림에 있어 키워드는 ‘모호함’과 ‘드라마’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오늘날의 정치적 뉴스, 과거의 상징들, 일상의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주로 권력을 지닌 정치인들과 얼굴을 가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참여자들, 그리고 힘과 순수함을 나타내는 동물들이다.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해 온 자신의 삶으로 인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회화적 서사의 폭을 모든 타인들, 인류의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해 왔다. 노주미의 작품은 우리에게도 많은 동시대적 성찰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그의 작품세계가 지닌 예술적, 회화적 깊이에 감동을 안겨준다.

니키 노주미는 예측가능하고 유의미한 사실주의적 서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과 유희와 영감으로 가득찬 회화를 선보인다. 서울에서의 그의 전시가 한국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킬 감동 역시 바로 그러한 회화적 충만함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번 전시의 자세한 정보는 전화(02-730-1949) 또는 홈페이지(www.barakat.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무료 | 월요일, 공휴일 휴관 | 02 730 1949

니키 노주미(Nicky Nodjoumi, b.1942)

니키 노주미는 이란 케르만샤에서 태어나 테헤란 대학교에서 순수회화를 전공하였다. 1960년대 미국으로 이주하여 1974년 미국 뉴욕 시티칼리지에서 순수미술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 이란의 정치 혁명과 맞물려 학생들과 함께 정치적 운동에 참가하고 이란에서 추방 당하였다. 그 당시의 사회, 정치적 참여는 지금 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현재는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아부다비 구겐하임 미술관, 시카고 드폴 미술관 그리고 쿠바 국립미술관 등에서 노주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2014년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열린 <The Accident> 전이 있다.

플리즈 싯 다운, Please sit down, 2018, 221X173cm

글 유진상 (평론가)

니키 노주미(Nicky Nodjoumi)는 1942년 이란의 케르만샤(Kermanshah)에서 태어났다. 1967년 테헤란 미술대학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미국으로 유학한 그는 1974년 뉴욕 시티컬리지에서 미술학(Fine Arts) 석사를 취득했다. 졸업 후 다시 테헤란으로 돌아와 미술대학 강사로 일하던 그는 1979년 당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분위기를 타고 불붙은 팔라비(Pahlavi) 왕정에 대한 비판에 가담하여 정치적 포스터들을 제작하게 되고, 이로 인해 탄압을 받게 된다.

이란혁명이 성공한 이후 새로운 정치체제 하에서 마찬가지로 반복된 억압적 상황에 대해 비판을 가하다가 결국 그는 1981년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후에도 그는 미국에서의 반전운동에 참여하는 등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삶을 이어왔으며 자신과 관련되었거나 혹은 무관한 매우 민감한 정치적 주제들을 가감 없이 다루어 왔다. 그는 자신의 예술에도 이러한 첨예한 정치적 입장을 반영해왔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모국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불법이라고 지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모국인 이란에서 그의 위상은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최근 전국적으로 시행된 앙케이트에서 그는 지난 80년간 이란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예술가들 다섯 명 안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서구와 전 세계에서도 괄목할만한 인지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시카고 드폴 미술관, 쿠바 국립미술관 등 세계적인 주요 미술관들에 소장되어 있으며 최근 유럽에서 처음으로 열린 작가의 개인전 이후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들이 새롭게 집중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이란에 대한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이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니키 노주미는 지난 40여 년 간 권력과 폭력성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매우 정치적이고도 심오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작품세계의 키워드는 ‘모호함’과 ‘드라마’이다. 여기서의 ‘모호함’이란 태도의 부재가 아닌 중층적 의미를 지닌 대상에 대한 관찰과 확장의 가능성을 가리킨다. 그의 그림들 속에는 오늘날의 정치적 뉴스, 과거의 상징들, 일상의 사물들이 극적 장면들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주로 권력을 지닌 정치인들과 얼굴을 가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참여자들, 그리고 원초적 힘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동물들과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소환된 사물들이다. 노주미의 작품들 속에서 사건과 장면들은 뉴스에서 보도되는 정치-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비평적인 언급 대신 상이한 사건들의 의도적 배치를 통해 해석과 상상의 영역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이러한 다층적 배치를 통한 확장의 가능성은 작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주제의 전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조각난, Silenced, 2017, 216X165cm

노주미는 모국인 이란과 자신이 40년 가까이 살아온 미국 사이에서 어떤 의미로는 ‘부유하는’ 삶을 살아왔다. 타지에서 떠도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회화적 서사의 폭을 보편적인 인류의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동양(Orient)과 서양(Occident), 이란과 서구(western countries), 이슬람과 비-이슬람 세계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다양하게 조합들에 의해 가려지거나 변형된다.

미술사나 이란의 문화적 전통과 관련된 전형적이거나 상투적인 소재들(cliches)이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맥락을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재구성되어 의미의 파악이 ‘지연된(delayed)’서사들로 나아간다. 이러한 작업방식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사진을 선택하고 그 안에 찍힌 인물들의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도록 그것을 변형시킨다. 그것들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닌 게 되고 인물들도 그 상황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게 된다. 어떤 이란인도 더 이상 그들과는 상관없어질 것이며 미국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그들은 단지 인간일 뿐이며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의복뿐이다. 이 그림들은 모두 이란과 서구사회 모두에 대해 비판적인 것들이다.” 그의 회화 속에서 연출된 극적인 드라마들은 모두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지만 그 목적은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비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나아가 상황에 대한 보다 비범한 시점으로 나아가게하기 위한 것이다.

권력에 대한 그의 관점은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 “나에게 단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권력관계이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간혹 정치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남녀관계 속에서 나타나기도 하며 또 때로는 동물들 혹은 그 모든 사물들의 조합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권력자와 그 집행인들은 종종 가면을 쓰거나 얼굴을 가리고 있다. 누구라도 이들이 될 수 있으며 이들 역시 수많은 정체성으로 옮겨다닐 수 있다. 이들을 둘러싼 사물들은 의미가

감추어진 극적 장치들이다. “살짝 비틀어보자.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권력을 쥐게 되면 무엇이 되었든 나쁜 일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내 그림들은 대체로 권력을 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나라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선동을 일삼으며 위선적이 된다.”

오후의 차, Tea in the Afternoon, 2012, 216X274.5cm

이번 전시의 제목인 ‘Please Sit Down’에 대해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이란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취조를 당했던 그는 조사관으로부터 의자에 앉아 있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조사관은 의자에 앉아 있으라는 말을 하고는 아무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작가에게 그것은 마치 암묵적 명령처럼 들렸으며 그 이후에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그에게는 침묵 속에서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이 물리적 고문만큼이나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따라서 ‘앉으세요’라는 제목은 친절하고 부드러운 권유의 목소리만큼이나 의도가 감추어진 폭력적 억압을 나타내는 이중적 의미를 띤다.

이번에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소개될 동명의 작품인 <Please Sit Down>에는 두 명의 남성과 한 마리의 양이 등장한다. 이러한 소재들은 니키 노주미의 회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가면을 쓴 정장의 남성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이란에서 정치범을 고문할 때 사용하는 막대기이다. 정치인이나 사업가를 떠올리는 인물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가 의심스러운 정체성을 지녔다는 것을 암시한다. 정장의 하의가 피카소의 그림 등에 자주 등장하는 피에로의 문양 (혹은 이란의 전통적인 공예적 문양)으로 변해가는 것 역시 이 수상한 인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추측하게 한다. 배경의 전복된 차량 앞에서 붉은 색 상의를 입고 상체를 수그리고 인물은 마치 겁에 질린 듯 가면의 남자 옆에 두 발로 서있는 양에게 한 손으로 의자를 건네고 있다. 양의 하체는 돌처럼 굳어져 있어 더 이상 의자에 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권력자와 그의 하수인 그리고 희생양은 마치 익숙한 관계인 듯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재현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처한 관계의 불합리성을 서로 응시하고 있다.

회피할 수 없는 폭력의 예감이 부드러운 회유의 목소리처럼 반전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화면의 1/5 혹은 1/6을 차지하는 아랫부분의 수면 혹은 지면은 니키 노주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모든 생명체가 결국 회귀하게 될 대지의 아래에서 모든 사건들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설정은 서사의 다중적 독해를 위한 극적 장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익명성과 모호함 그리고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는 것은 현실이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권력과 관계된 모든 것은 이중성 혹은 다중성에 의해 변질된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가운데 기하학적인 선들이 있다. 때로는 결박의 형태로, 또 때로는 일종의 구조물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 선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체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이 선들은 지오토(Giotto)의 회화에서 보듯 천사와 성인의 손을 연결하는 스티그마타(stigmata)의 선이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 인물들이 내부로부터 비명을 지르고 있는 투명한 상자 (cage)의 윤곽 등을 떠올린다. 이 직선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중요해 보이는 임무를 나타내는 동시에 무의미한 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옆에는 개구리나 원숭이와 같은 동물들이나 쓰러진 남성, 혹은 벌거벗은 여성들이 나타난다. 원초적인 본능과 충동 앞에서 인물들은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기하학적 도형들에 몰두한다.

Untitled III-From the Environmental Series,2018,178X127cm

식물을 주제로 한 <Environmental Series>는 광야에서 자라는 거대한 풀들을 그리고 있다. 이 풀들의 뿌리 부분에는 마찬가지로 정장을 하고 막대기를 든 남성들이나 벌거벗은 채 웅크리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 혹은 또아리를 튼 뱀들이 묘사되어 있다. 니키 노주미는 <Field Report>라는 다른 그림에서 자연 혹은 지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식물이 같은 남성들에 의해 결박되어 있는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이 그림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약 탈퇴에 즈음하여 정치인이 저지른 자연에 대한 무책임한 결정을 비판하는 내용을 나타낸 것으로, 작가의 의도대로 화면 안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식물의 압도적 존재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Environmental Series>에서도 식물이 표상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작가가 우주와 자연에 대해 갖는 경외심과 존중이며, 그것이 처한 위험과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세상을 치유하고 재생하는 힘에 대한 열정이다. 기념비적인 크기로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들풀의 모습은

자연의 일부로서 몸을 일으켜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니키 노주미의 작품들은 그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서사를 구성한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과연 그의 작품들을 어디까지 정치적 현실을 번역한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알자지라에 기고한 하미드 다바시는 다음과 같이 전언하고 있다. : “누군가가 “노주미의 작품들은 예술과 정치 사이의 가느다란 경계를 따라 걷는다.”라고 언급했을 때 그는 “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다. 나는 여러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놀다가 그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을 뿐이다.”라고 응수했다. ‘가느다란 경계’라는 은유에 대해 적절히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현실이 만들어내는 정치는 그의 미적 태도에 계기를 제공할 뿐이지 실제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것이 팩트일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홀랜드 커터 역시 니키 노주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정치성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테이무어 그래니 갤러리에서 열린 니키 노주미의) 최근 페인팅들은 정치적이다. 그러나 그 기조는 조금 다르다. 시각적으로 작품들은 가볍고 심지어 경쾌하며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로 가득차 있다. 정장의 남성들과 제복을 입은 이슬람의 율법학자들(mullahs)은 말, 원숭이 그리고 페르시아의 전통회화에 나오는 유령 같은 인물들과 한 공간에 그려져 있다. 아무것도 진지하거나 유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어긋난 다리와 상체와 머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근법이나 중력의 법칙에 얽매여 있지 않다. 커다란 흑백 수묵드로잉 연작에서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니키 노주미의 작품세계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그것이 예측가능하고 유의미한 사실주의적 서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과 유희와 영감으로 가득 찬 회화라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그의 전시가 한국의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킬 감동 역시 바로 그러한 회화적 충만함에서 비롯될 것이다.